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원 Jun 21. 2022

무역의 고통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 3장 무역의 고통

수출을 통해 경제를 키워 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학자들은 주로 무역의 이득을 이야기한다. 1800년대 리카르도가 주장한 바나나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와 밀을 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서로 주된 산물을 최대로 생산해서 서로 나누면 이익이 된다는, 자유 무역이 당사국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개념은 오래된 진리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절대적인 우위 (한쪽에서 나지 않는 산물을 물물 교환하는) 경우를 벗어나더라도 폴 새뮤얼슨이라는 학자는 비교 우위를 통한 무역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모두 절대 우위에 있더라도 자유로운 교역이 이루어지면 각자 비교 우위에 있는 분야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더 높은 분야)에 특화하게 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포르투갈은 영국보다 와인도 의류도 더 싸게 생산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가치인 와인에 집중하고 영국은 의류에 특화해서 교역하면 양국 모두 효율성이 향상되어 GNP 즉 국민들이 총 소비할 수 있는 제품의 총량은 모두 증가하게 될 것이다.


대체적으로 임금이 비싸고 금융이 발단한 선진국들은 자본 집약적인 분야에 집중하고, 개발 도상국들은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노동 집약적인 제품에 특화한다. 이런 논리로 무역 자유화는 가난한 나라의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부유한 나라에서는 반대로 노동자가 손해를 보고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이 득을 보기 때문에 불평등이 증가하게 된다. 무역에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자본 집약 산업 구조화되면서 노동자들의 삶이 팍팍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만약 이 불평등을 제대로 재분배한다면 국민 전체의 생활 수준이 나아질 수 있다. 문제는 그 '만약'이 너무 '큰 만약'이라는데 있다.


많은 나라들이 무역 자율화를 통해서 경제 성장을 이루어 냈지만 혜택은 제한적인 반면 고통은 약자들에게 치명적이다. 경제학자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노동과 자본은 현실 세계에서 경직되어 있다.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경쟁이 떨어지는 사업을 접고 새로운 기회에 투자하는 창조적 파괴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노동력이 풍부한 개발 도상국에서도 무역을 통해 불평등이 줄어들기보다는 도태된 산업 분야의 (특히 저숙련) 노동자들이 몰락하면서 불평등이 더 증가한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비슷한 산업이 모여서 클러스터를 이루며 발전해 인도의 사례를 연구를 보면, 1991년 무역 자유화 조치로 국가 전체의 빈곤율은 35%에서 15%로 감소했지만, 오히려 관세가 많이 감면된 품목의 산업단지가 있는, 그래서 무역 자유화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은 지구일수록 빈곤이 줄어드는 속도와 아동 노동이 줄어드는 속도가 더 느린 것으로 나왔다. 관세라는 보호 장벽을 잃게 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소득만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런 경향은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 모두에게서 나타난다. 무역 자유화를 통해 경쟁의 범위가 세계로 확대되고 나면 각 나라마다 도태된 산업이 있던 지역은 몰락하고 상가들이 공동화되면 다른 산업으로서의 재생도 어려워진다. 이는 지역 발전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자유무역의 반대로 트럼프가 들고 나온 관세 전쟁도 상황을 개선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상대국도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철강에 대해 관세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동안 중국으로 수출하는 미국의 농업 종사 인구들의 상당수가 피해를 보게 되었다. 미국 경제는 전체적으로 괜찮겠지만, 수십만의 미국 사람들은 괜찮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무역은 기존의 경제학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패자는 만들어 낸다.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역의 피해를 본 사람들이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 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움으로서 그들에게 손실을 더 잘 보상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재화는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는데 국가 내에서 사람과 자원의 이동은 그에 미치지 못해 피해 보는 지역이 경제의 악순환의 고리에 올라타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탈리아의 마르크스 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위기는 옛것이 죽어가고 있고 새것은 태어나지 못하고 있는데서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무역이 불평등을 가중할 거라고 예상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자유 무역에 대한 적대적인 반응에 당황하고 있다. 무역으로 타격을 입은 노동자들이 당연히 다른 장소와 일자리로 옮겨  거란 안일한 판단이 오늘날 통렬하게 드러나고 있는 '루저'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 극심한 갈등을 촉발했다면,  해법을 찾는 방향도 경제학자들이 책임져야 하는 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들은 웬만하면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