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원 Nov 22. 2021

다 쓴 전치차 배터리는 어디에 사용할 수 있을까요?

[카QA센터-60] 기술의 진보는 너무 빨리 모든 것을 구형으로 만듭니다

전기차가 세상에 퍼지기 시작한 지도 십 년이 다 되어 가고, 지금 나오고 있는 신차들도 몇 년 뒤면 구식이 되어 폐차가 될 겁니다.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 전기차 배터리는 과연 어디에 사용할 수 있을까요? 


오랜만에 다시 글을 시작합니다. 

예전에 저희 회사에서 지자체에 전기차로 택시를 공급하는 계약을 한 적이 있습니다. 택시 기사 님들에게는 사실 시간이 돈이니까 자주 충전을 하게 되면 그만큼 손해입니다. 그래서 짧은 마일리지 때문에 거부하시는 기사님들이 많아서 2년 뒤에 새로 마일리지를 40% 개선한 배터리가 개발되면 무상으로 교환해 드린다는 조건을 달았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고 계약대로 새 배터리로 무상으로 교환해 드리고 나니. 폐배터리 수십 개가 수거됩니다. 그리고 업체 창고에 고스란히 묻혀 있었습니다. 그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있을지를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활용할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일단 단위 부피당 충전 밀도가 높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6년 이상 오래된 기술이다 보니 기술력도 떨어지고, 장기간 보관하면서 충전 효율도 100% 발휘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부피만 크고 효율은 떨어지니 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용도도 애매하더군요. 전기차를 구동하는 전압은 직류 500 V 정도인데, 최근에 태양광이나 다른 친환경 발전의 저장고로 각광받고 있는 ESS (Energy Storage System)은 주로 운영되는 범위가 800~1000V 내외였습니다. 이러면 기존의 자동차 배터리를 직렬로 이어서 새로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개조 비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이동하는 전기 자동차의 배터리는 무엇보다도 안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안전장치와 센서들이 장착되어 있고, 셀 사이의 구조도 튼튼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사실 이게 다 돈입니다. 


그래서 제조 당시에 2천만 원의 육박하는 원가이지만 5년이 지나고 나면, 동일한 용량에 훨씬 간소한 새 ESS 용 배터리 모듈 제조 가격은 5백만 원 남짓밖에 되지 않습니다. 개조 비용까지 포함하면 결국 실제 가치는 200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 됩니다. 이래서는 경제성이 없습니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전기차 충전용 모듈로 활용한다면 같은 전압 수준에 기존 자동차용 세팅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서 개조 비용을 최소화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특히 DC Charger를 통한 급속 충전이 가능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죠. 그래서 X-Battery 박람회에서 만난 한 Start up 회사와 협업을 진행해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카 쉐어링 하는 업체의 정비 차량에 이동형 충전 모듈을 설치해서 급하게 충전을 원하는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디어였는데, 예전 전기차의 배터리를 다 채워도 새로 나온 신차의 주행 거리 30%를 채우기가 어렵더군요. 배터리를 두 개를 넣자니 정비 차량에 들어가지를 않고, 새로운 제어 시스템 개발이 더 들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차 쉐어링 하는 측에서 일부 정비 차량을 아이오닉으로 사서 V2V (차량에서 차량으로 바로 하는) 충전 방식을 활용하기로 하면서 프로젝트가 일단락되었습니다.

폐 배터리를 재활용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의 진보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의 요구를 따라가기에는 폐배터리는 너무 구식이었던 거죠. 메이커들마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배터리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이 커질 것 같습니다. 전기 자전거에도 넣고, 피자 굽는 전기 오븐용으로 쓰기도 하지만 안전과 비용과 수요가 딱 맞는 대안은 아직 잘 보이지 않네요. 최근 들어 급등하고 있는 원자재 가격을 생각하면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보다 원료를 뽑아서 다시 재생하는 산업으로 더 빠르게 전환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급 휘발유 반드시 넣어야 하는 건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