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들리는 커뮤니티에 가끔, 아니 생각보다 자주 우울함을 토로하는 글을 보게 된다. 의지로 버티다 결국 지역 정신과를 추천받는 글. 몇 년이고 치료를 받으며 우울과 싸우다 지쳐가고 있음을 토로하는 글. 가끔은 절망의 끝으로 떨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도와달라고 외치는 글까지... 이제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글들을 보다 보면, 뭐라 할 수 없는 감정들이 교차된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는 안타까움, 힘내라는 응원과 함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조금은 이기적인 안도감까지 엉켜진다.
또 하나의 우울한 글을 보게 되었다. 조금이나마 힘이 될까 봐 싶어 댓글창을 열었다. 여러 가지 응원의 댓글이 있었지만,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하나의 글이 있었다. 우울증으로 몇 년째 힘들어하는 그(녀)는 졸업도, 취업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많은 것을 이루어낸 상태에서 우울해졌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내용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분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내심 '차라리 많은 것이 결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우울해졌다면'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고 있는 길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돌아가는 것이 힘들다. 일방통행은 아니지만 좁디좁은 길 위를 달리고 있다. 뒤따르고 있는 수많은 차들. 그들을 제치고 돌아가는 건 너무나 힘들기에 길에 들어가지 않았던 때를 소망했었다.
간과했던 것은 모든 길에는 오르기 전 장애물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울함은 어떤 높이의 장애물도 넘어갈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다. 어느 길이든 상관없으니, 바로 앞에 저 빌어먹을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음에 한탄한다. 더구나 제 때 장애물을 넘지 않으면 구덩이를 파 버려 높이를 올려버리는 우리나라의 정서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의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제일 힘들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지만, 올챙이 역시 개구리를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걸 가지고 서로를 비교하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사회인이 되기 전이건, 사회인이 된 후건, 우울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든 일이기에. 더 힘들고 덜 힘든 게 아니라, 그냥 '힘듦'이다.
언젠가 우울함을 극복할 그(녀)가 보란 듯이 장애물을 뛰어넘고, 자기가 소망하던 길로 힘차게 나아가기를
그리고 언젠가 우울함을 극복할 내가 멈춘 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기를. 그리고 스스로를 믿으면서 기어를 D에 둘지 혹은 R에 둘지 선택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