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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2024년, 자동차 산업을 돌아보며

경기 침체로 높아진 무역 장벽과 도전들을 이겨내 온 모두에게 박수를

by 이정원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어느새 저물어 간다. 의료대란부터 40년 만의 계엄에 탄핵까지 우리나라는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닉네임에 걸맞은 격동의 한 해를 보냈다. 그에 못지않게 전 세계 자동차 산업도 어려움 속에 새로운 기회들을 찾아가는 움직임들로 전 세계가 들썩들썩했다.


미국의 고금리가 부른 글로벌 경기 침체


사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2023년부터 시작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계속되면서 중국, 러시아와 미국의 골은 더욱더 깊어졌다. 정치에서 벌어진 간격은 경제로도 이어서 관세 장벽은 높아지고 부품 공급망에서 중국산을 배제하려는 규제는 날로 늘어났다. 갑작스럽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을 미국은 견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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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디커플링으로 원가를 낮추기 위하 원동력을 찾기 어려워진 미국은 오르는 물가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과도한 인플레이션으로 실질 임금이 줄어드는 걸 막기 위해서 미국 연준은 코로나 시대의 제로 금리를 보상하는 고금리 카드를 꺼냈다. 2022년에 0.25%였던 미국 기준 금리는 2023년에 5.5%까지 올랐다. 2024년 말이 되어서야 4.5% 까지 내렸지만, 여전히 미국 금리는 4% 후반 대의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패권 국가인 미국이 금리를 올리자, 다른 나라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금리차가 나면 자국에 투자한 자본들이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국의 고금리는 미국 주식 시장으로 돈이 몰리는 효과를 가져왔고 달러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외국 자본의 탈출은 가속화되었다. 이런 자본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 우리나라와 유럽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금리를 올려야 했고 그러면 시장에 풀리는 돈줄이 막힐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 동안 불경기가 오면 마법의 지팡이처럼 돈을 찍어서 부양했던 정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높아진 지역 주의


경기가 나빠지면서 자동차 판매의 수요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유럽 전체 시장은 작년 대비 2% 내외 늘어난 것으로 나왔지만, 허수인 러시아를 뺀 서부 유럽 시장은 차갑게 식었다. 유럽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비싼 사치재인 전기차의 판매는 10% 남짓 줄었고 전기차 호황을 기대하면서 투자를 늘려 나간 배터리 회사들은 공장 가동률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유럽을 기반으로 한 그나마 성장하던 스웨덴 배터리회사 노스볼트는 준-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는 중국은 과잉 생산된 부동산 버블을 그냥 덮어 두고 있다. 중국 자동차 회사들은 정부의 엄청난 보조금을 기반으로 세상에 없는 저렴함 전기차를 생산해 냈지만, 이는 중국에 진출했던 해외 기업들의 퇴출을 불러왔다. GM은 7조 원의 손해를 상각 하기로 했고, 폭스바겐은 구조조정으로 독일 내 공장 3군데를 문을 닫겠다고 하다가 얼마 전에야 노조와 겨우 합의했지만 여전히 2%대 낮은 수익률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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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전기차가 다른 지역의 생산 모델과는 차원이 다른 가성비를 보여 주면서 수출 활로를 찾았다. 그러나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무역 장벽, 특히 전기차 배터리와 전기차 자체에 대한 관세 장벽은 30~40% 넘게 책정되었다. 팔릴 곳이 없어진 중국산 전기차는 내수에서만 소화됐고, 전기차 보급 계획을 달성하지 못한 나라들은 CO2 규제를 완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일단 살고 봐야 하겠다는 아우성이 전 세계 자동차 산업 전반에 울리고 있다.


변해야 살아남는다.


전기차 판매가 주춤하는 사이에 전기차 판매 순위 1-2위인 BYD와 테슬라는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BYD는 전기차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들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흡수했다. 전기차 플랫폼을 기반으로 엔진을 배터리 충전용으로 쓰는 EREV 형태의 새로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과도 맞물려 BYD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중국 내에서의 친환경차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더 대세가 되었다.


반면 테슬라는 차를 더 팔겠다는 의지보다 다음 단계를 준비 중이다. 전년도 대비 판매량은 줄었고, 자동차 개발 인력은 오히려 줄였다. 그러나 에너지, 서비스 영역 매출은 배이상 늘었다. 로보 데이를 열고 로보 택시와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보이고, 자율주행, 로봇 개발 인력은 대규모로 영입했다. 자동차 회사를 벗어나서 그 이상을 보는 일론 머스크의 꿈은 지지하던 트럼프의 당선으로 더 힘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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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가 자동차에서 로봇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면, 전자제품 회사들은 자동차를 기웃기웃하기 시작했다. 연초에 애플은 자동차 산업 개발을 중단한다고 선언했지만, 대륙의 실수라 불리던 샤오미가 먼저 선수를 쳤다. CATL, BAIC와 함께 합작회사로 SU7이라는 전기차를 출시해서 올 한 해만 13만 대 판매를 목표로 달리고 있다. 비록 지분은 5% 밖에 되지 않지만 어쨌든 브랜드와 SW는 XIAOMI다. 내년에 두 번째 공장이 완공되고 나면 35만 대 수준의 양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연말에는 대표적인 전자제품 OEM인 FOXCONN이 Nissan 지분을 인수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기업 가치가 낮아진 Nissan의 지분을 얻어서 SONY나 Apple 등 전자 회사들의 자동차를 전자제품처럼 만들어 팔 수도 있다. 화득짝 놀란 일본 정부가 닛산-혼다-미쓰비시의 합작 회사를 건립하도록 하면서 경영권 방어에 나섰지만 Foxconn은 중국 내 배터리 공장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자동차 시장으로 나서고 있다. 그만큼 전기차를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으로 진입하는 문턱이 더 낮아지고 경쟁은 더 격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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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2024년은 자동차 산업 관점에서 경기 침체 대응을 위한 구조 조정, 지역에 기반한 신냉전주의, 그리고 자동차의 전자제품화가 본격화된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한국 자동차 산업은 그래도 전 세계에 기반을 분산 투자해 가며 다른 국가들에 비해 꾸준한 성장을 이루어 왔다. 지난 9월에는 현대기아차가 누적 생산 대수가 1억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다가오는 새해,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강대국들의 견제는 더욱 노골화될 것이다. 그 사이에서 이익이 되는 영역을 찾으려면 기초 기술 체력은 키우고, 투자는 효율적으로 하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본격적으로 한국 진출을 선언하고 있는 중국 전기차와의 경쟁과 함께 높아진 장벽을 뚫고 현지화를 통한 시장 개척, 그리고 새로운 하이브리드 및 SDV 기반 기술력 재고까지 편안한 연말을 보내기에는 기다리고 있는 숙제가 너무 많다. 그러나 어쩌랴? 진짜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어지러운 정치가 아니라 지금도 애쓰고 있는 여러분인 것을… 그 모든 고민과 수고들에 진심으로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급격한 변화들 사이에 아우토바인의 브리핑들이 등대처럼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올 한 해와 제가 함께 해 왔던 아우토바인이라는 자동차 뉴스 매체에 연말 기고한 글입니다. 보통은 기고 후 2달 뒤에 공유하는데 이번 글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내용이라 말일에 올려 봅니다. 퇴사 후에도 늘 산업의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었던 건 아우토바인과의 인연 덕분이었습니다. 204편의 기사 브리핑을 보내고, 29번의 기고를 하면서 말로 내 보내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채울 수 있었습니다.


https://autowein.com/


그리고 늘 경청해 주시는 작가님들 덕분에 제 고민을 담아 의견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복입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그런 힘이 되어 드리는 새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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