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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Dec 30. 2022

나는 변한다. 아주 서서히, 지나 보면 너무도 분명하게

한 해가 끝나 간다. 올 한 해는 휴직을 하면서 해야 하는 일에서 거리를 조금 둬 보았다.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기에는 늘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을 쉬는 휴직이지 살아가는 삶을 멈춘 것은 아니다. 삶은 참 해야 하는 일의 연속이다.


나에게 너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거기, 그 순간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눈에 밟히는 일은 하고 지냈다.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일복'은 타고났다고 하셨다.


그래도 출퇴근까지 하루 열 시간 이상 뺏기던 직장이라는 부분을 지우고 나니 빈 공간이 꽤 생겼다. 남을 위해 해야 하는 일들 사이에 빈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채워 넣었다.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었다.


해야 하는 일이 익숙한 나는 하고 싶은 일들도 해야 하는 일처럼 했다. 매일 아침에 아이들을 보내고 달리기 하고 글 쓰고 밥 챙겨 먹고 운동하고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고 짧은 분량이지만 책을 읽고.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규칙대로 하나씩 해 나가는 습관으로 만들었다. 다이어리에 일과를 계획하고 다 하면 뿌듯한 일상이 계속되었다.


한재우 작가의 "태도 수업" 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정체성은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믿음이다.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깊어지면 정체성이 된다. 소설가 김연수는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8년간의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지난 팔 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썼다. 그 결과, 몇 권의 책이 출판됐다... 그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그 사이에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돼갔다는 점이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서서히, 하지만 지나고 보니 너무도 분명하게."


지난 일 년간 나는 변했다. 이제껏 살아왔던 시간들과 다른 결의 시간들을 나답게 보냈다. 그렇게 습관처럼 보냈던 일상들이 반복되면서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아주 서서히, 하지만 지나고 보면 너무도 분명하다.

하고픈 일이든 해야 하는 일이든 받아들이고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나는 "변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시 생일을 맞이 하고 한 살 더 나이가 먹는 것이 슬프지 않다. 그 시간만큼 나는 변했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변하고 난 이후에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오늘을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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