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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내어 줄 때 크는 법을 덕분에 배웠단다.

2012년 6월 28일 만 세살 된 딸에게 보낸 첫 번째 생일 편지

by 이정원


수인아.. 생일 축하한다.

매일 매일 얼굴을 보고 안아주고 수다떨며 지낼 때는 잘 모르다가 이렇게 기념할 만한 날이 되면 부쩍 언제 이렇게 컸는지.. 새삼 시간이 참 빠르다는 걸 느낀다...


넌 어땠니?. 니가 태어나고 3년의 시간 동안 엄마 아빠는 힘들었지만 그만큼 더 행복했었다. 생존을 위한 모든 것을 채워 주어야 하는 대상이 곁에 있다는 건 참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함께 했기에 그럭저럭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준 사랑보다 더 크게 건강하고 씩씩하고 밝게 커 가는 니가 주는 기쁨 속에 오히려 아빠가 더 컸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람은 받아서 크는 것이 아니라 꺼내어 줄 때 그만큼 더 크는 것이고.. 부부가 만나서 가족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이렇게 무작정 주어야만 하는 단계를 거치도록 해서 엄마 아빠를 그만큼 키워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인 너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이제 컸다고 떼쓰고 시샘하고 장난치고 할 때마다 사랑으로 감싸는 것과 가르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고 친구나 동생과의 사이에서 어떻게 편애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면서 그렇게 우리 가족도 너와 함께 나이를 함께 먹어 가고 있다.


한살 많은 언니 오빠들과 유치원 다니느라 치이고 힘들 텐데도 묵묵히 다녀 줘서 고맙고. 떼 쓰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말귀를 알아 들어 줘서 고맙고 항상 시기 적절한 발언과 질문으로 웃음을 줘서 고맙고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는 상투적인 질문에 늘 '엄마 아빠'라고 정치적인 답변으로 가정의 평화를 지켜줘서 고맙다.


부디 건강하고.. 지금처럼 씩씩하게 커 가 주기를.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고 여자라서 니가 겪어야 할 어려움도 많겠지만 부디 엄마처럼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지 않는 지혜로운 어른으로 커가길 기도한다.


사랑하는 우리 딸. 생일 축하해..

2012년 6월 28일에 아빠가


덧글.

첫 아이가 네살이 된 2012년 이후로 매년 생일마다 아내와 두 딸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원래는 페이스북에 올렸던 내용을 이렇게 담아 봅니다. 매년매년 올려서 둘째가 스무살 되는 해에 저희끼리 책으로 내 볼려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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