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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ug 27. 2023

도대체 임원들이라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4장 내가 경영해도 그것보다 잘하겠다. - 4번째 이야기

SCENE #19  


점심 식사를 마치고, 회사 건물 주변을 산책하고 있는데 못 보던 새 차가 지나가다가 곁에 섰다. 창문이 내려가더니 이 팀장을 반갑게 부른다.  


"아이고, 최 담당님. 아니지. 상무님.. 오랜만에 뵙네요. 영전 축하드립니다."

"그러게 오랜만이네. 고마워. 우리 같이 중국 프로젝트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런 날도 오는 구만."

"이 차는 그럼…"

"응. 법인차 받은 건데 그래 봤자 계약직이지 뭐.."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 더 큰 역할 하셔야죠."

"잘리지나 않았으면 좋겠어. 언제 소주 한잔 하자고.. 그럼."


우리 부서에 계시다가 기획팀으로 부서를 옮겨서 프로젝트 총괄하셨던 분인데 이번 가을 개편에 상무로 승진했다고 들었다. 3년 전에 그 어려운 중국 진출 프로젝트 다 마무리하고 승진한다 승진한다 매년 소문만 무성하더니 이제야 됐나 보다. 차를 보내고 난 후에 이 팀장 표정이 영 개운치 않아 보인다.  


"팀장님. 저분 그 최상무 님 맞죠? 우리 부서에 예전에 계셨는데 이번에 상무로 승진하신.."

"응.. 민지 씨. 같이 고생 많이 했었는데 바라시던 승진 하셨으니 좋은 일이지…."

"에이. 근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어쨌든 승진하시면 회사에서 차도 나오고, 연봉도 오르고…"

"회사 사정이 좋을 때야 그렇지만, 내년 넘기기가 쉽지 않은데… 무사히 잘 넘기실 수 있겠지?..." 


이 팀장 입장에는 남의 일 같지 않나 보다. 임원 다는 것보다 정년까지 다니는 게 더 어렵다던데.. 어휴 나는 저렇게 부담되는 자리면 시켜 줘도 안 할 것 같다. 도대체 임원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야?   


나는 임원을 꿈꾸지 않는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랑 똑같이 외롭고 힘든 사람입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던 시절에 많은 직장인들의 꿈은 임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만의 사무실과 자동차, 법인카드로 멋지게 결재하는 드라마 속 이사님, 상무님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죠. 그런 이야기에 익숙했던 제가 임원이라는 환상이 깨진 건 입사하고 2년 즈음 지난 어느 야근 날이었습니다.  


당시 저희 팀에는 인원이 40명 즈음 됐었고, 그런 3팀이 모인 오퍼레이션장으로 상무님이 계셨습니다. 신입 사원이었던 제가 얼굴을 마주 대하기도 어려운 분이셨죠. 그날은 엔진 시험이 늦게 끝나서 저녁 8시 즈음에 늦게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사무실에는 저랑 저 멀리 창가 자리에 상무님만 계셨습니다.

 

아 외로운 시즈 탱크여. 왜 그랬니?


실험 결과를 정리하고 가야지 하고 있는데 어디서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탱크 시즈 박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사무실에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PC에서 이어폰을 뺐는데 제가 있는 걸 알고 상무님도 "아니 니들 점심 때 하잖아. 나도 같이 하고 싶은데.." 하면서 엄청 당황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높은 자리에 있지만 그만큼 외롭고 힘든 자리구나 하면서 왠지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조직과 사업을 맡아 책임지는 계약직이라 언제 잘릴지 모릅니다.


제 첫 임원 상사처럼 보통은 회사에서 조직을 운영하고 책임지는 역할을 임원들이 담당합니다. 본부와 팀들을 묶은 오퍼레이션장들은 대부분 임원진으로 이사회의 일원으로 참석하게 되죠. 자기가 맡은 조직의 인적 관리, 목표, 예산 등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조직 관리와는 별개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의 리더들도 임원이 됩니다. 아무래도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는 직원들을 통솔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그만한 지위가 있어야 하겠죠. 진행하고 있는 각 프로젝트의 진척 상황을 보고하고 예산을 관리하고 중요한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집게 됩니다. 그러니 중요한 결정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하면 해당 임원을 설득하겠다는 목표로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앙일보에서 진행한 임원 대상 여론 조사 - 부도 누리지만 스트레스도 많이 받겠죠?


성과에 따라 평가는 받지만 어쨌든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고 정년도 (법적으로는) 보장되는 평직원에 비해 임원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조직이나 사업의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매년 계약이 갱신되는 계약직입니다. 그만큼 본인이 맡은 영역에 주인 의식을 가지라는 압박이겠죠. 본인이 달성해야 하는 KPI를 달성해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니 KPI 달성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임원 달고 나더니 변했다고 투덜댈 필요 없습니다. 입장이 달라진 만큼 지금 현업에서 요청하는 내용과 KPI의 연관성을 잘 찾아 제시하면 의외로 쉽게 결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 회사에서 꼭 마지막 출구가 임원인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에서는 예전에는 임원이 되고 나면, 6개월 정도는 아예 새로운 분야에서 일하게 하거나 연수를 보내서 평직원일 때의 마인드를 바꿔 놓는 임원 교육 과정이 있었습니다. 현장에 집중하는 마이크로 뷰에서 멀리서 큰 그림을 그리는 이글 뷰로 관점을 바꿔 놓는 것이죠. 이렇게 바뀐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고 예전에 마이크로 한 관리에 매달리면 승진한 임원 본인도 손해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피해를 봅니다.  


HSG의 신임 임원 교육 프로그램 - 인재도 육성하고 전략도 짜고 조직과 갈등도 관리하고 성과도 내야 하니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기술의 변화속도가 갈수록 더 빨라지고, 혁신이 기업들의 생존 키워드가 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피의 수혈을 외부 영입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기존의 임원들이 받는 압박은 더 커지겠죠. 압박이 클수록 생사를 쥐고 있는 사장이나 본부장의 의견에 거수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 조직이 더 경직화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임원 승진이 안되면 그만두라는 소리라며 조용히 퇴사를 준비했지만, 지금은 더 성공하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은 임원을 바라보지만, 또 임원 같이 부담스러운 자리는 관심이 없고 내 자리에서 묵묵히 지내고 싶다며 Expert의 길을 가시는 분도 많습니다. IT 같이 성공적으로 출시한 프로젝트가 내 포트폴리오가 되는 산업에서는 젊은 나이에도 새로운 회사로 임원 승진하면서 가치를 높여 가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요즘은 매니지먼트 외에도 전문가 커리어패스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어떤 길을 가느냐는 각자의 선택에 달린 문제입니다. 임원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각자가 선택한 트랙에서 받은 만큼 일하고 책임지는 만큼 권한을 가지는 건 어느 직급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저 멀리 홀로 앉아 무게 잡고 있는 임원분들과 일할 기회가 있으면 너무 부담스러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마시길. 그들도 한 때는 사원이었고, 힘든 줄 알면서도 어려운 길을 택해서 혜택보다 많은 짐을 지고 가고 있는 우리 미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TIPs for MZ

조직과 프로젝트의 중요한 결정에 대한 보고는 해당 임원의 성향을 고려하자.

보고의 내용과 KPI의 연관성을 부각하자.

꼭 임원이 되지 않더라라도 회사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은 많다. 커리어 패스 설계에 유연함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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