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란트 - 하든 - 어빙이 한 팀에서 뛴다고요?

그럼 소는 누가 키우고 수비는 누가 하나요?

by 이정원

회사에서 처음 조직을 맡았을 때가 2013년이니 벌써 8년 전이네요. 그동안 하던 일과는 결이 조금 다른 SW 개발 섹션이었는데 아웃 소싱 인원까지 20명 정도로 꽤 규모가 컸었습니다.


처음 부임하고는 의욕이 넘쳤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건 자신이 있었으니 배운다는 자세로 팀원 하나하나의 일들에 미진한 부분들에 일일이 관여했었습니다. 그렇게 애쓴 결과가 어땠을까요? 1개월 만에 메일은 하루에 200통이 넘게 쌓이고 팀원들은 제 결론만 기다리게 되더군요.


결국 회사가 제가 맡은 팀에 기대하는 일은 20명 분인데, 그건 제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채울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 팀장으로서 제가 해야 하는 일은 제가 다 하겠다는 마음을 줄이고, 팀원들이 자기 시간들을 충실히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팀원들 각자에게 지난 2주간 지냈던 시간을 기록해 보라고 한 다음에 권한이 필요한 일에는 권한을 주고, 일이 너무 넘치는 사람의 일은 조금 여유로운 사람들에게 나누고, 제가 꼭 풀어 줘야 하는 일은 같이 결정하게 조정해 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 전 NBA에 엄청 트레이드가 있었습니다. 자신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던 댄토니 코치가 팀을 떠나자 휴스턴 로케츠의 슈퍼 스타 제임스 하든은 태업을 시작하고 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끼칠까 걱정한 구단은 냉큼 다수의 1순위 지명권을 받고 케빈 듀란트와 어빙이 모여 있는 브루클린 네츠로 하든을 보내 버렸습니다.


현지 언론의 반응은 여러 가지입니다. 본인을 현재의 위치로 키워 준 구단을 배신한 하든을 비난하는 샤킬 오닐 같은 사람도 있지만 하든 같은 슈퍼스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며 브루클린이 잘 한 트레이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다 동의하는 건 미래를 버린 브루클린이 우승하지 못하면 그건 실패라는 점입니다. 듀란트와 어빙, 하든 이 세 득점 기계가 모이면 과연 우승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농구가 공격만 잘한다고 이기는 건 아니니까요. 신장과 팔 길이가 특별한 듀란트가 있기는 하지만 하든과 특히 어빙은 수비에서는 구멍에 가깝습니다. 제가 상대 팀이면 어빙 쪽으로 계속 미스매치 나도록 스위치 설정한 다음에 도움 수비 들어오면 골밑이나 외곽으로 돌리게 하겠습니다. 대표적인 우승 빅 3 조합이었던 시카고의 조던 - 피펜 - 로드맨 이나 보스턴 셀틱스의 가넷 - 피어스 - 앨런 조합, 마이애미 히트의 르브론 – 웨이드 – 보쉬 조합 모두 구성원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수비력을 담보로 했었습니다.


더군다나 공격 또한 교통정리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득점 기계가 세 명이어도 농구공은 하나이니까요? 공격 시간 24초 동안 누가 공을 잡고 누가 슛을 쏘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면밀한 조정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일단 하든은 휴스턴에서의 스타일을 버리고 동료들의 기회를 봐주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듀란트 야 원래 길게 공을 끄는 스타일이 아니니 죽은 공 마무리하는 슬레셔 역할을 수행해 주면 됩니다. 그런데 어빙은 어찌할까요?


국회 의사당 침입 사건이 발생한 후에 개인적인 사유라며 잠적했던 어빙은 돌아오자마자 본인이 길게 드리블하다가 슛 넣는 스타일로 클리블랜드와의 백투백 게임을 시원하게 말아 드셨습니다. 평균 38점이나 넣었지만 코트 마진이 -11점이니 팀에는 이만저만 손해가 아닙니다, 팀 전체 슛 시도의 27% (52/190)가 넘는 점유율로 56%(29/52)의 성공률로 공격했으니 뭐 평균보다는 훨씬 나은 효율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어빙이 공격한다고 혼자 드리블하는 동안 멍하게 보내 버린 다른 다섯 동료들의 시간은 그냥 그렇게 버려졌습니다.


아무리 슈퍼 에이스라도 48분을 다 뛸 수도 없고 모든 슛을 다 쏠 수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수비는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수비에서의 합과 기운은 유기적으로 흘러서 모두가 참여하여 기를 끌어올린 팀 공격으로부터 나옵니다. 에이스의 독단적인 플레이는 득점을 올릴지 몰라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 수는 없습니다.


회사에서도 궂은일은 피하면서 광나는 일에만 매달리는 팀원을 보면 그렇게 얄미울 수 없습니다. 그런 팀원 저런 팀원 다 같이 챙겨야 하는 팀장 입장에서 마음에 안 든다고 태업해서는 부랴부랴 팀이 자기를 처분하게 만든 하든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쉬었다가 돌아와서는 내내 공 잡고 공격만 하고 수비에서는 구멍만 되는 어빙이 좀 얄밉습니다. 제발 올해 브루클린이 보기 좋게 실패해서 단체 경기에서는 “팀이 먼저여야 한다”는 명제가 증명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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