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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Feb 24. 2022

필요하면 위선도 기꺼이 할 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굳은 신념은 품었지만 두려움도 함께 가진 리더가 그립다.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엇이냐고 내게 물어본다면 나는 어릴 때는 삼국지였다가 지금은 로마인 이야기라고 답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새로운 코즈모폴리턴을 꿈꾸는 이상가이자 전략가인 카이사르를 다룬 4권 5권은 휴가 철마다 다시 읽고 또 읽고 했었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 이야기인 로마인 이야기 6권 "팍스 로마나"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카이사르 암살되면서 그 실망감 때문이랄까, 삼국지에서 유비가 죽은 이후 이야기에는 영 흥미가 생기지 않는 거와 비슷한 감정 이입 때문에 절대 권력에 오르면서 제정 로마의 기초를 닦은 옥타비아누스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생동감 넘치는 전투 장면도 없고 드라마틱하지도 않게 30세부터 77세까지 반세기를 통치한 그의 이야기가 시시할 거라는 편견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번 대선을 보면서, 그리고 휴직을 하면서 조금 더 여유 있는 상황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도서관에서 빌려서 제대로 읽고 있다. 그리고 진작에 이 책을 읽지 않음을 후회하게 되었다.


카이사르의 암살을 직접 목격하고 이를 수습한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을 양자로 삼으며 지위를 물려준 카이사르의 뜻을 계승하겠다는 굳은 의지와 신념을 품었다. 그러나 암살당한 이후에 카이사르가 진행했던 많은 개혁들이 다시 물거품이 되거나 혼돈이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변혁의 계획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내전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독재자가 되지만 대외적으로는 절대 권력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하고, 군비를 줄이고, 그 당시 정치적으로 적대적이었던 원로원의 권위와 권리를 존중해 주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리고 그런 "위선"을 통해 황제를 반대하는 원로원이 스스로 그에게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바치도록 하는 그의 전술은 치밀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그렇게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권리를 포기하고 얻은 "권위"를 바탕으로 그는 기존의 체계하에서도 할 수 있는 개혁들을 하나씩 해 나간다. 속주들 중에 풍요롭고 다루기 쉬운 곳은 원로원에게 양보하고 적국과 국경을 맞닿은 곳들은 본인 관할로 두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듯 하지만 그런 책임을 통해 군사력을 장악했다.


제국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군비를 축소하고 로마가 책임지는 정규병과 현지인들로 구성된 속주병으로 군사 제도를 개편하였다. 그리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 공평한 세금을 확립하는 한편 국세청을 신설해서 총독들이 속주민들을 착복하는 비리를 원천적으로 막는다.


화폐를 통일하고,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도로망을 구축하고, 선거권을 확정하고 출산을 장려하는 제도를 정착시키는 등 오늘날 근대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정책들을 하나씩 하나씩 실현해 나간다. 그것도 원로원과 시민 모두의 지지를 받아 가면서 말이다.


 지지는 그냥 이루어 지지 않았다. 세금을 올려 부담을 늘리면 대신에 다른 측면에서 이득을   있도록 배려했고 필요에 의해 대우의 차이를 두어야  (정규군과 속주군 같이) 차별받는 쪽에게도 필요한   가지 지원은  챙겨 주었다. 자유를 억압해야  상황이 되면 스스로 가장 먼저 모범이 되어 나섰고, 기회가  때마다 나에게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권리를 포기하고 계획에  영향은 없지만 상대에게는 중요한 권한을 넘겨줌으로써 상대도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 유도했다.


때론 어쭙잖게 대드는 일개 원로원 의원들에게 수치심도 느낄 수 있으련만 그는 면박을 주는 대신 웃어넘겼다.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라는 카이사르의 지혜를 아우구스투스는 보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고 싶은 현실만 보여주는 방식으로 실현했다. 하지만 그 자신만은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도 직시하도록 명심하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평화로운 로마 제국의 초석을 닦은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평을 쓰면서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 균형 감각을 뽑았다.

균형 감각이란 서로 모순되는 양극단의 중간점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아니다. 양극단 사이를 되풀이하여 오락가락하고, 때로는 한쪽 극단에 가까이 접근하기도 하면서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한 점을 찾아내는 영원한 이동행위이다.


윤석열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겁이 없다"라고 이야기한 동영상을 보고 지지자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사실 촛불 혁명과 탄핵을 겪은 문재인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을 선거 때부터 강조했고 그렇게 5년을 보냈다. 그의 그런 두려움이 없는 행보는 그를 지지하는 지지층 40%의 흔들림 없는 지지를 받았지만 다음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여당 야당 후보 모두에게서 선긋기를 당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때로는 자기의 권리를 버릴 줄 아는 위선도 기꺼이 할 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한 게 아닐까? 아우구스투스의 균형 감각은 사실 암살당할지도 모른다 그래서는 제대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서 출발했다. 두 거대 정당이 권력을 나눠 가지고 별로 차이도 나지 않는 정책을 가지고 서로를 견제하느라 한 발짝도 제대로 미래로 내딛지 못하는 현실을 돌아보면, 굳은 목표를 가슴에 품었지만 두려워할 줄도 아는 리더가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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