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식이 Sep 19. 2016

온라인 오픈 하우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녀.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오늘은 요양원에서의 하루를 간단히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이제 포지션이 바뀌어 더 이상 레크레이션을 담당하고 있지 않지만, 오랜동안 요양원 할머니들의 하루 일과를 담당했었더랍니다. 그날 그날의 액티비티를 짜고, 스페셜 이벤트 등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주요한 일 이었어요. 


        아침에 출근을 하면 먼저 그날의 스케줄을 보드에 정리하여 거주자들이 오늘은 뭐가 있구나 하고 알 수 있게 하지요. 다들 오늘은 무슨 프로그램이 있구나. 이벤트가 있구나 하고 기억해 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는 프로그램은 요리 프로그램, 볼 게임, 생일잔치, 꽃꽂이, 빙고 등이지만 우리가 프로그램을 계획할 때는 Physical/Emotional/social/Intellectual/Spiritual/의 다섯 분야가 적절히 분배되도록 합니다.예를 들어 볼게임(Physical)을 하면 이어서는 그날의 뉴스에 대해 다 함께 이야기 하고(Social), 옛날이야기(Reminiscing-Emotional/Social)하는 프로그램도 넣고, 단어게임(Intellectual)도 합니다. 교회나 성당, 불교회에서 오셔서 종교관련 프로그램(Spiritual)이 진행되기도 한답니다.



매달 만드는 스케줄표입니다. 그 달에 어울리는 그림을 넣어 계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크게 프린트 해서 방 방마다 붙여드리면 큰 행사가 있는 날이나, 소풍(Outing)이 있는 날을 다들 손 꼽아 기다리세요. 사진은 전에 일했던 곳에서 만들었던 스케줄표인데 이 곳은 (홍콩계 요양원이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거주하는 일본거주자들 담당) 요양원 내 액티베이션 부서에 대한 중요도가 높은 편이었습니다. 하는 행사도 많았고, 어떤 행사가 있을 때는 가족들을 포함한 커뮤니티의 참여도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크리스마스다 하면 요양원에서 어떤 이벤트를 하죠. 그럼 거주자의 아들 손자 며느리가 다 모여서 행사에 참여를 하고 그들의 크리스마스 가족만남을 우리 요양원에서 한다 뭐 그런 느낌?) 가족들의 참여도가 높고 기대치가 높은 만큼 매일 매일의 액티비티도 굉장히 빡셌고요;; 직원들이야 쉬는 날 없이 고생을 합니다만, 다른 요양원들에 비해 확실히 생기가 있고 거주자들의 생활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아침에는 주로 운동을 하고 다 같이 노래를 하거나, 종교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오후에는 위에서 언급한 다섯 영역을 바탕으로 두루두루 프로그램을 제공하죠. 가장 준비시간이 많이 필요한건 만들기 시간인데요. 엄마들이 오늘 저녁엔 또 뭘 해먹나.. 하고 고민하듯, 저도 오늘은 또 뭘 만드나.. 하고 온갖 웹싸이트를 다 헤매고 다녔습니다. 계절감도 느낄 수 있고, 너무 유치하지도 않고, 너무 따라하기 어려워도 안되지만, 45분 이상 1시간의 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 있을 만한 무언가를 찾아야 하거든요. 할머니들의 상태도 모두 천차만별이라 누군가는 10분만에 후다닥 끝내고 이게 다야?하며 쳐다보고 있고, 그 옆의 누군가는 30분이 걸려도 반도 못 끝내고 있거나 하니까요. 사진은 일본의 'こどもの日(코도모노히)'라고 하는 일본 어린이 날을 기념하려고 만든 '鯉のぼり(코이노보리)'입니다. 보통의 만들기를 할 때는 Pinterest를 많이 참고 했고요, 일본 문화 관련한 만들기나 요리등을 연구할 때는 レクリエ(recrea.jp)라고 하는 격 달로 나오는 노인관련 레크레이션 정보 매거진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위의 두 사진은 87세의 할아버지와 101세의 할머니가 가늘게 잘라 놓은 티셔츠를 이용해 세번째 사진같은 쿠션 을 만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네네. ㅎㄷㄷ 하죠? 뭐 우리 요양원에서는 일흔 정도 되시는 분들은 주전자에 물셔틀 다니시구요, 아흔 되시는 분들도 프로그램 끝나면 책상 끌고 의자 정리 하시고 뭐 그럽니다. 핫핫) 

굵은 끈에 폭 1센티미터, 길이 10센티미터 정도로 잘라놓은 천을 단단히 묶는 단순 작업이지만, 반으로 딱 맞춰서 쫙쫙 당기며 딴딴하게 묶고 또 본인이 어울리는 색깔을 보면서 하는 여러모로 자극이 되어 좋은 활동이 된답니다. 만들고 나면 또 그럴듯 하고 일년에 두어번 열리는 바자에서 판매하여 요양원에 기부가 되므로 성취감 크고요.  


각종 행사가 있을 때는 그에 맞는 음식 등을 준비하는 것도 일이랍니다. 사진은 ひな祭り(히나마쯔리) 라고 하는 여자 아이들의 날을 기념하여 준비한 음식인데 그 때 아마 사려고 했던 ひなあられ(히나아라레)라고 하는 과자가 없어서 대신 모나카 등을 샀었던거 같아요. 맨 왼쪽은 甘酒(아마자케)라고 하는 달달한 술인데 몇몇 할아버지 분들이 굉장히 좋아라 하시며 마시시던 기억이 나네요. 무알콜인데도 마시면서 크~ 취한다 다들 농담하면서요. 이렇게 계절에 맞는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은, 행사를 기획하거나 하는 일에 비해, 적은 비용 대비 모두에게 큰 만족을 준답니다. 일본에서는 7월에 장어를 먹는다 하여, 우리 삼복에 삼계탕 먹는 것 처럼요, 일본식 양념으로 조리가 되어 파는 장어를 사다가 밥 위에 한 조각씩 올려드렸더니 생전 더 달라하는 법 없으신 일본 할머니/할아버지들께서 처음으로 남았으면 뭐.. 더 주면 좋고.하고 씩 웃으며 수줍게 말씀을 하셨더랩니다. 역시 먹는게 최고!


이 날은 무슨 생일 날이었나 행사가 있어서 일본회관에서 하와이안 댄스를 하시는 노인 분들이 오셔서 알로하~ 알로하~ 무대를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와서 공연을 해주거나 하는 단체를 섭외하는 것도 우리의 일 중에 하나였습니다. 일정과 비용을 맞추고 진행과 마무리까지 정신 없이 하루가 지나갑니다. 전문적으로 공연을 하시는 분들 뿐만 아니라, 사진 속 일본회관 분들처럼 지역 단체에서도 많이 지원을 해 주시는데요. 커뮤니티의 도서관에서 나와서 파워포인트로 그림을 띄워 가며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낭독해 주기도 하고요, 근처 유치원에서 삐약삐약 어린 꼬마들이 놀러와 노래를 부르거나 (저스틴 비버병에 걸린 귀여운) 남고등학생들이 우르르 와서 장기자랑을 하기도 합니다. 커뮤니티가 서로 돕고 돕는 좋은 예이지요. 





이렇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나름대로 꽤나 바쁘게,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아직도 수십여 곡의 노래를 기억하여 부르고, 꼼지락꼼지락 증손주 줄 뜨개질을 하며, 벌레에 물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열심히 정원에 꽃과 나무를 가꿉니다. 매번 간호사님께 혼나지만 옆방 친구의 휠체어를 밀어주고, 오랜만에 화장해봤다 하며 일자 눈썹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타나시고, 아이스크림 시간엔 하나 얼른 먹고 시치미 떼고 있다 하나 더 받으면 신이 나고요. 나는 이들과 함께 지내는 하루 하루가 너무나 값지고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흐린 기억 속의 그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