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잘하는 분야에서 힘을 모을 줄 알면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자동차 산업은 그동안 진입 장벽이 꽤 높았다. 우리나라의 최고 기업인 삼성 그룹도 차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하는 이건희 회장의 염원으로 삼성자동차를 출범했지만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외환 위기를 겪으며 해외에 매각된 바 있다. 3천만 원이 넘는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는 큰 공장과 수많은 인력들이 필요하다. 거기에 2만여 개의 부품을 모아서 조립하는 공급망 관리도 어렵고, 무엇보다도 배기 규제를 만족하면서도 성능을 확보해야 하는 엔진 제어 기술은 수십 년 간의 노하우가 필요했다.
그러나 자동차의 전동화가 시작되면서 이런 진입 장벽들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배터리와 모터는 원래 전자 회사들이 더 잘하는 분야였다. 거기에 자동차 들어가는 각종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IT 기업들도 자동차를 만들어 보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곤 했다.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은 자율 주행 기능이 가미된 I-CAR를 오랫동안 기획했었고,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회사 SONY는 혼다와 합작회사를 만들고 AFEELA1이라는 차량을 CES2025에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차를 대량 생산한 기업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나타나 기존 자동차 회사들을 위협하는 새로운 강자가 있다. 바로 샤오미다.
샤오미가 처음으로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약 10여 년 전의 일이다. 명품 가전 브랜드 발뮤다의 디자인을 그대로 카피하면서 가격은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공기 청정기를 만드는 회사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게 된 샤오미의 공기 청정기로 중국에서 바로 구입하는 직구가 유행하기도 했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고급 브랜드와 비슷한 성능과 디자인 만족도를 준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바로 '대륙의 실수'였다.
그렇게 가성비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샤오미는 전자제품 및 생활용품 전반에서 일반 된 디자인 콘셉트로 성장을 거듭했다. 우리에게 유명한 보조배터리, 무선 이어폰, 스마트 워치뿐 아니라 텔레비전, 카메라, 로봇 청소기 같은 가전부터 가방, 옷, 신발, 가구까지 어디서 본 것 같은 세련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으로 중국 시장을 너머 전 세계로 매장을 넓혀 나갔다. 특히 스마트폰은 전 세계 시장의 13%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중국인들에게는 친숙한 IT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에도 공식 매장이 2025년 6월 여의도에 오픈하기도 했다.
성공한 전자 회사인 샤오미가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은 2021년이었다. 스마트폰 제조에서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기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이것저것 다 만드는 샤오미가 이번에는 또 어떤 자동차 회사를 모방해서 비슷하게 내놓겠거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나 8년을 기획했지만 결국에는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프로젝트 중단을 선언한 애플과는 달리 샤오미는 2024년 12월에 첫 번째 전기차 모델 SU7을 공개하고 본격적으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공개된 샤오미의 첫 모델 SU7은 예상보다 훨씬 더 고성능이었다. 100 kWh가 넘는 배터리로 한번 충전하면 800km를 넘게 갈 수 있다. 듀얼 모터를 적용하면 정지 상태에서 100k/h까지 가속하는데 2.78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만한 힘을 감당할 수 있는 고성능 브레이크에 차체도 속도와 출력에 따라서 설정이 달라지는 고급 사양까지 웬만한 최고급 전기차 모델에 들어가는 사양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테슬라 모델 Y를 타깃으로 했다지만 외관은 포르셰 타이칸을 더 많이 닮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가격이다. 이런 모든 사양이 포함된 최고급 사양의 가격이 30만 위안, 우리 돈으로 5천7백만 원의 가격에 나왔다. 보조금을 받으면 5천만 원 대면 구매가 가능하다. 기본형은 MAX 버전에 비하면 주행거리도 668km로 줄고 출력도 절반이지만, 22만 위안으로 3천8백만 원의 가격으로 압도적인 가성비를 보여 준다. 보조금을 감안하면 3천만 원에 포르셰와 비슷한 최신 전기차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자인과 성능은 모방하고 최대한 저렴하게 시장을 공략한다는 샤오미의 철학은 전기차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2024년에 오픈 행사 때부터 시작된 온라인 예약 판매에서는 27분 만에 5만 대가 계약되었다고 한다. 이런 기세는 실제 판매에도 그대로 이어져서 2024년 4월부터 첫 고객 인도를 시작해서 2024년 한 해에만 136,854 대를 판매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전체 샤오미 매출의 8%를 단번에 얻은 큰 성공이었다.
자동차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샤오미가 이런 성공을 얻을 수 있었던 건 파트너들과의 유기적인 협업 덕분이다. 샤오미의 전기차 회사는 브랜드의 주인은 샤오미지만 실제 지분은 5% 밖에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제공하는 CATL이 51%를 차지하고, 차를 직접 생산하는 베이징 모터스 - BAIC가 39%를 차지하고 있다. 이름은 샤오미지만 실제는 중국의 배터리 회사와 자동차 회사와의 합작 회사가 만든 전기차인 셈이다.
흔히들 합작회사라고 하면 지분에 따라서 각자의 성향을 반영하려 하다가 목표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CES 2025에 공개된 일본의 소니 혼다 모빌리티의 AFEELA1만 해도, 소니와 혼다가 반반 지분을 내고 의욕차게 출발했지만 나온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27년에나 출시될 예정인 차량의 주행거리는 현재의 모델들 수준이었고, 차에는 지나치게 많은 멀티미디어 화면들로 어지러웠다. 두서없는 차의 가격이 1억 원이 넘으니 시장에서 성공을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에 비해 샤오미의 SU7은 테슬라 모델 Y의 가성비 대안이라는 목표가 명확했다. CATL의 저가형 배터리 기술과 베이징 모터스의 생산기술은 가성비 고성능 전기차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거기에 샤오미의 IT기술도 결합하고 지분은 작아도 브랜드 오너로서 상품 기획에 전권을 위임한 경영 방침은 각 파트너들이 좋은 상품을 만드는데 지분에 맞게 기여를 하는 환경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샤오미는 세단에 이은 SUV 버전인 YU7도 공개했다. 그리고 제3 공장을 짓고 2025년에는 연 30만 대를 판매하는 회사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테슬라가 모델 S를 2012년 출시하고 두 번째 모델인 모델 3을 출시하고 20만 대를 넘어 흑자로 돌아서기까지 6년의 시간이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빠른 속도다. 배터리도 CATL에만 의존하지 않고 BYD로부터도 공급받으면서 전기차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공급망의 유연성도 꾸준히 확보하고 있다.
국가 산업의 근간은 제조업이다. 자동차에서 전기차로 그리고 최근에는 피지컬 AI로, 여기저기서 새로운 제조업 먹거리를 찾는 시도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남들이 잘하고 있는 새로운 흐름이 보이고, 거기서 새로운 사업의 기회가 보이면 많은 기업들은 한번 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도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느 사업이든 기존의 회사들과 경쟁에서 우위를 보여 줄 수 있는 압도적인 제품을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다. 큰 회사지만 몸을 낮추고 능력 있는 파트너들과 각자 잘하는 것을 활용해서 확실한 타깃이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을 샤오미의 성공을 보면 알 수 있다. 적어도 전기차에 대해서는 이제는 대륙의 실수라는 별명은 샤오미에게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