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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May 30. 2023

소비 폭식? 일기

출처 : pixabay

지난 두어 달간, 택배기사님께 죄송한 마음이다. 거의 매일 크고 작은 택배상자가 집 앞에서 반기고 있었다. 최대한 신경 쓰며 유지했던 마이너스 통장이었지만, 뒤처리는 미래의 나에게 부탁하며 씀씀이를 크게 늘렸다.  우울을 이기기 위해 쇼핑 중독에 걸리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은 좀처럼 치르지 않았던, 스스로의 '취향'을 찾아가기 위한 탐색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거의 모든 것이 화폐로 설명되는 자본주의 사회임을 느끼며 쿠팡, G마켓 같은 사이트를 매일매일 구경했다.  


제목 어그로를 위해 소비 폭식이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진짜로 문제가 될 정도로 돈을 쓴 건 아니다. 다만 전에 있었던, 최선의 대한 강박과 그 속에 숨어있던 욕망에 대한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어느 정도 갖고 싶다는 감정이 생긴 것들을 사 보려 한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는 상담사 선생님의 말씀이 구매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과소비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어지간하면 이제 별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외나무다리 밑에 있는 그물망은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하다. 


이것저것 물건을 사면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바로 '역체감'이다. 15만 원짜리 푹신푹신한 쿠션화를 신다가 원래 쓰던 5만 원짜리 러닝화를 신고 달리면 뭔가 발바닥이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근마켓에 올라와 냉큼 데려온 갤럭시워치 5에서는 원래 쓰던 액티브 2 모델이 주지 못했던 빠릿빠릿함과 정확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닳고 닳은 액티브 2는 헐값에 당근을 해야 할지, 아예 나눔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옷은 또 어떠한가. 똑같이 생겼는데 비싼 옷은 저렴한 것보다 가볍고 튼튼한 건지. 천이 다른지 제조방법이 다른지는 모르지만 뭔가가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제 어지간한 건 다 산 듯하고, 복직을 하면 다시금 돈을 모으는 재미를 더 많이 느낄 것이라 더 이상 택배기사님을 매일 괴롭히지는 않을 것 같다. 검소함은 분명 미덕이지만 비싸고 좋은 걸 갖고 싶은 인간의 욕망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다면 때로는 일부러라도 반대쪽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 지붕에서 물이 새는 집에 사는 청백리는 존경받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걱정 없는 아늑한 집에 사는 관료가 나라를 위해 일하는데 전력을 다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 아늑함을 넘어 사치와 향락에 빠지는 건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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