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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ug 14. 2024

EU는 왜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를 물리게 되었는가

쇠퇴하는 경제를 다시 바로 잡으려는 고육지책

EU가 중국의 전기차 공세에 대한 칼을 빼 들었다. 최근 발표된 EU의 결정 사안에 따르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기존 10%의 관세에 추가적으로 낮게는 17%, 많게는 38%에 달하는 추가 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아직 회원국 전체의 표결에 부쳐져야 하기 때문에 실제 실행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대 중국을 상대로 무역의 장벽을 높이 세우겠다는 기조를 천명한 것이다.


중국 전기차에 대한 징벌적 관세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글로벌 호황을 누리면서 자유 무역의 예찬론이 전 세계를 지배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이른바 가장 경쟁력 있는 나라가 각자 잘하는 것을 수행해서 모두가 이익을 보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자동차 산업이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원재료는 남미에서 가져와서, 설비는 일본이 만들고, 한국산 부품을 가지고 노동력이 값싼 중국에서 생산해서 미국과 전 세계로 수출하는 이른바 ‘커플링’을 통한 글로벌 호황이 이어졌었다.


이런 자유무역의 연대가 깨지기 시작한 계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코로나였다. 생산의 외주화로 침체기에 접어든 미국 제조산업의 블루 칼라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기는 위해 트럼프는 “America First”의 기치를 꺼내 들었다. 공공의 적으로 러시아를 대신해서 글로벌 2강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을 견제하면서 중국산 자동차에 대해서도 징벌적 관세인 25%를 부가하고 있다. 안보의 문제를 들어 화웨이도 견제하고, 이제는 인플레이션 방지법으로 중국의 자본이 관여해 있는 제품들에는 보조금 혜택을 제한하는 것과 같은 불이익도 주고 있다.


코로나는 자국 우선 주의의 흐름을 더욱 강화했다. 펜데믹으로 사람과 물류의 이동이 제한되자 방역을 위한 마스크와 예방 접종을 위한 주사기조차 구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 각 나라들은 생존에 필요한 생산 시설이 자국 내에 없을 때의 난처한 상황에 대해서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다. 락다운으로 경제 활동이 멈춘 상황에서 기업의 생존을 위해 보조금을 지불한 각국 정부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해 주는 돈에 자국 우선주의라는 꼬리표를 달고 새로운 프로젝트와 공장 설립은 자국에 지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일단 내 나라의 경제를 살리고 그래서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지지를 얻어 내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는 선거에서 패배하고 팬데믹은 종결되었지만, 이런 자국 우선주의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자유 무역 주의의 본거지로 알려진 영국과 미국도 1800년대 경제 발전 초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보호주의 국가였다. 그들은 자국의 ‘유아기에 있는 산업(Infant Industry)을 보호하고 시장에서 성장할 시간을 벌어 경쟁력을 확보한 이후에 자유무역으로 선회했다. 대부분의 유럽의 국가들과 일본, 우리나라도 상당 기간 관세를 통한 유치산업 보호 정책을 썼다. 장벽을 높인다는 건 그만큼 경쟁력이 없어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행위다.


팬데믹 이후에도 실물 경제의 회복이 더딘 유럽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30년 전인 1993년도만 해도 전 세계 GDP의 30%를 차지했던 유럽은 2003년도에는 16%로 줄어들었다. 그 사이 중국은 1%에서 18%로 증가하면서 중국에게 이인자 자리를 내어 주면서 점점 세계 경제의 변방으로 미끄러지는 배경에는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딘 ICT산업이 발목을 잡고 있다. 유럽을 가보면, 스마트폰은 애플이거나, 삼성이거나 중국산이 다다. 검색도 구글을 주로 쓰고, 페이스북과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고 넥플릭스를 보고, 와츠앱으로 채팅하고 아마존으로 인터넷 쇼핑을 하고 있다. 선뜻 떠오르는 유럽을 기반으로 한 ICT 기업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로 제조업이 타격을 받았을 때 미국과 한중일이 IT를 통해 일정 이상 성장세를 유지한 반면, 유럽은 그대로 타격을 받고 회복도 더딘 상황이다.


유럽 경제는 1%미만의 성장에 갇혀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싸게 공급되던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공급이 제한되면서 인플레이션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미국의 GDP는 2.5% 성장했으나 유럽은 0.4%에 불과했다. 2024년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아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들이 1%도 안 되는 경제 성장률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ICT는 기반이 없는 유럽으로서는 미래 경쟁 산업인 전기차 분야에 대해서 무작정 시장을 개방해서는 안되는다는 위기의식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일차적으로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전기차의 상당수가 르노 Dacia나 VW과 같은 유럽 브랜드의 중국 공장 생산분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생산기지의 탈 유럽화를 막아보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미국의 금리 상승으로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EU의 이번 결정은 자동차 회사들로 하여금 이왕이면 유럽에 생산 공장을 운영해서 자국의 실업률을 개선하고 돈이 돌게 해서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미국과 중국의 강대강 대치의 풍선 효과로 중국도 다른 판매 수요를 찾고 있는 상황도 큰 배경이다. 중국의 자동차 회사들이 유럽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는 중국 기업들로 하여금 유럽에 직접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중국과 연관된 자본이 포함되면 적대적으로 제제를 가하는 미국과는 달리 유럽은 그런 딱지를 붙이지는 않는다. 어디서 온 자본이든 유럽 연합의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환영하는 분위기다.


유럽내에서 중국산 전기차 비중이 점점 더 커진다.


그러나, 전기차에만 이렇게 강한 관세를 유여하는 특이한 형태의 관세는 당장 보복 관세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에서 많이 팔리고 있는 유럽의 고급차는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되어 영향은 덜하겠지만, 유럽이 중국에 보조금을 이유로 억지로 여러 제재를 가한 것만큼 중국 내에 위치해 있는 유럽 기업들에 대한 추가 제재가 뒤따른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유럽에서 생산해서 중국에 많이 팔고 있는 고급차 회사들이나, VW이나 르노처럼 이미 중국에서 생산한 자동차로 유럽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회사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얼마 전 볼보가 중국에서 생산되던 전기차를 벨기에 공장으로 이전한 것도 EU의 정책이 어느 정도 확정되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문제는 관세 증가로 인한 가격 상승은 시장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는 사실이다. 과거 유치산업이 성장할 때까지 정부에서 여러 가지 혜택을 봐주고 키워 주었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산업들은 기술적으로 고립될수록, 그리고 기술이 펼쳐질 생태계가 충분하지 않으면 격차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유럽이 전 세계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친환경 정책의 리더로서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전기차 보급율은 유지 상승해야 하는데 중국 전기차 관세 적용으로 가격 상승이 이루어지면 이 또한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WTO를 앞세워 자유 무역 기치를 들고 시장 개방을 주장하던 서구 강대국들이 지금은 자국 경제를 위한 보호 무역의 장벽을 높이고 있다.


거기에 각 나라별도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중국과 협력적인 관계로 미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독일과 침체된 경제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프랑스. 극우 정권의 등장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탈리아와 유로 탈퇴 이후 급격한 쇠락을 맞이하고 있는 영국 그 외 중소 국가들 모두 각자 저마다 자동차 산업과 자국의 교통 상황과 정책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 EU에서 결정이 난 사안이지만 아직 회원국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한 상황이라 11월까지 각 나라별로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로비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전문 정보 공유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브런치에는 조금 늦게 공유하겠습니다.

https://autowe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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