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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ug 23. 2023

과학이 귀했던 시절에 그 무게를 지켜온 사람들 이야기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을 읽고.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과학 혁명의 시작은 무지의 발견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옳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에서 현대 과학은 기존의 어떤 전통 지식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의 흐름에 문을 닫고 살았던 150여 년 전 조선은 나라를 잃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대학 과&동아리 선배이자 공학박사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민태기 소장님의 신작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은 그 어려운 시절에 좌절하지 않고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과학'을 받아들여 세상을 깨우고자 했던 우리나라 1세대 과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국인 최초 의사이자 독립 운동가였던 서재필 님을 시작으로 미국과 일본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배우고 들은 내용으로 조국의 독립과 계몽으로 이어가려 했던 과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서재필 선생의 신혼과 해방후 귀국장면

책은 다양한 고증을 통해서 그때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정변에 휘말려서 망명길에 올랐다가 미국에서 의사 공부를 시작하기도 하고, 임시 정부의 일을 하다가 유럽에 남아 물리학을 공부하기도 한다. 일본으로 망명한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평생을 일본에서 공부하고 일했지만, 독립이 다가오자 모든 걸 버리고 한국으로 와서 종자 개발에 큰 업적을 남긴 우장춘박사님 이야기도 나온다.



남들보다 새로운 문물에 더 가까웠던 이들의 삶은 일반인에게도 관심사였다. 똑같이 나라 없는 유대인이지만 유명해져서 이스라엘 땅에 대학을 세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소개하는 강연회에는 사람이 넘쳐 났고 유학 중에서 보내온 소식이나 연애사도 신문에 소개되어 자료로 남아 있다. 이른바 셀럽이었던 셈이다. 그만큼 그 시절엔 외국에 나가 그런 문물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적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작가님은 어려운 시절에도 꿋꿋이 학문을 추구하고 그걸 나누고 세계를 누비면서 독립과 계몽에도 힘썼던 1세대 과학자들의 의지와 노력을 기억하자고 이야기했다. 고난과 투쟁의 역사로만 기억되는 일제 강점기에도 사람들은 치열하게 살아왔고, 기회가 된 이들은 과학이라는 길을 택해 깊이를 쌓았다. 그리고 다시 나라를 찾았을 때 그나마 발전이라는 것을 시작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주었다. (책에 언급된 대부분의 인물들이 해방 직후 서울대학교 혹은 김일성대학교의 주요 교수로 활동하며 해방 후 학술 활동을 주도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한 사실과도 직면해야 했다. 친일을 했던 아버지 덕에 여유로운 유학을 한 아들은 장관이 되어 KIST를 만든다. 남북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가졌던 인사들은 미 군정에 의해서 배척된다. 경성대학 이공학부 1회 졸업생 중 절반은 월북했고, 월북한 동료와 연락하던 세계적인 수학자는 간첩으로 감시를 받아 복권되지 못하고 캐나다에서 생을 마감했다.


가끔 아내와 일제 강점기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그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그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어떻게 지냈을 것 같냐고. 그때 내 대답은 글쎄.. 소심하고 겁이 많으니까 아마 생업을 하면서 후원금 정도 보태고 있지 않았을까? 였다. "생업." 태어나면서 맡게 된 일이라는 이 말은 그 시대를 살았던 과학자들에게는 더 큰 무게였으리라. 우리 모두가 지금도 그 무게를 감수하고 살아가기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선하다"는 마지막 에필로그가 와닿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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