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지표에서 시작하는 변화의 반가움
어릴 때부터 운동이란 걸 전문적으로 배워 본 적이 없는 저는 회사에 들어오면서 사회인 야구를 처음 접했습니다. 비록 3부 리그의 어설픈 실력이지만 직접 해 본 야구는 참 매력적인 운동이더군요. 어릴 때부터 캐치볼은 하고 동네 야구에서 경식공 정도는 받아 봐서 적응이 빨랐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선배들에게 펑고 받고 토스배팅 치고 라이브 배팅하고.. 비록 경기에는 후보로 나섰지만 칭찬 받아가면서 신나게 운동했었습니다.
그러다 팀의 주전 3루수였던 선배분이 개인 사업 사정으로 팀을 떠나면서 제가 주전으로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팀이 3부리그 우승을 하면서 상위리그로 진출도 하게 되죠.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후보로 후반부에 나설 때는 몰랐는데 일단 두시간 밖에 안되는 경기 시간이지만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리고 한 레벨 올라 갔을 뿐인데 타구 속도가 훨씬 빨랐습니다. 몇 번 손에 맞고 몇번은 반응도 못하고 몇번 에러하고 나니 팀은 팀대로 처지고 저는 저대로 미안하고.. 3루에서 1루까지 거리가 어찌나 멀게만 느껴지던지..마지막 이닝 역전 당할 위기에 마지막 아웃카운트 남기고 타자가 들어서면 솔직한 심정으로 '나한테 오지 마라. 나한테만 오지 마라' 했었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멘탈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건 야구가 리얼타임 운동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쨋든 계속 뛰어야 하고 움직여야 해서 의식할 여유도 없이 몸이 반응해야 하는 농구하고는 달리 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지고 타자가 치고 주자가 달리고 상황이 정리되는 것이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실제 3시간 경기를 하면 플레이타임은 1시간이 채 안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인플레이 시간 동안에 공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그 넓은 운동장의 주인공이 달라집니다. 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고 오로지 공에만 집중하는 "담대함"이 제게는 없었고 사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자신이 없습니다.
저야 말 그대로 취미하는 운동이지만 이걸 업으로 삼고 경쟁에서 살아 남아 프로가 되고 주전에 들어 서야 하는 선수들은 더 절실하겠지요. 그래서 저마다 노력하고 연습하고 몸이 먼저 반응하도록 반복하고 반복하겠지만 류현진처럼 타고난 강심장은 사실 많이 드문 것 같습니다. 특히 예전보다 아마와 프로 사이의 간격이 더 커지면서 고등학교에서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도 프로에 들어서면 주눅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생전 처음 관중이 가득 들어찬 사직 운동장에서 일구일구에 희비가 엇갈리는 탄식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에러가 나오고 욕지꺼리가 쏟아지면 갓 고등학교 졸업한 신인들이 버텨낼 수 있을까요?
성민규 단장님이 한국에서 건너온 많은 유망주들이 왜 메이저리그에 실패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미국식 훈련에 적응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실패를 극복하는 힘이 부족한 것 같았다는 코멘트가 기억 납니다. 그래서 메이저에서는 아무리 대스타 유망주라도 루키부터 시작해서 더블에이 트리플에이 등 단계를 거쳐 좀더 어려운 상대와 붙어 보게 하고 그걸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을 꼭 가지게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기회를 줘야죠. 야구는 어쨋든 아홉명이 하는 운동이니 기회도 아홉명만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라인업에 넣고 뛸 기회를 깨질 기회를 그래서 극복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대신에 안그래도 처음 무대에 서서 긴장하고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느라 복잡한 머리속을 단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 줘야 합니다. 그 단순함은 저는 "데이타"가 채워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서 상대가 무슨 구종을 던질지 고민하고 보고 판단하고 스윙하면 이미 늦습니다. 작전을 미리 짜주는 거죠. 초구에 직구이니 일정 높이 이하로 오면 무조건 치라던가, 투스트라이크이후에는 일정 높이 이하 볼은 치지 말라던가 하는 전략을 미리 세워 줄 수 있습니다. 쿠세를 보고 미리 구종을 확신하면 더 자신있게 배트를 휘두를 수 있겠죠.
수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한다는 건 초등학교 운동 시작하면서부터 내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스트라이크를 던지면 맞을 거 같으니 겁이 나는 거죠. 결국 스스로의 구질과 구위에 대한 자신감을 직접 영상으로 확인하고 상대 타자에 대한 약점을 분석해서 공 하나하나의 전략을 세워 나간다면 일단 그 "약속"을 믿고 자신있게 공을 던질 수 있을 겁니다. 작은 시프트도 조금 더 편한 자세로 포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 줄겁니다.
물론 결국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선수의 몫이지만 그들의 부담을 덜고 본인의 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는 것은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 그리고 프론트 모두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어린 선수들을 키워서 팀의 뎁스를 두껍게 해야 하는 롯데 입장에서는 반드시 진행되었어야 했던 일이었죠. 전략은 팀이 짜고 경기는 선수가 하고 책임은 코칭 스태프가 지는.. 실패 했다고 누구를 탓하지 말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다음 경기 어떻게 이길지를 더 고민하는 팀. 성민규 단장님이 옐카에서 이야기한 144승을 꿈꾸는 팀은 그런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데이터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선수들에게 (특히 어린 유망주들에게) 담대함으로 내리기를 기대해 봅니다.
덧글. 야신 김성근 감독의 성공 신화도 따지고 보면 그 만의 데이타를 베이스로 한 지시를 선수들이 전적으로 따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만 한 사람의 판단에 의존한 팀은 그 사람을 놓치거나 그 사람의 기준이 틀리면 흔들리지만, 객관적인 데이타는 사람이 바뀌어도 그 자리를 지키겠죠. 데이터든 사람이든 결국 바탕은 상호간의 신뢰입니다. 허문회 감독님이 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