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김태형 감독의 인터뷰에서 위임의 묘를 찾다

경기는 니가 하지만 책임은 내가 지는 진정한 프로페셔널리즘

by 이정원

겨울의 문턱을 넘어서는 입동이 지난 11월이지만 가을 야구의 열기가 무척 뜨겁습니다. 물론 남의 팀 이야기라 그리 마음이 가지는 않지만, 모기업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압도적인 전력을 보여주고 있는 두산의 선전이 눈에 뜁니다. 포스트 시즌 에이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강속구 투수 플렉센을 비롯하여 상황에 맞는 타격으로 해결사 역할을 해 주고 있는 김재환까지.. 작년 한국 시리즈부터 포스트 시즌 8연승 중이라니.. 가을 DNA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특히 경기마다 그 날의 MVP 선수가 달라진다는 점이 가장 눈에 뜁니다. 엘지와의 첫 경기에서는 오재원이 날아 다니더니, 둘째 경기에는 허경민이 결정적인 타점을 올려 주고, KT와의 첫 경기에서는 플렉센이 언터쳐블 모드를 보여 주더니 지난 경기에서는 예상치 못한 홍건희의 호투로 승기를 잡았습니다.

결국 단기전 승부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려면 상황에 맞는 다양한 카드가 필요하고 이를 코칭 스태프가 과감히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둘을 이어 주는 고리는 선수와 코칭 스태프간의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두산 김태형 감독님의 경기 후 인터뷰를 보면 두산이라는 팀 내에서 선수와 감독 사이의 신뢰가 얼마나 두터운지를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박건우 부진? 연례 행사야.” 부진한 주전에게는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서 먼저 선수를 칩니다. “오재원이 제자리를 찾아 가는 중이던데, 최주환을 준비하겠다.” 준 플레이오프에서 잘했지만 견제를 받는 고참에 대해서는 은근히 디스하면서 팀 내 경쟁을 유발합니다. 네 경기 연속으로 경기를 끝내러 올라 온 마무리 투수가 흔들리자 한 마디로 마음을 다 잡습니다. “150km를 던질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가운데로 던져라.”

그 중에도 “단기전은 감독이 어떤 실험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결국 최종 결정권자인 감독은 다 계획이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누굴 내 세우던 나의 선택은 실험이 아니라 고민에서 나온 것이고 그러니 너희는 날 믿고 따라 와라 라는 메시지를 선수단에게 전하는 거죠. 그래서 2차전에서 최원준이 로하스에게 홈런을 맞자 마자 김민규로 교체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수비로 어떻게든 막아냈는지 모릅니다. 이번 포스트 시즌 들어서 보이는 한 타이밍 빠른 투수 교체를 보면서 두산이라는 팀의 가장 큰 자산은 김태형이라는 감독의 책임하에 선수들로 하여금 지금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내가 현재 우리 팀의 베스트 라인업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Empowerment 되면 선수들은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 갑니다. 이유찬이 상대 실책에 무모한 홈 승부를 봐서 성공을 거둔 것도 그런 김태형식 Delegation이 통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2017/18년 포스트시즌에서의 실패를 거울 삼아서 김태형 감독은 스스로 발전했고, 자신의 팀 장악력을 기반으로 가을 야구를 정말이지 상대팀 입장에서는 징그럽게 잘 해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을 야구를 겪고 난 팀은 그 다음 해에는 다른 레벨의 팀이 되어 있겠죠.

올 한해, 주전 라인업을 고수하면서 그것이 신뢰를 쌓아 가는 길이라며 한해를 운영했던 허문회 감독님은 이번 플레이오프를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을까요? 회사도 마찬가지지만 권한 위임에는 명확한 책임 범위가 중요합니다. 그냥 주전이라고 결과의 책임까지 맡겨 버리면 혼란과 타성에 젖은 결과만 가져올 뿐입니다.

어찌 되었건 팀 성적의 최종 책임은 감독에게 있습니다. 팀 내에 적절한 긴장감 형성을 통해 선수들 스스로 본인이 운동장에 선 이유를 찾게 만드는 방법은 단순히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더 기술이 필요한 일입니다. 일단 쓸 수 있는 카드는 프런트가 만들어 준다면 그 카드를 어떻게 쓰냐는 감독의 영역이겠죠. 롯데는 이미 단장의 시간으로 접어 들었지만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 포스트 시즌에서의 두산의 선전에서 타산지석으로 더 나은 내년을 위한 힌트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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