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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Sep 19. 2022

내 연월차를 내가 쓰겠다는데 왜 신경을 써야 하지?

학교도 아니고 군대도 아닌 여기는 회사 - 4

Scene #4


어제는 진짜 회사가 가기 싫었다. 1년에 18일 연월차 중에 6개 정도 남았으니까 하나 정도 쓰면 되지 않을까? 일단 팀장님께 문자로 문의해 보기로 했다.  


"팀장님 제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요. 오늘 하루 월차 썼으면 합니다. 근태 신청은 인사이트 홈페이지 통해서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몸조리 잘하고 내일 봅시다."


OK. 덕분에 하루 푹 쉬고 오늘 출근해서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김수석 님이 가시 돋친 한 마디를 한다.


"나민지 연구원, 몸이 많이 괜찮아졌나 보네~. 컨디션 좋아 보이는데."


들어 보니 어제 상무님으로부터 갑자기 숙제가 떨어져서 팀원들이 다 같이 고생했다고 한다. 거기다 어제 카페에서 찍은 셀카로 카톡 프로필 사진 업데이트했는데 그걸 누가 본 모양이다.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내 연월차 내가 쓰겠다는데 왜 이렇게 신경을 써야 하는 거야?

  


연월차는 정당한 권리입니다만....


대한민국에서는 법으로 회사가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최소 15일의 연차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연월차는 법이 정한 나의 쉴 권리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많은 직장인들이 연차를 마음대로 쓰지는 못하는 상황입니다. 왜 그럴까요?


고용노동부 자료 - 연차는 노동자의 엄연한 권리입니다.


제가 2003년에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저희 회사는 사용하지 않는 연월차를 연말에 돈으로 보상해 주었습니다. 그때 팀장님들 입장에서는 원래 회사는 일하러 나와야 하는 곳이고, 연월차는 아껴서 돈으로 보상받는 일종의 연말 보너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연월차는 기본적으로 안 쓰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때 당시 팀장님들의 입장은 단순했습니다. 회사 일도 바쁜데 꼭 연차를 써야겠어? 회사가 안 쓰면 돈으로 보상해 준다잖아. 그래도 써야겠다고? 왜? 뭐 때문에 그런데? 무슨 일인데...


마치 학교에서 조퇴하려고 하면 이유를 묻는 담임선생님처럼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물어보시곤 했었죠. 연월차를 동료들에 비해 많이 쓰는 직원은 불성실하다는 평가도 있어서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면 쓰기 힘든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돈으로 보상해 주지 않으면서 조금 자유로워졌습니다.


이 상황이 변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2014년에 접어들면서 사원들이 원하기도 했고, 경비를 줄인다는 회사의 목적이 맞아떨어지면서 안 쓴 연차를 더 이상 돈으로 보상해 주지 않기로 노사가 합의한 겁니다. 그러니 더 이상 안 쓸 이유가 없어지면서 사원들도 연월차를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여전히 일이 많고 연차에 익숙하지도 않은 선임들은 연차 쓸 시기를 계속 놓치다가 연말에 몰아 쓰곤 했었죠.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사람들은 익숙해져서 명절 연휴 앞뒤로 붙여서 여유롭게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평일에 주기적으로 취미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도 생겨 났습니다.


그리고 회사도 이런 분위기를 적극 활용해서 연초에 연차 계획이라는 것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남은 연차를 확인하고 연말에 남아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동의하는지 확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원들이 절반 이상 연차를 사용할 계획인 한여름이나 연말에는 아예 회사를 Shut down 해서 운영 비용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연월차를 대하는 분위기는 회사마다 다를 겁니다. 저희처럼 연월차 보상이 없어져서 조금 자유로워진 곳도 있고, 여전히 남은 연월차를 보상해 주거나 한 명이 빠지면 빈자리가 커서 연월차를 쓰는 것이 부담스러운 곳도 있을 겁니다. 팀장 입장에서는 보상해 주는 것은 회사이고, 직원이 한 성과는 내 책임이니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일하러 나와서 자리를 채워줬으면 하고 바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업무라는 것이 늘 출근해서 사무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진행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적절한 휴식으로 리프레시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일들이 잘 정리되어야 업무에도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연월차를 쓰고 싶으면 정당하게 요구하십시오.



가끔 근태 사유를 알려 줘야 승인을 해 주겠다는 매니저들도 있지만 법적으로 개인 사유를 알려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유를 문제로 근태를 반려하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나만의 시간의 가치를 인정받길 원하면 원칙을 지킵시다.


다만 어찌 되었건 회사 입장에서는 근무를 하지 않음에도 급여를 지불해야 하는 연월차는 근로 계약의 특수 상황이기는 합니다. 팀원들의 근태와 성과를 책임져야 하는 매니저 입장에서도 연월차는 투명하고 명확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습니댜. 그러니  가지 원칙만 키면 불필요한 오해를 일 수 있습니다.


먼저 월차는 미리 신청할수록 좋습니다. 팀 입장에서는 월차 쓴 사람의 빈자리를 대체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언제 쉴 건지를 미리 알리고 팀 회의 시간에 공유해서 팀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쉬는 것이 권리라면 하기로 한 일을 잘 처리하는 건 의무겠죠? 다들 쉬는 날이 아니라, 나만 쉬는 날이면 분명 참가하기로 한 회의, 내기로 한 보고서 등 업무가 있을 겁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고 하기로 한 보고를 하거나 돌아와서 언제까지 할 건지에 대한 약속은 쉬기 전에 미리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당일 날 급하게 월차를 써야 한다고 하면, 문자보다 전화로 알려 주세요. 왜 갑작스럽게 신청할 수밖에 없는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그날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일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면 팀장 입장에서는 불편할 이유가 없습니다. 문자보다 전화가 급한 상황의 신뢰가 더 가니까요.



우리는 일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그리고 신입에게도 팀장에게도 나만의 시간은 돈보다 더 중요하니까요. 더 잘 일하고 더 오래 다니기 위해서라도 부담 없이 서로 빈자리를 채워가며 연월차 쓸 수 있는 회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MZ를 위한 TIPs

연월차 신청은 미리 할수록 좋다.

쉬는 날 있을 업무에 대해서는 미리 대비해서 공유하자

급할수록 직접 연락하자. 문자로 통보는 오해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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