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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식이 Mar 24. 2016

명절날의 시어머니 같은,

Y 할머니



        얼마 전 요리 시간에 유부초밥을 만들었더랩니다. 개인적으로 꼬들꼬들한 밥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스시용이니 좀 물을 적게 넣어서 밥을 했더니, 아이쿠야 밥이 좀 많이 꼬두밥이 되어버렸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우리 푸근한 외할머니들같던 거주자 분들이! 돌연 명절의 시어머니들로 변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밥이 좀 많이 되구나." "얘야 쌀 다섯 컵이면 물은 다섯 컵 반을 부어야 한다." "얘야 너는 집에서 밥은 해 먹고 다니는 거냐" "얘야 얘야 이리와서 내 얘길 좀 들어보거라" 하는 잔소리를 시간 내내 듣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전문적인 일이니 어쩌니 떠들지만, 결국 할머니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고, 친밀하지만 프로페셔널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호불호가 심해서 직원 누가 운동을 진행하면 가고, 누가 하면 안 간다 하는 것도 다반사인데다가 삐지기도 잘 삐지시거든요. 그룹 활동 중엔 나부터 해줘라, 나도 해줘라, 왜 나는 안 해주냐, 난 아까부터 기다렸느니라의 아우성이 끊이지 않습니다. 한순간 교통정리 잘못 했다간 앞으로의 몇 달이 괴로워질 수 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입술은 양쪽으로 바짝 끌어올려 고정시켜 놓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웃는 얼굴로,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하지만 절대 짜증내는 어투나 표정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친절하게는 대하지만 주도권과 결정권은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시어머니 중의 으뜸 시어머니 Y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Y 할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캐나다에 오신지 얼마 되지 않은 할머니로 참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가는 분들 중 한 분입니다. 할머니는 젊었을 적 마을 학교에서 소녀들에게 다도나 꽃꽂이 등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예의범절이나 몸가짐 등에 예민하신데, 바로 그 예민함과 남을 가르치던 습관이 이제는 할머니를 고집불통의 트러블메이커로 만들어 버린 듯 했습니다. 주위의 스탭들은 물론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대할 때 마치 본인의 학생들을 대하듯 가르치려고 하시니까요. 특히나 할머니의 전문분야였던 꽃꽂이 시간이 되면 할머니는 정말 폭주를 하시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들에게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꽃을 그렇게 마구 꽂는 게 아니라 (양 손으로 아래서 위로 넓혀가는 모션을 취하며) 밑에서부터 이렇~게 퍼져나가는 거라고!”라고 호통 치는 소리가, 매 시간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몇 번이나 울려 퍼집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위험하게 돌아다니시며 한 명 한 명의 작품을 검사하듯 확인하시고, 계속 잔소리를 하시고요. 이러니 이제는 그 주변에 아무도 앉고 싶어 하지 않으시고, 그 성격 좋은 Sue마저 “Ugh, she is so trouble.”이라고 할 정도가 되었어요. 잔소리를 하시다가 마음대로 안 되면 책상을 손으로 쾅쾅 치시거나 워커를 바닥에 꽝꽝 내리치기까지 하십니다. 이 할머니가 있는 곳에는 싸움이 곧잘 나서 항상 엑스트라로 신경을 써야 합니다. 치매가 심한 어떤 할머니가 식사 때 두르는 에이프런을 계속 두르고 있어도 큰 소리로 나무라시며 저거 빨리 벗기라고 하시고, 제일 난감한 건 교회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 말씀을 하시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때 목사님을 향해 “말을 모두에게 들리게끔 큰 소리로 따 박! 따 박! 해야지, 그렇게 웅얼웅얼하면 아~무도 못 알아 듣잖수!!” 하고 화를 내실 때입니다. 일흔이 넘은 (물론 할머니들보다는 한참 아래시지만), 은퇴하신 목사님을 향해서도 할머니는은 거침이 없으시지요. 할머니 본인 귀가 안 들리는 거는 생각을 못 하시고, 목사님과 같이 온 교회 신도들도 있는 앞에서 그렇게 야단을 치시면 민망해하시는 목사님 앞에서 나는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할머니에게 더 신경이 쓰이고 짠한 마음이 드는 건 아무래도 들어 오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정갈했던 할머니의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체구에 고슬고슬하게 파마한 흰머리, 조용히 책을 읽으시거나 일본티비를 보시던, 단아하고 꼬장꼬장한 할머니셨죠. 자주 할머니 곁에 가서 대화를 하거나 옛날이야기를 듣고는 했었습니다. 그랬던 할머니가 어느날부턴가 점점 바닥만 보며 걸으시고, 음식물 자국이 눌어붙은 옷을 며칠 째 갈아입지 않으시더니, 샤워를 하러 가자는 직원을 향해 “나는 매~일밤!! 내가 혼자 샤워를 한다고!!”라고 하는 지금은 마치 할머니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것 같은 그 말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제는 아드님이 일주일에 한번 오셔서 한 시간 동안 사정사정을 해야 겨우 샤워에 모시고 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전의 할머니를 생각하면 이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이렇게 한 번씩 모두를 힘들게 하는 Y 할머니시지만 언젠가 할머니가 더 기운이 없어져 호통을 그만두신다면, 그런 할머니를 보는 것은 훨씬 더 괴로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축축 늘어지고 고요한 요양원 보다는 싸움 소리라도 시끌벅적 복작복작한 편이 훨씬 좋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는 바이고요. 


다만 목사님께만은 할머니 제발 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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