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이야기 - 명분을 쌓고 대안을 제시하고 마음을 사는 협상
2020년 정규 시즌이 마감되었습니다. 드라마 같았던 스토브리그를 보낸 롯데 자이언츠는 많은 기대를 받고 시즌을 시작했지만 결국 5할에 1경기 모자란 승률로 7위라는 성적표를 받고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팬으로서는 참 아쉬운 결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바로 전 해에 꼴찌를 했던 전력입니다. 팀의 뎁스 자체가 많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외국인 농사가 그럭저럭 괜찮았고 주전들 부상 관리도 잘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마무리로 김원중이 자리를 잡았고, 한동희 최준용 김준태 같은 젊은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낸 점도 올해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게 합니다.
그 중에서도 팬들을 가장 설레게 한 소식은 지난 10월에 김진욱 / 손성빈 / 나승엽 이라는 1라운드급 신인 3명과 계약에 성공한 일일 겁니다. 작년에 꼴찌를 하면서 획득한 신인 우선 지명권을 최대한 활용한 거죠. 이로서 팀에서 가장 큰 구멍이었던 좌타 내야수, 좌완 투수, 포수 자리에 특급 유망주들을 한번에 충원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나승엽 선수의 영입은 선수 본인이 미국 진출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사실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계약까지 이끌어 낸 롯데 프론트를 크게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미국의 상황이 코로나로 바뀐 이유도 있지만 손성빈을 1차로 지명하고 2차로 나승엽을 지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협상의 기본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 째로 명분을 지켰습니다. 1순위에서 아무도 지명하지 않아 자유롭게 된 나승엽과 관련해서 9월에 접어 들면서 미국 상황이 악화되자 분위기가 이상해 졌었습니다. 몇몇 수도권 팀들 중에서 우리가 후순위에 지명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죠. 이 때 롯데는 정공법을 꺼내 듭니다. 단장 회의에서 미국 진출을 선언한 선수는 프로팀에서 아무도 지원하지 말자는 새로운 룰을 제안했습니다.
몇몇 구단의 반대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이 제안을 통해, 롯데는 타팀에서도 나승엽을 지명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나승엽과 미리 짜고 미국행을 선언하고 후지명했다는 템퍼링 의혹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여론을 본인들 편으로 만들 명분을 이끌어 냈습니다.
둘째, 역시 협상에서는 최종 의사 결정자의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실 연초만 하더라도 장재영이 키움 입단이 거의 확정되고, 김진욱의 1차 지명이 불가능하게 되는 순간 나승엽이 롯데로 오는 것은 그 때만 해도 사실상 기정 사실이었습니다. 롯승엽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갑자기 미국 진출을 하겠다 그것도 이 코로나 상황에서… 커뮤니티에서는 롯데에 가기 싫어서 그런 거다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롯데가 택할 수 있던 방향은 두가지겠죠. 어쨌든 우리는 니가 필요하다며 그냥 1순위로 지명하거나,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다른 선수들을 찾거나.. 그러나 이 두가지 선택 모두 나승엽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고 또 섭섭합니다. 선수의 의사를 존중해서 1라운드에서 빼고 2라운드에서 누가 봐도 1순위인 김진욱 바로 다음 번 순위를 부른 롯데의 전략이 가장 바람직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너의 의사는 존중하지만 우리는 니가 정말 필요하다는 점을 어필한 셈이죠. 그 진심이 통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협상에서는 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즉 대안이 있는 사람이 갑입니다. 미국에 가서 야구를 하고 싶다는 선수 본인의 의지는 존중하면서도 현실적인 벽에 막힌 나승엽 선수에게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내년 미국 마이너리그 상황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성이 크고, 올해부터 각종 첨단 장비를 도입해서 메이저리그식 육성 체제를 갖추려고 하는 구단의 노력을 피력했을 겁니다.
거기에 캘리, 김광현 등의 성공으로 KBO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때 마침 김하성, 나승범 등 선배들에 대한 올 시즌 마친 이후의 러브콜들이 보이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출신 단장이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겠죠. 메이저 리그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나경민이나 송승준 같은 선수들의 인터뷰도 더했다면 제가 나승엽이라도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안정적인 선택을 할 것 같습니다. 거기에 미네소타와 구두 계약한 금액의 절반 이상 되는 신인 계약금은 선수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했을 겁니다. 이 모든 노력들이 시즌 마지막 경기 시포 / 시투 / 시타 같은 흐뭇한 장면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기본인데 그동안 우리는 프로야구 판에서 이런 기본이 잘 지켜지지 않는 협상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래서 돈도 잃고 마음도 잃는 소식들이 많았습니다. 경기 외적인 요소에서 흔들리는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가 없는 법. 시즌은 끝났고 가을 야구에는 떨어졌지만 신인 3인방 계약으로 깔끔하게 시작한 롯데의 겨울 야구(스토브리그)가 기본을 지키며 또 다른 새로운 변화를 가져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야구 팬은 쉴 틈이 없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