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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Sep 20. 2024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인증 조작 스캔들에도 당당한 이유

일본 경제의 버팀목임을 서로가 알고 있다. 

올 상반기 일본 자동차 업계는 인증 조작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도요타의 자회사인 DAIHASU를 비롯한 유수의 기업들이 인증 과정에서 만족하는 결과가 나온 자동차에 적용한 변경 사항을 실제 차에는 적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다수의 조작이 드러나면서 도요타 수장을 비롯한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조사를 성실히 받겠다고 발표가 이어졌다. 그러나 얼마 전 도요타 회장은 “일본을 사랑하지만 규제가 너무 심하다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일본을 탈출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인증 조작 스캔들에도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는 현재 일본의 경제 상황과 연관이 있다.  



다들 인지하고 있지만 올해 들어 일본 엔화의 환율이 역대급으로 낮다. 올해 상반기에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 한국인의 수가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올해 내로 1000만 명이 방문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쉽게 생각해서 원화에서 0을 하나 빼면 된다고 계산했던 엔화의 가치는 100엔이 900원이었던 시절을 지나서 870원 주변을 맴돌고 있다. 갑자기 15% 이상 물가가 저렴해진 셈이니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이런 엔저의 배경에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내오면서 인플레이션 압박이 심해지자 경기 부양을 위해 제로금리를 유지해 왔던 미국은 금리를 꾸준히 인상해 왔다. 경기가 위축되더라도 더 이상 물가 상승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위기가 다가올 수 있다고 판단한 미국연방준비위원회는 2023년 말까지 5.5%까지 기준 금리를 올렸다. 대표적인 국제 통화인 달러의 공급원인 미국의 금리가 오르자 우리나라,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금리 차가 너무 커지기 않게 하기 위해 가계 부채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따라 올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국에 들어와 있던 외국 자본들이 더 높은 금리를 주는 미국으로 급격히 빠져나가 환율을 방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돈을 빌리면 이자를 내는 것이라 아니라 오히려 돈을 더 주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일본에 엔화로 투자했던 자본들이 더 많은 금리를 주는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엔으로 달러를 사는 상황이 늘어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엔화의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올해 5월 들어서 조금 올려 제로 금리에 맞추었지만, 여전히 미일 간 기준 금리차는 5%를 넘게 유지되고 있다. 


이런 정책이 시작된 것은 2012년 아베 정부부터였다. 80년대 말 부동산 거품 경제가 무너지면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 경기 침체 – 디플레이션이 지속되자 아베 정부는 마이너스 금리로 정부가 책임지고 돈을 찍어낼 테니 투자와 소비가 활성화되기를 유도했다. 특이한 점은 일본은 국가가 발행한 국채를 일본 중앙은행이 대부분 사들였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국채를 시장에 풀지 않고 정부가 다시 사들이게 되면 국가 신용도가 하락하고 환율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은 대외 자산이 400조 엔에 달하고, 매년 받는 대외 투자 이익도 20조 엔이 있는 순채권 국가이기 때문에 이런 무모한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다들 제로 금리로 호황을 누릴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23년 들어 코로나가 종식되고 미국이 기준 금리를 올리면서 미간 금리차가 커지면서 여러 부작용이 드러났다. 환율이 급락하고 엔 가치는 떨어지고 수입 물가가 급등하고 있지만 금리를 함부로 올릴 수도 없다. 그동안 사들인 일본 정부의 국채 이자가 금리를 올리면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국채 이자만 일본 한해 예산의 25%에 달할 정도다. 지난 10여 년간 경기 부양을 위해서 일본 정부가 감당했던 빚이 이제는 전 세계 금리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단 하나 낮아진 엔화 가치를 활용해서 수출을 늘려 경제를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환율이 낮아지면, 그만큼 수출품의 가격을 낮출 수 있다. 대표적인 수출품인 자동차 산업이 분발해서 대외 수출을 늘리면 경기가 좋아지고, 늘어난 수출량만큼 임금도 늘어나고 벌어들이는 외화로 환율도 안정적으로 방어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실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횡보는 이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최신 트렌드인 전동화는 테슬라나 중국, 우리나라 현대차에 비해서도 늦다. 하이브리드로 판매량을 그나마 보전하고 있지만, 현지 생산 차량의 수요는 있어도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수요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거기에 일본 코로나로 위축된 경기가 회복되는 속도도 늦어져서 자동차 내수는 2023년에도 2019년 대비 90% 수준에 머물렀고, 자동차 수출량도 성장세에 있는 중국에 추월당했다. 거기에 올해는 신뢰도에 영향을 주는 인증 조작 스캔들까지 터졌다. 폭스바겐이 디젤 게이트로 받았던 영향을 생각하면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이미지에는 좋을 것이 없다. 




이런 상황이니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아무리 인증 조작 문제가 불거져도 자동차 회사들을 크게 압박할 수가 없다. 정부의 빚 때문에 금리차를 유지해야 하고, 그래서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수출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외 신뢰도를 위해 조작에 대해서는 엄중히 조사해야겠지만 다른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기는 어렵다. 정부도 기업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과연 일본 정부가 바라는 대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분발해서 엔저 현상이 완화될 수 있을까? 국제무대에서 일본과 늘 경쟁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이런 상황이 반갑지만은 않다. 당분간은 지속될 엔저 상황을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지 정부와 기업 간의 긴밀한 협조와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자동차 전문 뉴스 매체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내용을 조금 늦게 브런치에 공유합니다. 7월 이후 미국은 금리를 낮추고 일본은 오히려 올리면서 갭은 줄었지만 여전히 차이가 크네요. 앞으로 각 나라들마다 어떤 금리 정책들을 펼칠 건지 주의깊게 지켜 봅시다. 

https://autowe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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