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경제적 이익을 일치시켜야 변화는 시작된다.
기후 변화가 피부로 와닿는 요즘이다. 심각 해져 가는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지금 바로 무언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자동차 업계에서 탄소 중립화와 관련된 내용이라면 배기가스 연비 규제가 주를 이루었다. 물론 운송 과정에서 나오는 CO2도 개선해야 하겠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전기차 보급 속도가 늦어지면서 모든 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사실 전기차 자체가 친환경적인지에 대해서도 더 따져 봐야 한다. 차라는 것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환경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를 한다. 그리고 쓰고 남은 물건들을 버리면 자연스레 쓰레기가 된다. 80억 인구가 먹고 입고 즐기는 모든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이즈가 큰 소비재인 자동차는 쓰레기 중에서도 골치가 아픈 녀석이다. 일단 휘발유 경유 오일과 같은 유기 물질을 다루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폐기하게 되면 직접적으로 환경이 오염된다. 유해 물질이 아니더라도 크기가 크니 환경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재활용하는 것이 좋지만, 폐기된 차량에서 중고 부품을 아무런 제재 없이 시장에 유통시키게 되면 차량 안전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자동차의 폐차 및 처리에 대한 법규는 굉장히 엄격하다. 일단 애초에 차량을 만들 때부터 들어가는 재료 중에 유해 물질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각 부품들 마다 구성 물질에 대해서 화학적으로 안전한 지에 대한 정보를 MSDS (Material Safety Data Sheet)라는 문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등록하고 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특히 납이나 황과 같은 인체에 유해한 물질들은 적용 가능한 범위와 양을 법률로 제한된다.
그리고 차가 수명을 다하면, 유해 물질들을 전문 업자들이 제거한 이후에 재활용 가능한 부품들을 수거한다. 그러고 나서는 마치 일요일에 집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종류 별로 분리 수거하듯이 차를 하나씩 분해해서 플라스틱 / 철근 / 유리 등 재질 별로 수거해서 재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 차량을 잘 만드는 일을 제작사의 몫이지만 판매한 이후에는 소비자의 소유물이니 어떻게 버리고 어느 정도로 재활용하는지를 제어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자동차 재활용에 대한 법규는 주로 폐차 및 재활용을 진행하는 업체에 대한 관리에 집중했다. 폐차한 차량이나 그 부품이 검증되지 않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막자는 1차원적인 관리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에 고시된 국내 폐 자동차 재활용 주체 별 책임에 대한 정의를 보면, 제조업자 혹은 수입 업자는 폐 자동차 술을 개발하고 재활용 업자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지원한다는 정도로 역할이 제한되어 있다. 대부분의 위험 물질 회수 / 해체 / 파쇄 및 재활용에 대한 책임은 재활용업자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도록 한다. 영세한 재활용업자들 입장에서는 돈이 되는 물질의 회수 정도에만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비해 환경 보호에 대한 기준이 높은 유럽은 제작사의 의무를 더 강조하고 있다. 제작사는 설계 단계부터 차량을 폐차할 때 Recycle이 가능하도록 설계를 해야 하고 해체 프로세스도 명확히 정의해 두어야 한다. 판매를 위해 인증을 받을 때도 재활용 재사용 가능한 비율이 최소 95%가 되는지를 증빙해야 한다. 한 마디로 재활용할 수 있게 만들지 않으면 차를 팔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만든 차량을 유럽에 수출할 때도 이 재활용 비율을 증명하고 인증받는 작업이 가장 어려운 숙제였던 기억이 있다.
이런 재활용을 위한 노력들은 단순히 연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TTW, Tank to Wheel로 개선되는 탄소 저감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전기차의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지만, 만약 전기를 화석 연료를 이용해서 생산한다고 하면 도심 내 오염 밀도는 줄일 수 있어도 글로벌한 탄소 중립화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WTT, Well to Tank라 하여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일 수 있는 바이오 연료나 친환경 발전의 비중을 늘리는 노력들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런 변화는 전기차 제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친환경차라고 알려져 있고 그래서 적극적으로 판매를 촉진하는 정책들이 펼쳐지고 있지만, 실제로 전기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CO2의 양이 만만치 않다. 미국 골드만삭스의 2019 년 12 월 보고서에 따르면 배터리 전기차 생산 시 CO2 배출량은 가솔린 차의 2 배라고 한다. 주요한 원인은 배터리인데, 희토류를 중심으로 한 전극 재료의 생산과 셀 제조/알루미늄 제련에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전기차가 진짜 친환경적인 차량으로 거듭나려면 이렇듯 Life Cycle 단계 모두에서 발생하는 CO2 양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배터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CO2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배터리 자체의 재활용 비율을 높이고 제도 과정에서 CO2가 많이 드는 성분에 일정 비율 이상은 반드시 재활용한 원재료를 사용하도록 하는 규제가 이미 유럽에서는 정해 졌다. 2024년 까지는 배터리 재활용률이 65%를 넘겨야 하고, 코발트나 리튬 니켈 같은 원재료들 중 10% 이상을 재활용한 원재료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야말로 생산 과정에서부터 재활용을 염두에 두어야만 차를 팔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규제들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단순히 연비를 개선하고 배기가스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차를 만들고 판매하고 다시 재활용하는 모든 단계를 제대로 책임지는 회사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 보조금처럼 재활용 비율이 높은 차량에 세제 혜택 같은 걸 주는 건 어떨까요? 무조건적인 규제보다 미래를 위한 자연스러운 변화를 이끌어 내는 넛지 있는 정책들이 많이 생겨서 생산자도 소비자도 공동의 목표를 위해 윈윈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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