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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May 24. 2024

미숙해서 미안. 우리도 부모가 처음이라서...

버지니아 사티어의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5월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큰 딸이 갑자기 늘어난 공부량을 조금 버거워할 때가 있다. 숙제를 다 못해서 , 매일 보는 시험 준비가 안돼서 속상해하면서 안 가면 안 되냐고 이야기하길래 한번 욱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비싼 돈 주고 가는 학원을 안 가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 이럴 거면 학원을 왜 보내냐 싶기도 하고 그래도 달래면서 잘 회유해 봐야 싶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사춘기 부모 역할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시기에 심리학자이자 가족 상담가인 버지니아 사티어의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는 큰 위안을 주었다.


제목만 보면 흔히들 보는 육아서 같지만, 실제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사티어는 인간은 저마다 고유하면서도 동질적인 존재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남에게 줄 수 있는 애정의 솥을 채우는 곳이 가정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는 내 안의 솥을 채우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부부는 서로가 비슷한 점에 끌려서 호감을 가지지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 큰 관계로 성장하려면 그 차이점을 좋아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좋은 의사소통이 필요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내가 일단 성숙하고 안정되어야 되는데 부모도 사실 부모 노릇이 처음이고, 우리의 부모도 그랬다. 그래서 미숙하게 커오면서 받았던 상처들이 남아 "다 괜찮다"며 회유하거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라고 비난하거나, "내가 다 책임지고 해결할게"라며 계산하거나, "아 모르겠어"하며 혼란스러워하면서 회피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있는 한 배우고 변할 수 있다. 내 삶에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 솔직하게 들여다 보고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우리는 성장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지만, 중요한 건 좋은 부모가 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완벽함보다 진실함을 기대하고 자신들이 느끼는 희망, 두려움, 실수, 불완전함을 부모가 잘 알고 공감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인생의 긴 프로젝트를 나도 성장하면서 구성원도 함께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잘 경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번 생은 처음이지"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도 처음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부모가 된 것도 처음이다. 그래서 늘 시작은 두렵다. 해 본 적이 없고, 잘 못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마음에 위축되고 조심스럽고 남들이 어떻게 하나 비교하고 그리고 조바심에 어설프게 따라 한다. 내가 지금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는 평생 버릇없이 살 것 같고, 그렇게 어릴 때는 싫었던 부모님의 행동들을 그대로 하고 있는 나를 쉽게 발견하곤 한다.


사티어는 그렇게 불안해하는 부모들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 괜찮다고. 당신 스스로를 먼저 사랑하라고.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에게도 넘치는 에너지와 그만큼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고 불법적이거나 부도덕하거나 살찌는 일이 아니라면 뭐든지 격려해 주라고 조언한다. "네가 해야 할 일을 말해 줄 테니 내 말대로 해"라는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논리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려면 너를 이기는 내가 아니라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우리가 되어 보자고 알려 주었다.


새벽에 책을 덮고 아침에 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학원 가기 전에 함께 숙제를 풀어 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다. 한껏 밝아진 아이를 보면서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46년을 살아도 미숙할 수밖에 없는 늘 처음인 내 인생. 아빠도 미숙해서 미안해. 우리도 부모가 처음이라 어렵지만 그래도 잘해 볼게.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그렇게 커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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