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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Apr 17. 2023

MMPI 검사 후기

알고 있던 것들,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된 것들

지금 다니고 있는 심리상담소는 15회 이상 상담을 신청하면 MMPI검사를 무료로 할 수 있다. 어차피 몇 달은 꾸준히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생각지 않은 보너스를 받은 셈이다. <금쪽상담소> 같은 심리 상담 콘텐츠에서도 자주 나오는 검사고 공신력도 매우 높다고 하니 굉장히 궁금해졌다. 10번째 상담을 마치고 검사지를 받아 집으로 왔다.


500여 개가 넘는 문장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게 T/F로만 이루어졌다. 저작권 문제로 질문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질문들을 보면서 솔직하게 든 생각은 '되게 별 걸 다 물어보네?'였다. 어렴풋하게 군대 신체검사 때 보았던 듯한 문장들도 있었다. 그때는 검사 대충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꽤나 그럴싸한 문제들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다음 상담 때는 검사지를 상담사 선생님께 드렸고, 다시 한 주가 지나 검사 결과를 받았다. 결과지만 봐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어서 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결과를 살펴보았다. 재미있는? 점은 막상 결과를 듣고 있는 사람보다 결과를 설명해 주는 선생님이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상담에서는 밝혀지지 않았던 것들이 나와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결과 중에서는 관계지향적인 태도 같이, MBTI 같은 검사나 살아가면서 '나는 이렇구나'라고 느꼈던 내용들도 많았지만, 검사를 통해 비로소 실체를 알아차린 내용들도 많았다. 


우선 검사 결과 자체에 혼란스러운 점이 많다고 했다. 성의 없이 대답해서 타당도가 낮거나 그런 건 아니고, 뭔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특성들이 많이 보였다. 예를 들면 굉장히 성취지향적인 성격이면서도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잘하는데, 누군가 감시하거나 테스트한다고 판단하게 되면 퍼포먼스가 심각하게 저하된다'로 나타난다. 스스로를 돌이켜보니,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가에 대한 답 중에 '누군가로부터 지적받거나 간섭받기 싫어서'라는 생각이 있었다. 


우울함에 빠진 상황인지라 당연히 우울 관련 특성 역시 높았는데, 이 우울의 형태가 조금 이상했다. 스스로에게 높은 성과나 도덕을 요구하면서, 그 목표에 달성하지 못하는 자신의 못난 모습을 인정하지 못해 생기는 우울이라고 한다. 상담사 선생님은 임의로 '자기애적 우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집에서 관련 검색을 하다가 가장 관련성이 높은 표현을 찾아냈다. '내현적 자기애'였다. 이게 심하면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로 발전할 수 있다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높은 성과와 도덕을 스스로가 아니라 타인에게도 적용한다고 하니... 나 역시 혼란스러워졌다. 


물론 인터넷에 있는 증상 몇 개만 가지고 나라고 단정해서는 안되고, 검사 척도 중에 지나치게 튀어나온 부분은 없어서 너무 심각하게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상담사님의 말씀도 있었다. 다만 신기해진 부분이 있었는데, 이전에는 복직 후 경로에 대해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이날은 이후 경로에 대해 많은 부분을 물어보고 걱정을 하신 점이다. 역시 1년 전 생각처럼 직업 자체에도 무언가 맞지 않는 부분은 분명히 있어 보였다.


모든 결과를 듣고 지금까지 딱 하나 머릿속에 각인된 문장이 있다. 지난 1년간 그렇게 듣고, 다짐을 하면서도, 결코 수용하지 못하는 문장이다. 앞으로도 언제 될 수 있을는지는 모른다. 30여 년을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연습하는데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혹시라도 마음이, 그리고 생각이 잊어버릴까 봐 다시 한번 남겨본다. 


'못난 나도 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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