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귤 지음
내용의 무거움을 저울로 잴 수 있다면, 표지 한 장이 모든 내용을 합친 것보다 무거울지도 모른다. '우울증', '정신과'라는 키워드를 보고 책을 펼쳤친다가, 생각하지 못했던 명량한 일상툰에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물론 담담한 어투에 만화라는 특성이 있어서 그런 거지, 힘들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회복의 기미가 보일 때 더욱 나락으로 빠지는 사건이 발생한 순간이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까지 갈 것도 없이, 조그맣게 키우고 있던 희망의 불씨가 사라지는 일은 당사자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절망적인 일이다.
꼭 감기에 걸려야만 내과를 가는 것이 아니듯, 병적으로 심각해져야 정신과를 가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정신과에 대해 꺼려지는 시선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리 정해둔 '힘들었지만 나아졌어요'라는 결말이 아니라 병원을 가고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는 보통날. 아직 정신과에 대해서는 허용되지 않는 것 같다.
만일 이 기분장애라는 병이 나에게 긍정적인 것을 남긴다면, 그건 '정신장애인'이라는 소수자로서의 예민함이기를 바란다. 차별과 비하의 대상이 되어본 자의 비슷한 이들을 향한 연대의식이기를 바란다. (p.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