노을이 잔인하게 아름다워서 그랬나 봐.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것일까?
마흔이 되면 어디론가 훌쩍 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이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2022년 가을부터 나는 아주 조금씩 나를 지우는 연습을 했다. 나의 사람들을 정리했고, 나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나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자리들을 하나씩 비워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이별을 준비했다.
너와의 마지막 이별 여행은 딱 1년을 남기고 준비했다. 나는 정확히 1년을 남겨두고 2023년 가을,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그때는 1년이면 될 것 같았다. 아니, 1년이면 마음의 정리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날짜는 12월 30일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인지 모르게 너를 떠나기 전, 마흔이 되기 하루 전날, 단 하루만은 남겨두고 싶었다. 마흔까지 나는 너의 아내였고, 아이들의 엄마였다. 이제는 나로 살아보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나로 사는 법을 알지 못했고, 그럴 자신도 없었다. 그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지금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그때의 나는 너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끝내 들지 않았다. 이별 이후에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도 정하지 않았다. 갈 수 있는 곳도, 할 수 있는 일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너를 떠나지 않으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저 놓아주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2022년 가을, 나는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2023년 12월 30일이 되기 전까지 혼자만의 작별 인사를 마음속에 담은 채 그들을 모두 만났다. 너와는 매주 여행을 다녔다. 숨이 찰 만큼, 정신이 흐려질 만큼 정말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나의 마음을 알길 없는 너는 그 시간을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열 번쯤 불러야 겨우 움직이던 내가 이제는 네 말 한마디에 신발을 신고 망설임 없이 너를 따라나섰다. 그러다가도 너는 가끔 불안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이러냐고 묻는 너에게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네가 나에게 맞춰왔으니 딱 1년만이라도 네가 하자는 건 다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이 너에게 하는 마지막 이별 고백이었다는 걸 너는 끝내 알지 못했어야 했다.
1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우리는 마침내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1년 동안 혼자 마음으로 준비해 온, 너와의 이별 여행이었다. 여행의 모든 순간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오히려 잔인하게 행복했다. 나는 그 시간을 휴대폰에 담지 않았다. 이 순간이 앞으로의 모든 날을 대신해 줄 것만 같아서
눈으로, 마음으로 계속해서 담고 또 담았다. 파리에서 베네치아로 향하는 동안 나는 네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어느새 늘어난 흰머리, 눈가에 자연스럽게 자리한 주름, 나와 함께 보낸 세월의 흔적이 너의 얼굴 곳곳에 스며 있었다. 베네치아를 걷는 내내 나는 풍경보다 너를 더 많이 보았다. 길을 잃어도 괜찮았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도 괜찮았다. 모든 것이 괜찮았다. 다만, 조금 겁이 났다. 지나온 추억만으로 앞으로의 혼자인 날들을 견딜 수 있을지 그것이 조금 두려웠다. 그런 생각에 잠긴 채 걷다가 우리는 계획에 없던 곳으로 향했다. 바다 위 정거장에서 눈에 들어온 이름, 부라노섬…
너를 만나기 전엔 숨이 막히도록 하루하루를 계획하며 살아온 나였지만, 너와 함께 있으면 나의 삶은 늘 대책 없이 흐트러졌다. 내가 그토록 계획하며 살아온 날이 우습게도 너와 있으면 나의 계획은 쉽게 무너졌다. 이상하게도 그 무너짐 속에서 나는 늘 비로소 숨을 쉬었다.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 손은 늘 네 손을 잡고 있었다. 너의 손을 잡고 알록달록한 골목을 지나 바닷가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저녁노을을 바라보았다. 그 노을이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워서 눈물이 볼을 타고 쉼 없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너와의 이별을 결심했던 나의 모든 결심이 조용히 무너져버렸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네 곁에 있어야겠다고, 내가 숨을 쉬려면 너와 함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딱 한 번만 더, 이별을 미루고 이 노을을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오늘 또 대책 없이 파리행 티켓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