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두 타임인 요가시간이 한 타임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새벽 6시 타임이 추가되었지만, 잠을 깨는 게 아니라 잠을 자는 걸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선택하고 싶은 시간은 아니다. 원래 9시에는 잠은 깼지만 비몽사몽 한 기분으로 가기 싫어서 주로 11시에 갔는데, 이제는 반드시 10시에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 수업이 하나로 합쳐지니 많은 것들이 바뀐다. 조금은 여유롭였던 수련장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동안 11시 타임에는 고수들이 많았기에, 거의 1:1로 밀착 마크를 당했었다. 전신에 자극을 받아서 오후가 힘들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개운한 아픔(?)이 덜 느껴진다. 나름은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도움을 받는 것 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같이 운동하는 남자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느 날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그분께서 인사를 먼저 건네주시고는 고마움과 원망이 뒤섞인 말투로 "왜 이제 오셨냐,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제주도 여행과 비염이라는 녀석 때문에 거의 2주 가까이 못 갔었는데, 아마 선생님께서 내 이야기를 하시며 남자가 당신 혼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셨을 것 같다.
아마 요가나 필라테스에서 남자를 보기가 힘든 이유 중에 '혼자 하는 게 민망해서'라는 것도 굉장히 클 것이다. 실제로 주위 남자들에게 요가를 권할 때 많이 듣는 핑곗거리기도 하다. 그런데 요가와 필라테스를 처음 하는 날부터 지금까지 남자가 같이 있던 날이 거의 없었는데도, 나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조금 서로 민망한 동작이 있긴 한데, 막상 동작을 할 때는 도저히 다른 사람을 보거나 생각할 여유가 없다. 호흡을 정리할 때도, 성격상 마초 한 분위기가 더 싫어서인지 '남자가 나 혼자'라는 의식이 다른 감정으로 확장되거나 하진 않는다.
끔찍할 정도로 남의 눈치를 보고, 부끄러움과 수치심도 강하게 느끼는데, 이 지점에서는 전혀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신기하다. 그러고 보니 발표도 마찬가지다. 영어가 아닌 이상 팀플을 하면 발표를 자연히 맡을 정도로 자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데, 직전에 조금 떨리는 걸 제외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발표를 하는 경우에는 긴장감이 없다기보다는 미뤄지는 경향이 있다. 발표가 끝나고 내려가면 갑자기 몸이 풀리면서 기력이 떨어진다. 길거나 중요한 발표를 한 날은 그 시간 이후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또 하나는 누군가 발표를 '감시'혹은'점검'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아예 처음부터 그런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중간에 누군가 새롭게 들어온 것을 확인하는 순간 발표가 말려버린다.
여기까지 글로 정리하니, 두 가지 관점이 생긴다. 하나는 내가 왜 이런 습성을 가졌는지에 대한 궁금함. 다른 하나는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과거의, 그리고 지금의 내가 더 많이 가지는 생각은 전자이다. 이런 요소들에서 나의 특성을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서 오히려 일부러라도 후자의 생각을 가지려 한다. 감정에서는 '왜'가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런 질문은 생각해 두었다 궁금하면 정신과 선생님이나 상담사님께 물어보는 정도로 족하다. 그분들도 사실 그렇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은 안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요소 하나하나가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까 한다. 나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분석하고 평가하는 건 어차피 내가 안 해도 타인과 조직으로부터 실컷 당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