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같이 잘하는 걸 하며 잘 살아 보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영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유 무역을 주장했다. 스미스가 살던 시대에는 각국 정부들은 수출은 많을수록 좋고 수입은 적을수록 좋다고 해서 수입 물품에 많은 관세를 물렸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그렇게 장벽을 높이면 보복 관세를 부르기 때문에 결국에는 서로에게 전혀 유익하지 않다고 봤다. 이런 주장은 뒤를 이은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 우위론으로 더 견고 해졌다.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제품을 생산해서 서로 교환하면 그건 양국 모두에게 유리하다는 이론처럼 확실히 자유무역이 경제의 활성화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실제 세계사에서 무역은 늘 강대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힘의 논리로 진행되었다. 먼저 산업화를 이룬 국가들은 자유 무역이라는 명목으로 시장을 개방시켜 자국의 물건은 팔고 원자재는 싸게 쓸어 갔다. 1900년대 후반에 자유 무역을 이끌었던 미국과 영국도 한 때는 유럽 본토의 국가들을 견제하기 위해 5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자유 무역 주의가 대세가 된 것도 WTO 체제가 자리 잡고 FTA가 대세가 된 1990년대 이후였다.
그 시기에 인류는 미국과 중국이 찍어 대는 돈으로 호황을 누렸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 같이 주춤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제로 금리에 가까운 낮은 금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빌려서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암호화폐든 어디든 투자해야 바보가 되지 않았다. 실제 물건을 만들어서 사고파는 실물 경제보다 투자 수익이 더 이익률이 높아지면서 여기저기서 잔치가 벌어졌다. 자본주의가 가져다 둔 풍요는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이런 시스템이 그나마 20여 년 가까이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 2000년대부터 시장을 개방하고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은 중국이 싼 노동력으로 저렴한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온 덕분에 서방의 다른 나라들은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도 물가의 상승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실질 소득이 보장되면서 왕성해진 소비력으로 원자재를 파는 중남미도, 공장 설비를 잘 만드는 일본도, 반도체 같은 주요 부품을 잘 만드는 한국도, 그런 부품을 조립해서 값싼 제품을 잘 만드는 중국도 그리고 그 물건을 사서 쓰는 미국도 모두 다 같이 잘 사는, 이른바 “커플링”이 전 세계 호황을 이끌었었다.
그러나, 꽃도 피면 지는 법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호황의 연대는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고 미국이 이를 견제하면서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중국에 대한 징벌적 관세를 매기기 시작하고 중국의 성장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제제가 시작됐다. 2020년에 터진 팬데믹 사태는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결국 위기 상황에서는 스스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했다. 자국 내 제조업 기반을 다시 돌게하고 코로나로 멈춘 경제를 살리려고 국가들은 금리를 더 낮추고 각종 보조금으로 돈을 풀었지만, 멈춰 선 실물 경제에 풀린 돈은 금융 소득 비중이 높은 부유층에만 더 많이 몰렸다. 빈부 격차는 커지고, 어려운 나라들은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막힌 경제 활동은 2022년에 팬데믹이 막을 내리면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상황은 그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사람들이 덜 움직이고 덜 모이고 덜 먹으면서 자영업은 흔들리고 경기는 급격히 나빠졌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체득한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나섰고, 재택근무의 확장은 도심 사무실의 공실로 이어지면서 부동산 거품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국가가 대놓고 돈을 찍어 내던 두 경제 대국도 노선을 바꿨다. 인플레이션 위험을 감지한 미연준은 금리를 5%까지 올리면서 일단 물가를 잡겠다고 나섰다. 공항이나 대교, 아파트 건설 등 부동산으로 성장률을 억지로 끌어올리던 중국도 지방정부의 빚이 한계 상황에 다다르자 주머니를 추스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빚을 내서 성장을 꿈꾸는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추진력을 잃은 세계 경제에서 이제 2~3% 대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인도 같은 후진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큰 형님들이 돈줄을 조이고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자, 각 나라들도 자국의 산업을 먼저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을 내놓고 있다. 제일 쉬운 것은 자기 나라가 취약한 산업 부분의 장벽을 높이는 것이다. 자동차 시장에서 혼자만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의 전기차 시장을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LFP 배터리 기술과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중국 전기차는 가격 경쟁력 면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있다. 국제 에너지 협회 IEA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중국만이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보다 더 저렴한 모양새를 보인다. 그런 차가 아무런 장벽 없이 그대로 들어오면 시장의 상당 부분을 빼앗기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애초에 중국에 대해 적대심을 대놓고 드러낸 미국은 말할 것도 없이 캐나다, 터키, 브라질 등 많은 나라에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정책을 내놓았다. 거기에 올해는 CO2규제를 만족하기 위해 전기차 보급에 적극적이었던 유럽조차 중국 정부의 불법적인 보조금을 핑계 삼아 7%에서 38% 달하는 징벌적 관세를 기존 10% 관세에 더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미국처럼 중국산 자동차의 진출을 막지는 않았다. 유럽 입장에서는 경제성장에 필요한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세라는 장벽을 세우고 수입을 제한하면 시장을 원하는 기업은 직접 투자를 기대한 유럽의 전략이 일단은 효과가 있어 보였다. 지리 그룹에 속한 볼보는 벨기에 공장을 전기차 공장으로 전환한다고 하고 BYD와 GAC 등 다양한 중국 기업들이 유럽에 직접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해당 국가들도 지원을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일단 회원국들 간의 입장이 다들 달랐다. 중국은 주로 정부의 지원이 많은 스페인이나 지정학적으로 부품 수급이 쉬운 동유럽에 진출을 집중하고자 했다. 새로운 시장을 찾고자 하는 중국도, 투자를 받아 경제 성장에 보탬이 되는 국가들은 해피하지만, 유럽 안이라 견제도 하지 못하고 당해야 하는 기존의 자동차 강국들에게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이탈리아 정부와 Stallentis는 지원금 분쟁에 시달리고 있고, 폭스바겐은 독일 내 3개 공장의 폐쇄를 논의하고 있다.
거기에 중국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고단수로 유럽 연합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다. 어설프게 보복 관세나 중국에 진출한 유럽 기업들에게 억지로 압박을 주어서 안 그래도 힘든 경영 상황에서 사업 자체를 포기하게 하는 대신에 관세 도입을 찬성한 10개국에 투자하려는 중국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 본토에 영향은 줄이면서도 유럽의 아픈 지점을 제대로 짚은 셈이다. 자국 기업에 대한 지원과 규제를 손에 쥐고 있는 중국 정부의 압박에 자유로울 수 있는 중국 회사는 거의 없다.
이번 징벌적 관세 조치에 대해서 유럽 27개국들 중에 찬성하는 국가는 10개국에 불과하다. 중국 자동차 회사나 배터리 회사가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폴란드나 불가리아 같은 동유럽 국가들은 찬성을 함으로써 중국 기업들의 진출이 더 촉진될 것으로 기대했겠지만, 중국은 협조해야 지원한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 간의 대우에 차별을 두면 유럽 연합과 같은 여러 국가들의 연합체는 쉽게 분열시킬 수 있다. 자국의 이익과 여론에 따라서 얼마든지 의사는 번복될 수 있고 그러면 하나의 유럽이라는 EU의 슬로건이 무색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중국의 전기차 관세를 계기로 각국은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편 가르기에 나섰다. 높아지는 물가와 고립된 시장 사이에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지속되었던 자본주의와 자유 무역주의가 가져왔던 풍요의 시대가 끝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립된 러시아,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미국과 척을 지게 된 많은 나라들을 중국이 우회해서 지원하고 있다고, 외국 기업들이 빠져나간 러시아 자동차시장에 많은 중국 회사들이 진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총은 들지 않았지만 더 냉혹한 경제 냉전 시대가 도래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경제력이 무기가 되는 시대에 지정학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큰 고래들 사이에 껴 있는 우리나라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신중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자동차 전문 뉴미디어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새해에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