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제가 우한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지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해가 바뀌어도 우리가 계속 코로나 바이러스의 고통 속에 있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었는데 말이죠. 최근 들어 3차 유행이 잦아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여러 가지 규제들도 당분간은 계속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동네를 지나다 보면 문 닫는 상점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교외에 번화가가 아니라서 근근이 유지하던 가계들도 12월부터 시작된 2.5단계와 맹 추위에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당장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데 그 높은 임대료를 감당해야 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못 버틸 겁니다. 자주 가던 국숫집이 문을 닫았는데 옆에 커피집 사장님께 물어봤더니 2칸짜리 상점 임대료가 아마도 300만 원은 됐을 거라고 하네요.
국수 한 그릇 5000원도 안 했었는데 월 300만 원 임대료를 내려면. 한 그릇에 1000원 남긴다고 해도 1500 그릇은 팔아야 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50그릇은 팔아야 겨우 임대료 내는 상황. 아침 7시에 열고 밤 10시까지 닫기 전까지 열심히 운영하시면서 추우면 아이들과 들어가서 저렴하게 한 그릇 하던 이웃이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코로나가 유행하게 된 것은 이 분들 잘못이 아닌데 왜 고통은 온전히 이분들만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말이죠. 적어도 임대료라는 것이 건물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 하에 내는 돈이니 만약 건물에 문제가 생겨서 전기가 공급이 안된다면 건물주가 책임지고 고쳐야 하고, 고쳐져서 정상적인 영업이 가능할 때까지는 돈을 받으면 안 되듯이 정부 지침 때문에 문을 열지 못한다면 임대를 해준 임차인도 건물의 용도를 다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나눠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했더니 다들 임대인의 상황을 안타까워 하지만 어렵지 않겠냐는 입장이었습니다. 개인과 개인이 맺은 계약을 정부가 개입하면 큰일 난다. 빚내서 건물 산 건물주들은 무슨 죄냐며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대한민국에서는 이렇게 사유재산과 재산권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그것이 꼭 보편적인 기준은 아닙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캐나다 교포의 글을 보면, 캐나다 정부는 같은 문제에 대해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서 피해받는 약자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위해 전문을 옮겨 봅니다.)
나는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자영업자다. 코로나 19로 2차 록다운에 들어간 지 40일이 넘었다. 가게문을 닫고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얘기다. 록다운이라고 하지만 모든 가게가 셔터를 내린 건 아니다. 약국 식품점 같은 필수 업종과 편의점, 세탁소는 문을 열고, 식당이나 커피점 같은 곳들은 테이크아웃으로나마 영업 중이다. 우리 같은 옷가게에도 커브사이드 픽업(미리 주문받고 가게 바깥에서 가져가기)을 허용하기는 했으나 하나마나다. 그래서 아예 문을 닫고 집콕 중이다.
가게 문을 못 여는 자영업자인데도 마음이 지옥 같지는 않다. 코로나 19 시국에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한국 자영업자와는 달리, 가게 문을 닫는 데 따르는 손실을 정부에서 어느 정도 보전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평소 수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정도 지원이면 연명은 가능하다. 문을 닫고 수입이 없는 자영업자만 지원받는 게 아니다. 코로나 19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 가게 문을 열되 벌이가 한 해 전에 비해 수입이 50% 이하로 떨어진 자영업자는 모두 지원 대상이다.
지원은 작년 3월 1차 록다운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록다운이 풀린 6월 말 이후에도 지원은 계속되었다. 가게 문을 열어서 돈벌이하면서도, 작년보다 수입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이유로 지원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지금 테이크아웃 영업으로 문을 여는 식당 주인들도 당연히 지원받고 있을 것이다.
록다운을 포함한 코로나 19로 벌이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 곧 자영업자나 실직자 들에 대한 보상은 이렇다. 2020년 3월 글로벌 팬데믹 이후 1인당 한 달에 2,000달러씩 받았다. 한국 돈으로 약 180만 원쯤 된다. 2019년에 일을 해서 1년에 5,000달러 이상 벌었다고 캐나다 연방정부에 소득 신고하면서 세금을 낸 사람이라면 모두 자격이 되었다. 여름 알바를 못하는 학생들에게도 4개월 동안 한 달에 1,000달러씩인가를 지원해주었다.
7개월이 지나자 이름을 달리해 또 지원을 시작.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고용보험금(EI)을 수령하고, 나 같은 자영업자들은 1인당 1,800달러를 매달 지원받는 중이다. 그러니까 작년 3월 이후 수입이 50% 이하로 감소한 사람은 한 달도 빼놓지 않고 계속 지원을 받아왔다. 물론 처음에는 수혜자 기준이 명확치 않아서 혼란이 있었고 자격이 안 되는 수십만 명이 신청했다고 들었다. 그들을 일일이 찾아내 반납 요구서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 일 하라고 공무원들은 월급 받는다.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임차료, 곧 렌트비이다. 작년 3월 이후 주정부는 건물주들에게 50%를 지원해줄 터이니, 건물주가 25% 손해보고, 세입자에게는 25%만 받으라고 했다. 말 안 듣는 건물주들이 있게 마련. 그래서 작년 10월부터는 연방정부가 나서서 65% 정도를 아예 자영업자에게 준다. 그러니까 장사를 하든 안 하든 신청을 하면 65% 정도는 무조건 지원받는다. 자영업자라면 2019년과 비교해 매출이 50% 이상 떨어졌을 테니, 대다수가 이 조건에 해당될 것이다. 가게 문을 열든, 나처럼 아예 못 열든 간에 렌트비는 35%만 내면 된다.
그 35%도 아무런 벌이 없이 재난지원금만 받는 나 같은 자영업자에게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부담을 메워줄 방도가 또 있다. 거래 은행에서 6만 달러를 무이자 대출해줬다. 한국돈으로 5천 몇 백만 원 되는 돈이다. 6만 달러는 2022년 말까지 쓸 수 있고, 그 이후에 4만 달러만 상환하면 된다. 2만 달러는 그저 주는 돈이다.
정리하자면, 나처럼 비필수 업종의 자영업에 종사할 경우 '재난지원금' '렌트비 보조금' '은행 무이자 대출' 이 세 가지 지원을 받고 있다. 록다운으로 가게 문을 일방적으로 닫은 데 대한 보상일 뿐만 아니라, 코로나 19로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은 시민들에 대한 지원이다. 록다운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자영업자들이니 록다운 정책을 쓰는 정부가 보상을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가요? 우리나라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마이클 샌들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최근 저서에서 능력 주의라는 틀 아래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카 드림에는 허상이 있다고 말합니다. 경제적으로 실패한 많은 사람들의 현실을 단지 "당신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몰아붙이고, 이런 대접에 모욕을 느낀 사람들은 분노하고 포퓰리즘에 빠져 도널드 트럼프를 맹목적으로 지지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손해를 보는 쪽이 자명한 시장조차도 개입을 망설이고, 재난 지원금조차도 캐나다처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원이 아니라 되도록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하고 금액도 제한적인 이유는 일단 특혜라고 비난받기 싫고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조정하면 공정하지 않다는 의식이 여야 정당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공정은 기회의 공정이고 성공 여부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달렸다고 하지만 현실은 태어난 가정의 경제 형편에 따라, 지역에 따라, 선택한 직업에 따라, 코로나 같은 재난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런 불평등한 결과에 대해서 적극적인 개입을 터부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진정 공정한 사회인가요? 우리는 진정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적어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게 하는 사회인가요? 우리는 왜 이렇게 모두가 공감하는 어쩔 수 없는 어려움에 속에 있어도 혜택을 공평하게 받아야 한다는 명목 하에 필요한 지원을 하지 못하는 사회인가요? 우리가 이러고도 아이들에게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최근에 인구 관련 책을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드네요. 백세 시대에 평생 직장의 개념은 없고 자영업으로 몰리는 베이비 붐 세대를 그저 성공하지 못한 건 당신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 치부하는 건 정부가 의무를 유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특히 지난 반세기 동안 급격한 인구 변화를 겪은 우리나라는 이 변동이 안정될 때까지의 시기가 제일 위험한 것 같은데 실상은 나이가 들어 소외되고 막 사회에
들어왔지만 기회가 줄어 소외된 양 측의 분노가 서로 다른 포퓰리즘으로 표출되어 서로 견제하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재원이야 더 걷으면 되겠지만.. 현 집권당인 민주당이 과연 이런 실제 삶에 필요한 지원을 진행할 사상적 기반이 있는지, 혹시 정부가 한다고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자체가 그런 걸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