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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Feb 21. 2021

성과지상주의가 가져온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부조리

이재영 이다영 학폭 사태에 대해


주진형 선생님의 글은 항상 더 생각해 볼거리를 만납니다. 이재영 이다영 자매의 몰락에 대한 그들도 피해자라는 선생님의 다른 관점을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봐주자는 말이냐라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저는 다르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문제는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분명 그 두 자매가 잘 못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로 돌아가서 그런 일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미성년자였던 두 자매 개인의 잘못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명확한 구조적인 문제를 찾고 이를 막아야 한다는 뜻이 더 보였습니다.

이제 들불처럼 농구로 야구로 번지는 폭로들을 보면서 진짜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건 엘리트 선수들이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는, 자기가 익숙했던 과거와 다른 미래를 보여줘야 하는 어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 스포츠뿐인가요. 성과를 위해 잘못에 침묵하고 넘어가는 행태는.. 어디에나 있어 왔습니다.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목에 자행된 무자비한 많은 조치들도 다 넘어갔고 위법한 증여를 해도 부당한 거래를 해도 경제를 위해서라는 명목에 우리는 너그러워야 했습니다.

두 자매는 안 됐지만 그냥 넘어갈 순 없습니다. 단순히 잘 나가고, 좀 얄미운 선수들에 대한 질투로 치부되지 않기를.. 성과지상주의에 물든 대한민국이 조금 각성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주진형 님의 2021년 2월 18일 페이스북 글입니다.

<학교 폭력인가, 아니면 스포츠 폭력인가?>

배구 국가대표 이재영, 이다영 선수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복잡하다. 어쩌다 한번씩 여자 배구 경기를 보다가 이재영 선수를 알게 되었는데 그리 큰 키도 아닌데 점프력이 좋고, 몸의 힘을 모아 때리는 스파이크 동작도 일품인 선수였다. 과거에는 김연경 선수 플레이를 보는 게 재미였다면 요새는 그 못지않게 이재영 선수의 플레이를 보는 재미도 컸다.

그런데 뉴스를 듣다 보면 이게 학교 폭력 문제인지 스포츠 폭력 문제인지 좀 혼란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이들이 중학교 배구 선수 시절 다른 선수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것이니 폭력이 발생한 시점을 중시하면 학교 폭력 문제이고,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스포츠 선수였다는 것을 중시하면 스포츠 폭력 문제다. 내가 보기엔 스포츠 폭력인 면이 더 눈에 띈다.

굳이 그걸 따져서 무슨 실익이 있냐고 물을 수 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생각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생각해보는 거다.

학교폭력이란 면에서 보면 이 사건은 학생 시절에 폭력을 행사하면 나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나서 뒤늦게라도 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더 성공했을수록 그 벌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게 공정하느냐는 별도로 말이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하느냐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사건 때문에 일반적인 학교 폭력 방지 노력에 비해 특별히 더 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이를 스포츠 폭력이란 면에서 보면 좀 다르지 않나 싶다. 그들 자매가 중학생 시절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걸 코치나 부모들이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은 아마 중학교 시절로 그치지 않고 그 후에도 계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코치진은 이를 눈감아 주었던 것 같고, 다른 부모들의 항의도 그냥 묵살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에는 근래 알려지게 된 여러 사건들에서 보듯이 학교 스포츠계에서 공공연히 그리고 넓게 퍼져있는 폭력적인 문화가 분명 중요하게 일조했을 것이다.

서구나 일본에서 스포츠는 청소년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거의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자라나는 사람들에게 지도력, 협동 작업, 성실성 등, 학과 수업에서 기를 수 없는 능력과 자질을 기르는데 이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그냥 방과 후 자기들끼리 하는 스포츠를 빼면 많은 학생들이 스포츠를 교육과정의 중요 부분으로 배우지 못한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입시 경쟁 때문만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 학생은 배제하고 일부 전업 선수 위주로 변형된 학교 스포츠 탓이 크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들 대다수는 스포츠를 통한 교육이 결핍된 사람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다. 나는 한국 성인들 중에 지도력이나 팀워크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은 것에 이 스포츠 교육 결핍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엘리트 스포츠는 폭력적인 스포츠 교육을 낳게 마련인 것은 아닐까? 학교 스포츠를 모든 학생의 교육에 있어 필수적인 과정으로 인식하지 않고 일부 자질이 뛰어난 학생만이 경쟁하는 엘리트 스포츠로 인식하여, 수업을 거의 안 듣고 자기들끼리 합숙하고, 무조건 이기면 다 된다는 식으로 학생을 몰아가면 코치에 의한 폭력, 그리고 선수들끼리의 폭력이 자연시 되거나 덮어주는 문화가 고착되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들어 반복되는 스포츠 폭력 폭로 사건은 폭력이 요즘 들어 심해져서가 아니다. 학교 스포츠를 정말 다시 생각하고 다시 설계할 때가 진즉 지났다는 신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스포츠 계는 이 수치스러운 문화에서 벗어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는 것 같다. 지도자들 자신들이 그렇게 컸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비난하고 속죄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이해하는 마음이 전혀 안 드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이것을 지금처럼 임기응변으로만 대처하는 것을 더 이상 국민들이 용서할 마음이 없다는 것도 명확하다.    

또, 막상 성숙하지 않은 학생 시절에는 폭력을 휘둘러도 운동을 잘한다는 이유로 눈 감아주다가 다 크고 나서는 운동을 유독 더 잘해서 유명하다는 이유로 더 많은 사람들이 가세해서 비난하는 이 세태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혼란스럽다. 막상 교육을 통해 행동을 교정받을 시기에 이 두 선수를 제지하고 나선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큰 그림에선 이들도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 피해자다. 또 이 사건이 불거지자 두 자매 외에 신인 남자 배구 선수들도 그랬다는 폭로가 나왔다고 한다. 이들에 대해서는 프로배구협회가 일시적 출전 정지를 내렸지만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스포츠 계에 학생 시절 폭력을 일상적으로 휘두른 선수는 이들밖에 없을까? 누군가 온라인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등장해 증언할 때까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내는 것은 온당한가?

스포츠 폭력. 잘못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막상 폭력 행위가 벌어지고 있을 때는 주위 관계자들이 쉬쉬 덮어주다가 나중에 가서 그들이 유명 선수가 되고 난 후에 피해자가 온라인으로 고발을 하면 대중이 벌떼 같이 일어나 사회적 벌을 주는 이 전체 그림은 좀 괴이하다. 이런 징벌 시스템은 사회적으로 효율적이지도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

이 것은 그냥 한국 사회가 병들고 뒤틀린 사회인지를 보여 주는 증세다 라고 도학 자연하면서 말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막상 관계자, 즉 스포츠 지도자, 선수, 부모, 그리고 교육당국과 학교 모두 꿈쩍을 안 하니 아무런 진전이 없다. 그 사이 가해 학생 선수, 피해 학생 선수, 큰 그림에선 모두 피해자인 이들은 지금도 생기고 있다.

그래서 내 질문은, 니들 언제까지 그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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