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스리기, 내려놓기
피렌체가 너무 좋아서 한국을 떠나 자리 잡았다는 게스트하우스 사장 부부. 자신의 취향으로 가득한 공간을 만들고 손님들과 소통하는 독립서점 주인님. 퇴직금 전부를 투자해서 근사한 카페를 꾸려가는 카페 사장님...
스쳐간 많은 인연 중에, 유독 한 번쯤 되어보고 싶은 마음을 투영한 사람들이다. 현실의 수많은 어려움이 가려진 상태에서 여유로운 공간을 바라보면,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야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좀처럼 욕망이 없는 존재에게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한 번쯤 마음 깊이 살펴볼만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자신만의 '작은'공간을 '주도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과 '주도적'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내가 갖고 싶은 욕망과 관련이 있었다. 먼저 작다는 것은 책임의 범위에 해당한다. 절대로 생계를 유지하며 공간을 꾸려가는 그들의 책임감을 낮추어 보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끝없이 고민하는 대상이 그 공간을 넘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의미이다. 피렌체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도시 전체의 관광과 숙박을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며, 독립서점 책방을 운영한다고 해서 독립출판계나 한국의 독서문화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주도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예능 '금쪽상담소' 남보라 씨 편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13남매의 맞딸로 커야만 했던 그녀는 오은영 박사와의 대화에서 연기보다도 장사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오은영 박사는 이에 타인으로부터 어떻게 할 것을 요청받는 연기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는 장사의 차이를 언급하며 그녀가 '지나친 주도성'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한 일에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는 것을 매우 경계하고 불안해한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변경되는 일정에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던 작년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결론이 명확해 보였다. 먼저, 지쳐있음이 확실하다. 수차례 상담을 받으며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미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그래서 올해는 건강을 회복하는 일 이외에는, 특히 일과 관련하여 '생산적'으로 여겨지는 활동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 한다. 주도권에 대해서는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는 외부에서 오는 일을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을 동일시했다. 그래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받아들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필요한 것은 더럽고 치사한 일을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더럽고 치사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을 받아들인다는 태도였다.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던 내용, '모든 문제는 내 속에 있다'라는 말을 조금은 더 납득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욕망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비록 평생 여건이 불가능할지라도, 마음속 파랑새 하나 날려보는 게 못할 일은 아니니까. 작지만 멋진 공간을 꾸미는 사장님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그 속에서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것도 멋진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