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셋째 주 - 과연 중국 전기차 시장은 정말 위기인가?
작년에 전 세계에서 전기차가 가장 많이 팔린 나라가 어딘지 알고 계신가요? 정답은 중국입니다.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는 전기차 시대에서 새롭게 판매되는 전기차의 절반은 중국에서 팔렸습니다.
실제로 2022년 중국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4대 중 한 대가 전기차라고 합니다. 이렇듯 세상에서 가장 전기차 보급이 활발하다고 알려진 중국에서 최근 전기차 회사들이 줄도산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신흥 전기차 기업 중 하나인 아이츠자동차가 경영난에 빠져 월급과 사무실 임차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고, 중국 헝다그룹의 헝다자동차도 생산라인을 세웠습니다. 주요 전기차 업체 샤오펑도 2023년 1분기에 1년 전보다 47.3% 줄어든 1만 8천230대만 인도하면서 올해 실적이 예상보다 부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연 중국에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그 숨은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중국이 전 세계 전기차 판매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도시에서 전기차에만 신차 번호판을 허락해 주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중국 정부가 전기차를 국가의 주요 과제로 선정한 이후 전기차 구매 할 때 보조금을 지불하고, 충전하는 전기료도 저렴하게 제공하는 노력은 사실 다른 나라들도 다 하는 노력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다른 나라와는 CO2 규제가 좀 다릅니다. 우리나라나 미국 유럽에서는 친환경차 보급을 위해서 회사가 판매하는 차량 전체의 평균 CO2 양을 제한하고 벌금을 매기는 형태인 CAFE (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전체 판매량의 일정 비율을 전기차 혹은 Plug-in Hybrid 차량으로 채우도록 하는 NEV Credit이라는 규제를 동시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기준을 만족하시키 못한 메이커는 다른 업체로부터 Credit을 사서 해결하기 전까지는 내연기관차를 더 이상 팔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중국만의 특별한 규제로 중국 전기차 시장에는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소비자들이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저렴한 형태의 전기차들을 시장에 내놓습니다. 작년에 중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모델이 홍광 미니 전기차 같은 차를 출시해서 필요한 차량 수를 채우려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둘째로 이왕 전기차를 출시하면 스펙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저렴한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우리나라나 미국에서는 여전히 고급차량으로 인식되고 주행 거리도 400km 이상은 기본적으로 가야 한다고 전기차를 인식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LFP 배터리를 이용해서 조금 주행거리가 짧더라도 더 저렴한 전기차들이 시장에 선보이게 됩니다. CATL이나 BYD 같은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LFP EV 배터리 시장에 강점을 가지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자동차 메이커들의 전동화가 늦어질 거라고 예상한 신생 스타트업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납니다. 모터와 배터리만 구하면 내연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적 진입 장벽이 낮은 전기차를 제작해 보겠다고 너도나도 나섰습니다.
코로나 이전 한창 중국이 호황이었던 시절에 대출과 투자를 받아서 전기차를 만들어서 잘 팔리면 판매 이익뿐 아니라, NEV CREDIT을 기존의 자동차 메이커들에게 판매해서 부가 수입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말입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중국에 등록된 전기차 등록 업체는 70여 곳에 달합니다.
그러나 블루 오션이라고만 여겨졌던 중국 전기차 시장이 2022년 신차 판매의 25%를 넘어서게 되면서 여기저기서 어렵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먼저,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과 후발 주자들 간의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튼튼한 배터리 공급망과 기존 내연기관 차량 제조 시설을 갖춘 기업들은 기존의 차량 개발 노하우를 기반으로 경쟁력 있는 상품들을 출시하는 반면, 순수 전기차 제작만을 기치로 내건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거기에 이미 신차의 25% 이상을 차지하게 되자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중앙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폐지합니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찻값이 그만큼 더 비싸진 것과 마찬가지이니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도 대중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 정부의 주도하에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중국의 전기차 충전소는 높아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충전소가 소위 각 주의 대표 도시들에 집중되어 있고, 설치된 충전기들의 관리가 잘 되지 않아 휴게소에 들러도 충전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자동차 충전 수요를 감당할 충분한 발전량이 확보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차량 충전을 제한적으로 운영하기도 합니다.
자동차 산업 전반으로는 배터리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원재료 가격이 상승하면서 수익률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그리고 전기차 규제 Target을 상회하는 판매량으로 전기차가 팔리고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큰 무리 없이 정부 전기차 규제를 만족하게 되면서 Credit 장사를 해서 추가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신흥 전기차 회사들은 큰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최근의 중국 전기차 산업의 위기는 수요가 줄고 앞서 가는 기업으로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한 수순입니다. 중국의 3대 신흥 전기차 회사인 샤오펑의 허샤오펑 회장이 4월에 한 콘퍼런스에서 언급한 대로 그야말로 월드컵 같은 토너먼트를 치르고 셈이죠. 앞으로 10년간 중국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체들은 망하거나 합종연횡을 통해 사라질 것이고 32강→16강→8강 순으로 소수의 전기차 업체만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고 중국의 전기차 산업이 위기라는 건 아닙니다. BYD 같은 선도 기업의 경우에는 올해 매출이 작년보다 80% 이상 증가하는 실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소위 잘 나가는 기업들은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고, 전체 판매량도 상승 곡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전기차 비율이 일정 비율 이상을 차지하게 되어 시장이 성장 단계에서 성숙 단계로 접어들었을 때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중국을 통해 우리는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판매 대수가 늘면서 보조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길 위를 돌아다니는 전기차 수가 많아지면서 충전 문제가 커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소 업체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변화는 중국 시장뿐 아니라 미국/유럽과 같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곧 다가올 정해진 미래입니다. 각종 수혜의 우산 아래서 우상향 만을 그리던 전기차 시장에서 혜택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지금, 진짜 경쟁력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경고가 더 엄중하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