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단장도 있고 골수팬도 존재한다.

프랜차이즈 손아섭을 보내는 롯데 팬의 양가적인 마음

by 이정원

손아섭이 롯데를 떠났다. 못 잡은 롯데도 떠난 손아섭도 둘 다 이해가 되지만 야구 관련 커뮤니티들은 난리가 났다. 초대형 FA 거래가 난무하는 총액 1000억대의 인플레이션이 판을 치는 올해 스토브 리그에서 아무런 액션을 취하고 있지 않은 롯데 구단과 성민규 단장에 대한 비난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고 철수한 한화와 롯데의 내년 순위가 어떻게 될지 맞추어 보라는 식의 비꼬는 글이 가득하다.

손아섭.jpg

그런데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같은 공간에서는 손아섭의 적정한 가격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거기에 글을 다는 많은 팬들의 대부분의 주장은 수비 범위가 좁고, 장타가 실종된 35살의 노장에게 지나치게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4년 40억 정도가 적당하고 더 달라고 하면 보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리고 오늘 대략 나오는 이야기는 롯데 구단은 4년 48억을 제시했고, 손아섭은 64억이라는 더 큰 금액을 제시하고 우승도 해본 강팀인 NC로 배를 갈아탔다. 사실 더 쓰지 않은 롯데 구단도 떠난 손아섭도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왜 팬들은 분노할까? 나는 진짜 괜찮은가?


우리는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질문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면서 다른 의견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약 당신이 단장이라면 손아섭을 얼마에 잡으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성민규 단장이 된다. 그래서 사장에게 얼마를 달라고 하면 설득할 수 있을까, 팀에 장기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으려면 얼마가 좋을까를 고민하면서 40억 정도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내년에 그럼 손아섭이 빠진 우익수 자리는 누가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냐?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롯데 팬으로서 롯데의 상황이 답답하다. 손아섭이 수비 범위가 좁고 장타가 떨어져도 3할 1푼 9리를 친 우리 팀 주전 테이블 세터다. FA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한 해 100경기 이상을 출전한 확고한 주전이라는 뜻이다. 팀에서 그 포지션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어서 경기에 나선 가장 가치 있는 선수라는 뜻이다. 그 자리를 지금 당장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도 8위에 그친 롯데라는 팀 자체의 경쟁력이 내년에는 더 떨어지게 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리고 그 경쟁력 약화로 허무하게 지는 경기를 온전히 버텨야 하는 것은 오로지 팬들의 몫이다. 그러니 분노할 수밖에 없다. 오늘 외국인 투수들도 새롭게 구성되었지만 뚜껑을 열어 봐야 아는 것이니... 내년의 롯데가 더 많은 승을 올리기 위해서는 해결이 되어야 하는 물음표가 너무 많다. 골수팬으로서 그동안 애정했던 손아섭 선수와의 이별에 나도 찹잡한 마음이 들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쉽다.


그래도 회사에서 인원을 배분하고 역할을 나누고 예산을 다루는 팀장의 위치에 있는 나는 아무래도 두 가지 입장 중에 단장의 입장에 더 가깝다. 홈구장의 홈플레이트를 당겨서 외야를 넓히는 변화가 예고된 내년에는 늘 홈런에 대한 두려움으로 봉인되어 있던 뜬 공을 유도하는 승부가 더 주가 될 듯하다. 박세웅 최준용 등 기존 주축 투수들의 성향도 그렇지만 새로운 용병 투수들의 피칭 어프로치도 타점이 높았던 프랑코보다 낮은 위치에서 떠오르는 구질에 강점을 보인다. 타자 용병도 내야를 책임지던 마차도도 보내고 수비 범위가 넓은 외야수 용병 피터슨으로 교체하는 등 내년도 롯데의 운영 방안에서 외야 수비의 중요성은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다. 특히 좌타자들이 수비 시프트로 공을 멀리 보내지 않으면 고생하는 리그 트렌트까지 감안하면 수비 범위가 좁은 손아섭은 확실히 우선순위가 아니다.

lotter foriegn pitchers.jpg 새로 영입된 반즈와 스파크먼, 낮은 위치에서 솟아오르는 구질이 주 무기다.

그런 차원에서 나의 올해 FA 픽은 사실 박해민과 강민호였다. 그렇다고 프랜차이즈인 손아섭이 있는데 FA로 미리 잡아 버리면 손아섭보고 나가라는 말 밖에 안되고, 사실 그 정도로 서두르기에는 팀에 부실한 장타력은 부족하기는 하긴 하다. 강민호가 돌아와서 최기문이 강민호에 그랬던 것처럼 고참으로서 후배의 성장의 모습을 돕는 모습도 기대했지만.. 그러기에는 현재 롯데의 포수 성장 과정은 메이저리그 스타일이다. 코치와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는 고참에 올인하는 것도 별로다.


더욱이 2023년부터는 샐러리캡이 적용된다. 올해 질러서 내년에 한해 잘 쓰고 나더라도 23년부터는 샐러리의 큰 부분을 채우는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된다. 뭐 나이만 채우면 되는데 전체 샐러리 캡이 제한되다 보니 이 짐은 그대로 2023년 FA 시장에서 지를 수 있는 한도를 줄이게 된다. 안 그래도 이동 거리 길고 성적도 낮고 팬들은 극성이라 잘 안 오는 부산을 홈으로 하는 구단인데 돈 싸움도 못하면 팀에 진짜 필요한 강한 선발 투수와 장타력을 갖춘 야수를 데려 올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나승범을 올해 질러도 되는구나.. 왜 우리는 이런 꿈도 못 꾸나 싶기도 하지만.. 이대호 나승범 프로야구 최초 150억 원 듀오를 끼고 성적이 안 나오면 그 책임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래서 내년에 손아섭이 NC에서 올해 정도로 잘하고 롯데의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더라도, 그 덕분에 신예 (조세진이나 나승엽 같은) 들이 기대 이상으로 성장하고 내년 FA엣 진짜 제대로 약점을 채우는 투자를 한다면 오늘의 분노를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내 맘 같이 않겠지. 분신 같이 응원하고 안타 하나 삼진 하나에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자식 같던 선수를 떠나보내는 이런 양가적인 마음은 롯데를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당연할 테니 성민규 단장은 당분간 욕받이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듯싶다. 연봉에 그 몫까지 포함되어 있겠지?

손아섭 가리나.jpg 연봉협상합의가 안되자 스프링캠프에서 팀로고를 가리고 있는 손아섭. 그는 확실히 여러가지 의미에서 프로다.

덧붙여 사실 프랜차이즈지만 손아섭은 늘 본인이 늘 우선이었다. 승부도 연습도 타격도 연봉도.. 그래서 금액이 맞으면 떠날 거라 예상했다. 그래도 손아섭은 늘 본인이 책임졌다. 그렇게 노력했고 성과를 냈고 자리를 지켰고 인정을 받았고 더 좋은 곳을 찾아갔다. 회사에도 애사심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 자리를 지키는 데만 급급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젊은 신입이 와서 진짜 열심히 해서 성장한 다음에 좋은 조건으로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것을 보고 철새라고 뒤에서 수근 거린다. 회사는 그렇게 뒤에서 이야기만 하는 철밥통보다 철새라도 있는 동안 자기 역할을 정말 잘해 주는 프로가 성과 측면에서도 동료들에게 동기 부여 측면에서도 더 필요하다. 손아섭은 프로페셔널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잘해 나가리라 믿는다. 덕분에 즐거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포수 출신 감독과 투수 출신 감독의 대결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