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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ug 28. 2023

안전하단 말보다 안심시켜 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오염수가 실제보다 더 위험하게 느껴지는 이유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찜질방을 들렀다가 돌아오는 차에서 둘째가 회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며칠째 사달라는 그랬는데 계속 미뤘었는데 그럴까 하고 동네 횟집에 찾아갔습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 맛집으로 유명한 곳인데 손님이 우리 밖에 없더군요. 아이 포함 3명이서 모둠회 소 하나 시키고, 물회도 하나 시켰는데 국수보다 회가 더 많아서 너무 넉넉하다 싶었다가 계산 마치고 나올 때까지 손님이 저희밖에 없는 상황을 보고 그 후한 인심이 이해가 됐습니다.  

네. 방류가 되었고 안전을 위협받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저는 별로 망설이지 않고 회를 사 먹었습니다. 일본 동쪽 해변에서 나온 오염수가 우리나라로 퍼져 오는데도 시간이 걸릴 테니, 지금 횟집에서 있는 생선들은 무관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일본산 해산물이 아니라면, 저는 수산물을 계속 먹을 것 같습니다. 많은 양을 희석해서 내 보내는 방식 내 보내고 있는 과정 자체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기준에 부합하는 부분이니까요. 완전히 안전하다고 확인된 적도 없지만 무조건 문제가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굳이 제 마음이 향하는 곳을 따르자면 지구가 탄생하고 45억 년 동안 무수한 긴 세월을 받아 안아 준 (100배 희석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큰) 바다의 힘을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바다의 힘을 믿는 것과 바다에 아무 짓이나 해도 된다는 엄연히 다른 문제입니다. 인류의 공공재인 바다에 어떤 형태이든 제어되지 않는 오염 물질의 투기는 최소화해야 하고 엄격히 관리되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발 디디고 살아가는 지구에 대한 예의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양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힘의 논리로 태평양에 있는 섬에 원자 폭탄 실험을 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던 시대가 아닙니다. 한 나라가 전체 인류에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면 국제 사회가 이를 제재하고 통제하고 제대로 관리하도록 압박을 가할 수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일본 본인도 1993년에 러시아가 태평양으로 방사능을 유출시키려 할 때 격렬히 반대하고 이런 무분 한 해양 투기를 막는 런던 협약이 체결되는데 앞장선 바 있습니다.

http://www.impet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1147

  


일본이 말을 바꾸든 않든 우리는 우리나라의 입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박진 외교부 장관은 국회 질의에서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찬성 또는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대해, "일본이 가지고 잇는 방류 계획상, 과학적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을 하고 있다."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건 사실인 건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의 입장은 어디 있습니까? 

https://youtube.com/shorts/SaSGsyevXjU?si=r6rjmrd8U3ZAwszC


저는 우리나라 수산물에 대해서는 앞서 이야기한 저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서 제 나름대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수산물을 사 먹겠지만, 일본의 오염수 방류 자체는 반대합니다. 그것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일이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고, 어쨌든 지구 환경에 좋지 않은 일이니까요.  


만약 우리나라 정부가 순리대로 아래와 같이 입장을 밝혔으면 어땠을까요?  


IAEA의 조사 결과에 따라, 현재의 방류 계획상으로는 방류 기준을 만족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나, 인류의 공공재인 바다에 대한 방사능 물질 투기는 신중히 대응해야 하는 바 일본 정부에 오염수 유출에 계획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에 대해 오염수 유출 과정에 대한 투명한 진행과 지속적인 관리를 요청하고 향후 문제 발생 시 보상에 대해서 함께 협의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을 대상으로도 아래와 같이라고 홍보했어도 지난 주말에 그런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 나섰을까요?


국민 여러분, 걱정이 많으시죠? IAEA가 안전하다고 보고하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일본에 지속적으로 오염수 유출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앞으로 일본이 발표한 대로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국제 사회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검증 시스템을 마련해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만약 영향이 발생 시에는 그 피해를 일본에 청구해서 보상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수산물은 어느 나라보다도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안심하시고 앞으로도 싱싱한 수산물 많이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한미일 동맹에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우리가 일본이 내정에 간섭할 수 없듯이 이건 우리나라의 입장이니까요. 일본 입장에서도 본인들이 안전하다고 광고한 이야기가 있으니 중국처럼 전 수산물 수입 금지 같은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러든 말든 할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준을 세우고 지구 전체의 환경을 보호한다는 대의를 앞세워야 앞으로 있을 다른 상황에도 목소리를 세울 수 있습니다. 만약 일본이 아니라 중국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유출을 해도 IAEA가 괜찮다고 하면 그냥 넘어갈 건가 보네요.   


검증되지 않은 안전보다, 의심하면 비과학적이라고 국민 탓만 하는 정부의 태도에 우리는 더 분노합니다. 실체적인 위험보다 더 불안하게 느끼는 건 안전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어느 편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고 그래서 믿음이 가지 않아서겠죠.  처음 가는 길을 가는데 거기 범죄율이 1% 밖에 안 된다며 안전하다고 이야기만 하는 사람보다 "불안해? 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 하는 사람의 말이 더 안심되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에겐 안전하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내 마음을 읽어 주고 내 편이 되어 주는 정부나 정당(민주당)이 더 필요합니다. 당장 다가온 내년 총선에 영향을 어떻게 줄지에만 촉각이 잡혀 있는 두 주류 정당들이 이런 필요를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 같습니디. 부디 선어회가 맛있던 코로나도 버텼던 단골 동네 횟집이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잘 넘어갈 수 있기를... 비도 오고 회 한 접시에 소주가 무척 그리운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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