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비난 받으면 또 어떻습니까?
14년 전에 저희 부부는 결혼을 하자 마자 일년간 프랑스로 파견을 가게 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아내는 두 학교에 강사로 출강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가족을 위해서 그만 두고 저와 함께 가기로 결정 했습니다. 그래서 2006년 9월에 결혼하고 저만 혼자 10월에 먼저 들어 갔다가 2학기를 마치고 12월에 아내도 들어와서 그렇게 1년을 파리에서 보냈습니다.
신혼을 파리에서 보낸 것은 저희 부부에게 참 큰 축복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서로 다르게 살았던 두 사람이 오롯이 둘이서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운 것이 지금의 저희 부부가 같이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어 가는 기초가 됐죠. 에펠탑이 멀리 보이는 15구의 한적한 길을 같이 걸으면서 장보고 동네 식당에서 밥 먹고 공원에 가고 시간이 나면 근처로 여행도 가면서 1년이 참 금새 지나 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께 보낸 시간 뒤에서 아내는 또 다른 그녀만의 삶을 꾸려 나가느라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이왕 프랑스에 온 기회를 살려서 오르간 연주 공부를 다시 시작했었습니다. 부족한 프랑스어 실력으로 어떻게든 선생님을 찾고 연습할 장소를 찾아 프랑스 오르간 협회에 문의해서 St.Sulpice 대성당 지하에 있는 오르간 사용을 허락받아 매일 같이 열심히 연습했었습니다. (그 장소가 과거 주교들의 묘지 옆이었다는 걸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됐죠.) 그리고 루앙에 있는 음악대학에 입학하기로 하고 지낼 집도 알아 보다가.. 과연 그 길이 아내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맞는 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그냥 한국으로 같이 돌아 왔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사실 "다 저 때문이었습니다." (회사가 가라고 한 거지) 제가 가고 싶어 간 것도 아니고 나름 파리에서 우리만의 시간을 가진 것이 우리 인생에 참 좋은 경험이었지만,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열심히 공부하고 그래서 자리잡은 직장을 그만 두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말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는 이국 땅에 살게 된 이유는 그런 남편을 만난 탓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왜 그렇게 "다 너 때문이야"라는 말이 인정하기 싫었을까요? 그리고 아내가 다시 같이 한국으로 돌아가겠노라 이야기했을 때도 왜 저는 고마워 할 줄 몰랐을까요? 미안한 마음은 한가득이면서도 그래도 비난 받기 싫고 책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어린 마음에 머물렀나 봅니다. 그리고 제 그런 태도 때문에 저는 늘 죄책감에 시달리고 아내는 아쉬움이 많은 시간들을 보냈었습니다.
13년이 지나 불혹을 넘긴 나이에 시작하는 두 번째 파견 생활은 그래서 처음부터 "다 제 탓입니다." 사실 중국이 프랑스보다 더 적응하기 어려운 점도 있고, 이제는 혼자가 아닌 아이들도 같이 돌봐야 하는 역할이 정해져 있어서 더 그렇기도 하지만, 아내는 지금도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도, 아이들을 친구들과 플레이 데이트 시켜 주고 나서도, 학교에서 한국 학생들 학부모협회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하다가도, 그냥 오늘은 너무 덥고 혹은 공기가 안 좋아도 습관처럼 이야기 합니다.
여보.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런 고생하는 줄 알아? 다 당신 때문이야. 알지?
그럼 알지.. 우리 와이프가 이런 데 올 사람이 아닌데 남편 잘 못 만나서 고생많아요.
고마워.
알았으면 잘 해.
그리고는 기운 차려서 더 잘 살아갑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고 사람들과 만나서 연대하고 운동하고 배우고 나누고 사랑하고..
사람은 누구나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나 늘 의심스럽고 그래서 내가 한 예전의 선택들을 후회하고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 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실제 내 삶의 질은 그 때 그 선택을 잘 했냐 못 했냐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어쨋든 가게 된 길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더 크게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쨋든 가게 된 길을 쉽게 받아 들이는데 도움이 된다면 "다 당신 때문이야"면 어떻습니까? 그래서 더 잘 해주면 되고, 그래서 더 같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말이죠.
중국이라는 특별한 곳에 오게 되면서 저는 "당신 때문이야"의 힘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파견이 끝나고 다음 길에 어떤 선택들이 앞에 놓여도 이제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결정해요."라며 뒤로 물러서지 않으려고 합니다. 같이 결정하고 책임도 져야죠. 그리고 힘든 일 생길 때마다 다 당신 탓이라고 해도 발끈하지 말고 받아 주고 같이 살 길을 찾아 보겠습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하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해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한용운 선생님도 아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탓으로 받아 들이는 '자발적 복종'의 힘을 아셨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