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식이 Mar 31. 2016

널싱홈의 탕아들 (1)

그대의 미소에서 김고은의 청량함을 느꼈다면 난 미친건가요


       초등학교 때 다운 증후군의 아이들을 모아놓은 반이 있었습니다. 하필 그 반이 음악실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그들을 마주쳐야 했는데 어린 나에겐 그것이 굉장한 공포였더랬죠.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나만 그랬던건 아니고 또래 여자애들이며 남자애들 할 것 없이 다들 그랬던거 같아요. 그런데 그 아이들은 또 우리가 무섭다고 꺅꺅 거리는게 재밌었는지 더욱 어흥~! 인지 어헝~!인지 뭐 이런 소리를 내며 따라오곤 했지요. 세상 그보다 무서운 게 없었습니다.


        지금 내가 일하는 곳에는 젊지만 다운 증후군 등의 이유로 요양원에서 지내는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지금의 그들은 나에게 어흥을 하며 쫒아오지 않아요. 오히려 내가 말을 걸면 무시를 하거나 그냥 저어쪽으로 가버리죠. 우리 층의 그는 40대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할머니들 사이에 있다 보니 모두에게 귀여움(?)을 받으며, 뭔가 사춘기 반항아 느낌의 십대 청소년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거기에 걸맞게 야구 모자도 항상 두개를 겹쳐서 쓰고 다니고요. 그러다가 한달에 한번 생일잔치를 하는 날 그의 매력이 포텐을 터뜨리는데, 그건 엔터테이너 아저씨가 와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때입니다. 엔터테이너 아저씨 바로 앞자리에 앉아 코러스 및 백댄서의 포지션을 명받아 열심히 흔들흔들 춤을 추는데, 그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 꺄악 하는 환호성 소리와 함께 온갖 쏘울 풍만한 직원언니들이 삘을 받고 뛰쳐나와 그의 곁에서 범상치 않은 춤사위를 보여줍니다. 그렇게 이벤트는 무르익고 마지막엔 항상 엔터테이너 아저씨가 그의 이름을 호명하며 우리 모두 그에게 박수를 쳐줍니다.


        그런 요양원 내 귀여움을 담당하는 그가 마치 사람을 골라가며 상대를 한다는 듯, 다른 사람들이 빙고하러 가자 그러면 아무 말 없이 따라오면서, 내가 가자 그러면 일단 무시를 하는 겁니다. 흥칫뿡. 나는 서열이 안되서 항상 무시를 당하나 싶었습니다. 이게 참 사람 마음이 웃긴 게, 처음엔 사실 좀 다가가기 무섭고 그래서 내쪽에서 피하고 그랬으면서, 막상 그렇게 그쪽이 상대를 안해주니 왠열, 서운한겁니다. (뭐지 이 밀당스러운 기분은.) 점점 더 내가 먼저 계속 찝적거리면서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기도 했고, 거북이처럼 느리게 쓰윽 고개를 돌려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맨날 무시를 당함에 익숙해지던차, 어느 날 한번 미소를 받자 처음의 그 거부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기분이 짱 좋더라구요. 이제는 한번씩 기분이 좋을 때 엄지를 살짝 올려주고, 정말 진짜 좋을 땐 양쪽 엄지를 올려 Two thumbs up을 보여줍니다. 응이라는 대답 대신 눈썹을 은근하게 올렸다 내리는데 이게 정말 미묘해서 까딱하면 놓칠 수가 있기에 정말 유심히 봐야 합니다. 목욕하러가기 싫다고 외치는 노~!!! 외에 유일하게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걸걸한 빙고!라는 외침과 함께 보여주는 그의 환한 미소에서 떠오른 여러 단어들는 귀여움? 상큼함? 김고은이세요? 등등.


        지금 생각해 보건데 그 사람은 다 느끼고 있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눈을 피하고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말을 걸고 하며, 온 몸으로 '나는 당신과 이야기 하는게 굉장히 거북해요' 라고 말하고 있던 나를, 이미 수많은 경험에 비춰 금방 알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안해요. 어릴 때는 진짜 뭘 몰라서 그랬어요. 커서도 철이 덜 들어서 그랬는데요. 더 나이를 먹고 이제 우리 엄마가 나를 낳았을 그 나이 즈음이 되고 보니까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많이 달라지더랍니다. 


        이제는 말 걸어서 대답 혹은 간단한 눈짓 정도의 인사를 받는 확률이 조금이나마 높아졌습니다. 지금도 아이스크림이나 빙고 시간에 나를 스쳐 휘적휘적 걸어가는 그를 따라가며 "Do you want, wait, do you wanna have an ice cream? Ice cream!! you don't want it? it's reeeally delicious!" 라고 끊임없이 질척거리는 중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뭐, 가끔 웃어는 주니깐 뭐, 그럼 됐지 뭐. 하고 위안하는 일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날의 시어머니 같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