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에 이끌리지 않는 강인한 마음이 필요한 이유
자동차에 새로운 옵션을 추가하는 사양의 결정을 하는 과정은 꽤 복잡합니다. 마케팅은 더 많은 기능이 추가 되기를 원하고, 개발 부서는 더 많은 개발 비용이 확보되기를 원하고, 회계 부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더 저렴한 원가를 확보해서 수익이 최대가 되길 원하죠. 서로 상충하는 목적은 늘 부딪힙니다.
그래서 결정은 늘 숫자와 룰로 정해집니다. 가령 예를 들어 AEBS 라고 레이더로 물체를 인식하고 차를 강제로 정지시키는 기능을 추가하고자 한다면, 마케팅에서는 이런 기능을 추가했을 때 얼마나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를 계산합니다. 얼마나 가격을 올려 받아도 팔리고 또 얼마나 더 많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지를 예상해서 회사에 얼마의 추가 수익을 가져다 둘지를 수치화 하는 거죠.
그러고 나면 연구 부서와 구매 부서가 기술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원가가 상승하고 얼마나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예상치를 반대로 내 놓습니다. 벌어 들일 돈과 들어 가야 하는 양 쪽의 예상치를 기반으로 프로젝트에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보통은 판매 후 2년 이내에 투자비를 회수 가능해야 적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출신이 아무래도 개발자라 중간중간에 업체에서 예상보다 높은 개발비를 불러도 작은 규칙들을 어겨가며 개발자들의 손을 들어 주곤 했었습니다. 자식같은 차가 그래도 번듯하게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으니까요. 진짜 문제는 여기서 나옵니다.
이렇게 철저한 절차를 거쳐서 개발하고 시장에 내 놓더라도 대개 절반의 기획은 예상과 다르기 마련입니다. 생각보다 그 옵션을 원하는 고객들이 없거나 다른 이유로 전체 판매가 부실하면 속절없이 들인 돈을 회수하기 어려워지죠. 한번의 차량을 만들고 그 차의 수익률이 예상보다 훨씬 낮게 나오고 그 때문에 회사 자체의 생존이 어려워진 경험을 겪고 나니.. 개발 과정에서 그냥 쉽게 생각했던 규칙의 중요성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일반 개발자일 때는 사사건건 간섭하고 어깃장 놓아서 늘 불만이었던 품질과 회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산업도 다르고, 가치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지만 제한된 예산으로 고객이 만족하는 결과를 내 놓아야 하는 것은 프로야구 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단 돈 1원을 쓰더라도 왜 쓰고 승리를 위해, 팬들의 만족을 위해, 그리고 구단의 수익 창출을 위해 그 만한 가치가 있는지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제 스프링캠프를 떠나는 날까지도 아직 두 노장의 FA 계약이 마무리 되지 않은 것은 롯데 자이언츠가 이전과는 다르게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롯데의 목표는 내년 우승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FA는 지난 헌신에 대한 보상 (프랜차이즈를 제외하고)이 아닌 미래 기여에 대한 투자이니까요. WIN NOW가 목표가 아닌 팀에서 노장의 가치는 당장의 승리 기여 기대치에서 젊은 투수들이 등판할 기회를 나누어야 하는 요소가 마이너스로 작용합니다. 더군다나 에이징커브가 급격히 꺾이는 삼십대 후반의 두번째 FA는 후배들의 모범이 되고 팀이 급격히 무너지는데 대한 버팀목 되어주는 것 이상의 가치는 없어 보입니다.
마치 제가 어쩔수 없다며 인지상정으로 들어 주었던 개발비 증액이 한푼두푼 쌓여 최종 수익율에 큰 어려움으로 돌아왔듯이.. 우리가 남이가.. 그동안 한게 얼만데.. 라는 情과 의리와 여론에 떠밀려 계획없이 내린 결정들 때문에 그동안 롯데는
평균 나이는 제일 많고
평균 연봉은 제일 높고
신입들은 성장이 더디고
중복되는 자원이 많지만
결정적으로 구멍인 포지션이 곳곳에 있는
2019년 리그 최하위 팀이 되었습니다.
저도 제가 아끼는 선수에게 한 푼 덜 가는 것은 아쉽습니다. 그리고 조속히 계약이 마무리 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허튼 돈을 쓰지 않고 그걸 제대로 쓰겠다는 방향만큼은 지지해 주고 싶습니다. 제가 했던 실수를 성민규 단장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