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심리상담에서는 나도, 상담사님도 깜짝 놀랄 정도로 상태가 좋아짐을 느꼈다. 하루하루 복직 날짜가 다가오는 것이 그다지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았다. 지난 1년간 거의 모든 시간 동안 스스로를 괴롭혔던 자괴감. '버티지 못하고 탈주해 버린 나약함'에 대해서도 조금씩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위하는 힘이 생겼다는 사실은 동기들과의 카톡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해외 출장을 위해 며칠간 밤낮없이 일한 동기의 모습을 보고 다시금 공포감이 들었다. '내가 저 일을 할 수 있을까', '쟤는 저렇게 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원래였으면 여기에서 끝났을 부정적인 생각들이다. 그런데 다시금 마음을 살펴보니, 내면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퍼졌다. '동기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상황이 닥치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음이 뒤따라왔다. '그렇게 할 수 없더라도 괜찮다'.
명확한 포인트가 없어 조금은 횡설수설했던 상담시간. 주변부에 머무를 수 있는 힘과 중심에 설 수 있는 힘을 다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 마음속 깊이 다가왔다. 추측하면 전자는 선천적인 기질, 후자는 자라면서 키워나간 힘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혼자 할 때와 누군가와 같이 할 때가 달랐던 적이 많았다. 혼자 게임을 하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싱글게임을 하거나, 보조하는 역할을 좋아한다. 그러나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면 많은 경우에 지휘하는 포지션을 맡았다. 여행에 있어서는 더욱 차이가 컸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간다면, 상대의 호불호와 동선을 고려해서 3개 정도의 안을 생각했다. 그래야 여행이 주는 변수를 차단할 수 있었고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혼자 가는 여행에서는 누구보다 그 변수를 좋아한다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상담과 명상을 거듭할수록 확신이 든다. 지금의 상황은 아프다기보다는 지친 것이다.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온 것을 이제는 무의식과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 그래서 올해의 목표를 정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찾는 것. 미래를 준비하는 어떠한 고민도 올해는 하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 돌아갈 부서가 워라밸이 무너질 정도로 근무강도가 높지는 않다고 들었다. 정작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힘든 일을 요구받는다면 무조건 '수용'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런 연습이 필요하다.
다시금 인생도서 <꽃들에게 희망을>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누군가에게는 무척 중요한, 그러나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애벌레의 탑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나비가 되어 날아가고 싶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한 치의 변화가 없다. 그러나 조금 달라진 생각이 있다. 그 탑 중간 어딘가에 머무르더라도, 나에게 편안한 공간이라면 머물면 된다. 혹시나 마음이 바뀌어 탑 꼭대기로 올라간다면 또 그것 나름대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문제가 되었던 건 '무의미한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무의미하게' 탑에 붙들려 떠밀려 올라가는 것이었다.
언젠가 피식하며 보았던, 지금의 상황에 무척 맞는 만화를 커뮤니티에서 주워왔다. 브런치에도 꽤나 많은 분들이 같은 소재로 글을 쓰신 듯하다. 지금까지는 좋은 인삼이 되기 위해서만 노력했다. 지금은 좋은 인삼이 못되더라도, 아니 인삼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상관없는 용기가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