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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Sep 22. 2023

차도살인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

이재명 체포 동의안 가결에 부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대한 체포 동의안 투표가 가결되었다. 절대 다수당인 민주당은 당대표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함께 내홍에 빠졌다. 표 단속을 잘 못했다고 원내 지도부는 사퇴하고, 부결파와 가결파로 분열될 위기에 봉착했다.


가결이 난 상황에 대해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말이 많다. 안민석 의원은 가결파들이 국민의 힘이라는 타인의 힘을 빌려서 당내 라이벌인 이재명 대표를 '차도살인'했다고 까지 이야기했다. 그러나 정작 가결을 바랐던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고 라이벌을 잃어버린 민주주의는 20세기의 번영과 함께 가장 성공적인 정치 체제로 각광받았었다. 이념이 중요하신 우리 대통령님은 말끝마다 자유민주주의를 사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시지만 사실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세계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는 트럼프를 예로 들면서 미국 민주주의 제도의 허약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삼권 분립을 지지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많은 제도들이 극단적인 정치 지도자를 만나면 무소불위의 독불장군이 되는 권한으로 악용된다.

범죄를 저질러도 측근을 사면해 버리고, 법안을 올려도 승인을 거부한다. 대법원장 임명권으로 본인 성향을 맞추고, 행정 명령으로 정치적 경쟁자들을 압박했다. 예전에도 할 수는 있었지만, 신사협정에 따라 선을 지켰던 관용이 넘치던 낭만 있는 사라지고 민주당도 공화당도 물러나면 죽는다는 치킨 게임 양상으로 변모되었다.


판이 그렇게 변질되고 나자, 주목받는 대상도 신사에서 투사로 바뀌었다. 주류에 속하지 못했던 트럼프 같은 외부인사가 SNS와 여론에 편승한 인기몰이로 기성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당선이 되어 전 세계 판을 흔들었다. 어디 보수만 그런가, 반대편에서 상대해야 하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더 강경한 메시지를 서로에게 던져 되는 사이에 정치는 실종되고 분열만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야기지만 지금의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정치 제도의 스펙트럼은 극우 - 보수 - 중도 좌파 - 극좌로 선이 명확했다. 태극기 부대가 있었고, 정의당으로 대표되는 노동자 정당이 있었지만, 침묵하는 다수는 보수와 중도 좌파를 대변하는 양대 정당 사이에서 그때 그때 Casting Vote를 해 왔고 그들의 선택이 늘 승패를 정했다.

17대 대통량선거 포스터

지금은 어떠한가? 보수를 대변하는 여당과 대통령은 뉴라이트 사관에 빠져 논란만 키운다. 모두의 정부가 되겠다는 약속은 온 데 간데없고, 1년 반이 지나도 전정권 탓에 반대하는 세력은 모두 북한에 동조하는 빨갱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법안은 반려되고 청문회에서 반대를 해도 그냥 무시하고 임명된다. 정부에 비판조인 언론에 대해서는 오늘도 가짜뉴스라고 이야기하고, 대통령은 행정 하라고 뽑아 놓은 국무위원들에게 투사가 되라고 강요한다.


민주당이라고 큰 차이가 없다. 새 정부 초기부터 영부인에 대한 비난에만 초점을 맞추더니 인사 청문회에서도 날 선 공격만 계속한다. 날리면 발언, 일본 오염수, 양평 고속도로, 잼버리. 이슈가 터질 때마다 누가 더 날카롭게 비난했냐가 유튜브를 타고 지지자들 사에에 유명세를 탄다. 이태원 참사는 행안부 장관을 탄핵까지 했다가 법원에서 기각당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사선에서 우리가 (대통령님보다 더 사랑하고) 어렵게 키워 온 민주주의는 사라져 버렸다. 우파는 스스로를 극우로 밀어붙였고, 좌파는 극좌의 빈자리를 대표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자들이 대체했다. 양쪽 모두 20% 남짓의 열혈 지지층에 목소리에 파묻혀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니 타협이나 관용은 찾을 길이 없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남은 40% 이상의 중도층은 갈 길을 잃어버렸다. 어느 당도 잘하고 있다가 30%대를 넘지 못하는 여론 조사는 극단으로 치달은 양당 정치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한 대부분을 대변해 주고 있다. (여론 조사 참여에 적극적이지 않는 성향을 고려하면 실제 바닥 민심은 절반 이상이라고 본다.)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치킨 게임에 승자는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는 절반 이상의

국들을 잡으려면 게임 체인저가 필요하다. 물러서면 지는 것이 아니라 물러 나야 할 때는 물러나는 용기와 당당함이 판을 바꿀 수 있다.


나는 이재명이 수재 현장에서 보여준 현실 감각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철학도 없고 경험도 없어서 어설픈 이념에 잡힌 상대편보다는 훨씬 정치적 역량이 뛰어나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공작이건 정치공세건 사법 리스크가 있는 상태로는 온전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가 진짜 큰 판에 어울리는 큰 사람이 되려면 노무현이 꼬마 민주당으로 박차고 나가는 기개가 필요했다. 6월에 체포 영장 나오면 당당하게 심사받겠다 이야기했을 때 그래서 반가웠고, 엊그제 SNS에 올린 메시지에 실망했다. 그동안 무죄라고 주장하던 말과 단식을 하면서 요구했던 개혁의지 모두가 힘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말의 힘을 잃어버린 리더가 살 길은 제 삼의 기관으로부터 검증을 받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가결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당히 법원의 판결을 받아서 무죄를 입증해서 부활하든지,  아니면 그동안 의혹으로 남았던 일들의 책임을 지든지...


진정 지켜야 하는 것은 당대표도, 민주당도 아니다. 우리가 그리워하고 지키고 싶은 건 한 말은 지키고, 결과는 승복하고, 의견이 달라도 존중하고, 같이 살아갈 길을 찾아가는 우리 기억 속에 민주주의다. 민주당이 당대표 개인의 극렬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오히려 더 밖으로 밀려 나는 작금의 시대에 이번 가결이 진정한 쇄신의 계기가 되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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