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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배터리로 시작된 신무역냉전시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전기차 배터리 사업부터 관세 전쟁이 시작됐다.

by 이정원

1990년 이후 WTO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인류는 미국과 중국이 찍어 대는 돈으로 호황을 누렸다. 제로 금리에 가까운 낮은 금리로 투자가 대세가 되었고 2000년대부터 시장을 개방하고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은 중국이 싼 노동력으로 저렴한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온 덕분에 서방의 다른 나라들은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도 물가의 상승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었다. 이른바 커플링으로 원자재를 파는 중남미도, 공장 설비를 잘 만드는 일본도, 반도체 같은 주요 부품을 잘 만드는 한국도, 그런 부품을 조립해서 값싼 제품을 잘 만드는 중국도 그리고 그 물건을 사서 쓰는 미국도 모두 다 같이 잘 사는 호황을 이끌었었다.


20220314182908_1728066_1200_956.jpg 2012년에 시작한 한미 FTA - 무역량은 이전보다 많이 증가했다.


그러나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고 미국이 이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2020년에 터진 팬데믹 사태가 벌어지면서 코로나로 멈춘 경제를 살리려고 각종 보조금으로 돈을 풀렸고 그 거품은 인플레이션 위협으로 돌아왔다. 미국부터 금리를 높여 돈줄을 조이고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자, 각 나라들도 자국의 산업을 먼저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을 내놓고 있다.


관세2.jpg 중국 전기차와 배터리를 견제하는 유럽


제일 쉬운 것은 자기 나라가 취약한 산업 부분의 장벽을 높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이 선도하고 있는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이다. 애초에 중국에 대해 적대심을 대놓고 드러낸 미국은 말할 것도 없이 캐나다, 터키, 브라질 등 많은 나라에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정책을 내놓았다. 2024년 말에는 유럽도 동참해서 기존 10% 관세에 38%에 달하는 징벌적 관세를 더하기로 했다.


폭스바겐 노조 시위.jpg 폭스바겐 공장 폐쇄에 반대하는 노조원들


2025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무역 경쟁의 벽은 더 높아졌다. 서로에게 관세를 부과하는 사이에 수출은 위축되고 물가는 오르고 있다. 줄어든 생산량에 공장 가동률은 떨어지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 오던 독일 조차도 폭스바겐의 독일 내 3개 공장의 폐쇄를 논의하고 있다.


트럼프.jpg 상호 관세 발효하는 법안에 사인하는 트럼프 대통령 - 그가 원하는 최종 모습은?


이렇듯 중국의 전기차 관세를 계기로 각국은 경제에서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편 가르기에 나섰다. 높아지는 물가와 고립된 시장 사이에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지속되었던 자본주의와 자유 무역주의가 가져왔던 풍요의 시대가 끝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자 외국 기업들이 빠져나간 러시아 자동차시장에 많은 중국 회사들이 진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총은 들지 않았지만 더 냉혹한 경제 냉전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경제력이 무기가 되는 시대에 지정학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큰 고래들 사이에 껴 있는 우리나라가 생존을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신중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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