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달 지음
반려동물과는 사이가 멀다. 고양이는 털 알러지가 심해서, 강아지는 어렸을 때 다리를 물린 트라우마가 있어서다. 이제는 길을 걷다 만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산책을 하는 반려견과 애견인의 모습. 경험하지 못해 제대로 느끼기 힘들었던 그들의 관계를 이 책을 통해 보다 진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재미난 이야기가 있었음에도 기억나는 것은 희극이 아닌 비극이다. 빌보와 작가가 산책을 하다, 집에서 방치되었다시피 하다 갑자기 뛰어나온 백구에게 물려버린 이야기다. 사람이 다치는 것은 '상해'지만 동물이 다치는 것은 '재물손괴'라는 법의 현실도, 트라우마가 생긴 백구가 그 좋아하던 산책을 무서워하게 된 것도, 백구 역시 주인의 방치로 마음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일이라는 사실까지 모든 것들이 충격이었다. '내 가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시큰둥하는 관계자들에게 작가가 화를 내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작년 리그오브레전드 1년 농사를 결정짓는 롤드컵을 앞두고, 해설자 한 명이 몇 주간 자리를 비웠다. 복귀한 그는 "고령이었던 반려묘의 마지막을 잘 지키고 왔다"며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당시에는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자리를 비울 정도로 큰 인가?'라는 의문이 조금은 있었다. 이제는 그 결정과 양해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공감할 수 있다.
어쩌면 정말로 우리 가족들은 나만큼 빌보의 산책 거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빠방을 타기 위해서라면 지옥에서라도 돌아올 빌보를 위해 다들 기꺼이 시간을 쪼개어 차 키를 손에 쥐는걸.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서로 공유할 수 없는 상처를 각자 안고 있다고 해도.
- p.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