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기에, 상담에서 특별히 말하고 싶은 내용은 없었다. 이런 날에는 상담에서는 정신과 진료, 정신과에서는 상담에서 나눈 말들을 다시 복기하며 이야기하는 편이다. 비슷한 현상을 '안전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꽤나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삶을 사세요'라는 문구에서 계속 울컥함을 느낀다는 말로 운을 떼었다. 정신과에서는 순간의 감정보다 점점 나아지는 기분에 집중해서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던 부분이다. 당연하고 평범한 저 말에 왜 감정이 동요되었을지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곁에서 바라보는 사람, 그리고 스스로조차 삶을 주체적으로 산다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다. 지금까지 삶의 거의 모든 결정과 책임은 스스로 졌기에 말이다. 그런데 내면을 들여다보니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시간을 잠시 돌려 대학교 1학년 때를 회상했다. 영어를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열심히 수능 공부만 했던 사람에게는 회화 위주의 대학 영어 수업이 벅찼다. 학기 마지막 날, C+를 준 원어민 교수와 면담이 있었다.
"당신은 똑똑합니다. 그러나 영어 실력이 부족해요. 정말 영어를 열심히 해서 따라잡던가, 아니면 영어를 쓰지 않는 진로를 찾아보세요"
이 대목에서 상담사님은 크게 화를 냈다. 자기가 뭔데 이제 갓 성인이 된 아이한테 진로를 정하느냐. 그리고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에 대해 물었다. 당신은 화가 나지 않으셨냐고.
놀랍게도, 이전까지 화가 난 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외국인이라 그런가 버릇없이 말하네...'라는 생각은 했지만 저 문장 자체를 부정한 적이 없었다.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뼈저리게 느낀 점이었다. 어쨌든 실제로 진로 결정에도 영향이 있었고, 가끔은 되려 고맙기까지 한 에피소드였다.
조금씩 이야기를 나눠갔다. 그리고 답을 찾았다. 결정에 영향을 주는 조언과 정보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결정은 했지만, 판단이 없었다. 겉만 꽉 차 있고, 속은 공허함으로 비어있는 주체성이었다. 한창 힘들 때 들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남의 말만 듣고 당나귀를 이리저리 타고 다니다, 결국 당나귀가 쓰러져버린 이야기. 그 모습이 단지 힘들었던 작년뿐 아니라, 삶의 전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이야기였지만 결론은 비슷한 곳을 향한다. 내 속에 '나'가 없는 상황이다. 그 부족함을 타인으로 채워나갔던 지난날들이다. 그래서 눈치도 봐야 하고, 비판받기가 두려워 완벽주의로 향하고, 인정욕구가 크고, 질문과 요청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마음속 여과기를 설치할 시간이다. 나의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타인에게서 오는 것들은 나의 기준에 맞게 걸러야 한다. 그것에 대한 옳고 그름은 다음 문제고, 감정을 따른 판단이 먼저 필요하다. 걸러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아서 휴직이라는 시간과 상담이라는 비용이 함께하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