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로이 오오오 로이
오랜만에 만난 너무나 반가운 얼굴 로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조금 해 보려고 합니다. 로이는 할아버지라는 타이틀이 참으로 어색한 91살의 싱글남입니다(Never been married).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하얀 머리칼과 웃을 때 눈가에 생기는 자글자글한 주름에도 왠지 청년같은 느낌이 드는 그는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항상 바쁘게 생활 하시죠. 모르긴 몰라도 젊었을 적에 인기 진짜 많으셨을 듯 합니다.
처음 로이를 만났을 때 사실 "뭐 이런 변태 할아범이.."라고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요. 만나면 자꾸 "Kiss me."하면서 두 팔을 벌리고 다가오거나 볼에 쪽 뽀뽀를 하기도 하고, "I am horny."라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해댔어서요. 근데 저한테만 그러는게 아니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온갖 여성(노소불문)들에게 추파를 날리고는 했고, 덕분에 간호사 아주머니들께 혼이 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거 성추행라고 정말 '혼'이 나는데요, 그럼 어린 개구쟁이마냥 질끈 눈 감고 무서워 하다가, 잠깐 후 다시 키스미 키스미 하면서 지치지도 않고 또 장난을 거는 겁니다. 그치만 그 장난이 절대 선을 넘진 않았어요.
이런 로이도 정말 진지해질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피아노를 칠 때 입니다. 스스로를 아티스트라 칭하는 로이는 젊은 시절부터 스스로 피아노를 배워 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실력이 정말이지 대단해서, 90살이 넘은 지금도 악보없이 연주를 하고, 요양원 내 이벤트가 있으면 항상 초대되어 연주를 하고는 했었습니다. 처음 그를 잘 모르고, 피아노 연주 하신다는 말에 냉큼 할머니들과 함께 부를 일본 동요를 연주해 달라고 부탁한 제게 머리를 긁적이며 '나는 재즈 연주자라서 말야.' 라고 대답했던 로이였습니다. 나중에 피아노 치시는 모습을 보고는 아이쿠 실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매일 매일 요양원 내에 비치되어 있는 피아노에 앉아 연습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유투브로 피아노 연주 동영상을 심각한 얼굴로 보고 있곤 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다른 사람처럼 진지하다가도, 옆에 누가 오면 또 금새 꺄륵꺄륵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돌아오고는 했지만요.
6층 사는 로이 할아버지는 제 사무실이 있던 1층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1층의 컴퓨터실, 피아노가 놓여있는 대강당, 친구들과 수다떠느라 진치고 앉았던 로비, 아티스트라 그림도 그려야 되니까 아트테라피실 등등 말이죠. 그 와중에도 1층 크래프트 실에서 자주 보였는데요. 그건 그림 그리시는 친구 할머니랑 체스를 자주 두었기 때문이에요. 하얀 백발의 백인 할머니는 개인 전시회 등을 열고 하시던 정말 실력있는 아티스트셨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 곳에서 일하고 있던 당시까지만 해도 요양원 가족들의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리시기도 하셨습니다. 초록이 동색이라고 아티스트끼리 알아보는 건지 둘이 자주 어울리시더라구요. 어느 날은 사무실에서 바깥 쪽으로 로이 목소리가 들려 몸을 빼꼼이 내밀고 바라보니, 로이 할아버지가 친구 할머니에게 자신의 층에서 받아왔다며 살짝 녹기 시작한 아이스크림을 건네고 계셨어요. 아 진짜 몽골몽골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6층에서 1층까지 한 손으론 아이스크림을 쥐고, 한 손으론 워커를 밀며 내려왔을 로이 할아버지와 그 아이스크림을 받아 고맙다고 웃으며 받으시는 할머니의 우정이 마치 소년 소녀의 그것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워 보였거든요. 그 이후로는 로이 할아버지는 제겐 그저 좋은 사람이 되었고요.
지금도 가끔 펀드레이징을 위한 공연을 한다거나 하는 소식을 들을 수 있지만, 이제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지 않는한 만나기가 힘들어진 로이 할부지입니다만, 가끔 제가 일하는 곳에서 토론토 내 일본인 노인들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를 하거나 하면 그도 꼭 참석을 하니 다행히 한번씩 얼굴을 볼 기회가 있습니다. 여전히 만나면 뽀뽀하자고 들이대는 로이지만, 하나도 변한게 없는 그의 모습이 눈물나게 반가울 뿐입니다. 철부지 소년같지만 자기가 열정을 갖는 일에는 한없이 진지해 지는 남자. 멋지지 않나요?
우리 널싱홈 최애캐라능!! (요새 배운 말 써먹기)
지금 옆에서 소파에 반쯤 누워 유투브 비디오로 게임 리뷰를 보면서 클클클클 웃으며, 과자를 집어먹은 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는 저 한 없이 철 없어 보이는 저 남자도, 자기 일 할 때는 샤프하고 진중한 남자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살짝 가져보아야겠습니다.
그러는게 제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아요.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