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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는 CATL

자존심을 버리고 열심히 배우고 쫓아가야 한다.

by 이정원

2022년 2차 전지 시장의 붐이 크게 불었을 때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던 인터배터리 행사는 밝은 한국 배터리의 미래를 보여 주는 축제 같았다. 한껏 올라간 주가에 메인 부스를 차지한 한국 배터리 3사는 미래 배터리 개발에 대한 비전을 드러냈고, 그 옆에는 신규로 지을 배터리 공장에 납품을 원하는 수많은 장비 회사들과 우리나라에 와서 공장을 지어 달라고 세일즈를 하는 각국 정부 관계자들의 부스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그 후 거짓말 같이 전기차 시장은 위축되고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은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미 자동차 회사로 변모한 BYD와 함께 40%가 넘는 시장 점유율로 산업 자체를 독점하고 있는 회사가 바로 CATL (Contemporary Amperex Technology Co., Limited)이다.


battery market share history.jpg 2020년 이후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 CATL이 압도적인 1등이다.


2011년 ATL이라는 전지 회사의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길을 걷게 된 CATL은 전기차 및 ESS에 사용되는 리튬 이온 배터리 개발과 생산에 주력해 왔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기존 내연기관 차량을 전기차로 변환하면서 복잡한 형태로도 만들기 수월한 파우치 형태에 에너지 밀도가 높여 주행 거리를 확보하는 NCM 배터리에 집중한 반면, CATL은 중국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에너지 밀도는 낮아도 저렴한 LFP 배터리 기술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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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L의 대표적인 각형 배터리 . 최근에는 긴 블레이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LFP 배터리는 NCM 배터리에 비해 에너지 밀도는 20% 정도 부족하지만 발열량도 적고 안정적이다. 가격도 비싼 양극재를 사용하지 않아 30% 이상 저렴하기 때문에 중국 시장이 필요한 저가형 전기차를 만드는데 유리하다. 부족한 주행 거리를 보완하기 위해 CATL은 같은 부피에 최대한 많은 양의 셀을 넣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파우치형과는 달리 스스로 단단한 틀을 가진 각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생산하게 된다.


다양한 형태로 구성할 수 있지만 구조를 유지하고 냉각을 시키기 위해서는 별도의 모듈이 필요한 파우치형 배터리와는 달리, 각형 배터리는 그 자체로 형태 유지가 가능하다. 발열양도 적기 때문에 냉각에 필요한 구조물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LFP 배터리의 유일한 약점이었던 한번 충전해서 갈 수 있는 주행 거리가 부족한 단점을 CATL은 모듈을 생략하는 Cell to Pack 기술을 통해 극복했다. 각 개별 셀은 밀도가 떨어지지만 대신에 같은 부피에 더 많은 셀을 넣을 수 있게 되면서 가격도 저렴하고 성능도 보장되는 가성비 배터리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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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FP 배터리의 단점을 극복하는 Cell to Pack 기술. 모듈을 생략해서 공간 효율을 확보한다.


이런 CATL의 기술력은 시장에서 빠르게 인정받았다. 202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 중국 내 전기차 수요 증가와 함께 CATL의 시장 점유율은 급속도로 높아지게 된다. 중국의 유수의 기업들은 저렴하면서도 안정적이고 성능도 보장되는 CATL 배터리를 연이어 자신들의 전기차에 적용했고 이런 수요에 발맞추어 CATL은 중국 내 생산 기지를 빠르게 늘렸다. 2024년 말 기준으로 중국 전역에 걸쳐 11개의 공장에서 330 GWh 가 넘는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해 내는 규모의 경제가 이루었다.


20230522101759_8t81ne32y6.png CATL의 글로벌 네트워크 - 중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에서 품질을 인정받은 CATL의 배터리를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도 자연스럽게 적용하기 시작한다. 현대차도 니로 전기차의 저가 버전에 CATL 배터리를 적용하고, 테슬라도 상하이 기가 팩토리를 건립하면서 저가형 Model 3, Model Y에 CATL의 LFP 배터리를 적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폭스바겐, 닛산, BMW, 메르세데스 벤츠 등 많은 기업들이 CATL의 고객이 되었고 이런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독일과 헝가리에 공장을 건립하며 현지화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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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로 / 테슬라 모델 3에 들어가는 CATL 배터리


CATL이 무서운 것은 이런 시장 점유율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회사들보다 저렴한 배터리를 양산하고 있지만 더 생산 단가를 낮추고 있다. 국내 3사의 NCM 배터리가 1 kWh당 120달러 수준에 머무는 사이에 CATL은 56 달러 수준을 2024년 말에 이미 달성했다. 2024년도 CATL 회계 보고서가 나올 때 일부 언론에서는 CATL의 연 매출이 3,600억 위안 수준으로 전년 대비 10% 정도 감소했다며 위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실제 출고량은 오히려 145 GWh로 22% 증가했다. 그만큼 많은 전기차가 CATL 배터리를 달고 시장에 나왔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제로 배터리를 22%나 더 팔았지만 매출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것은 그만큼 CATL이 배터리 가격을 22% 이상으로 낮추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신 2024년 순이익은 전년 대비 최대 20% 증가한 결과를 보면 배터리 1등 기업인 CATL이 배터리 판매 가격을 20% 이상 낮추면서 저가 전기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이전보다 10% 이상 수익이 날 정도로 원가에 여력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CATL의 반값 배터리 공세는 이미 실현된 목표다.


Battery price_CATL.jpg 리튬 이온 전기차 배터리의 가격 변화 추이와 2024년 CATL의 수준. 반값 배터리를 실제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저가형 배터리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가성비에만 매달려 있지 않다. 40%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로 얻은 수익을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하면서 배터리 성능도 빠르게 개선하고 있다. LFP 배터리뿐 아니라 초고밀도 배터리인 HI-Nickel 배터리로 한번 충전하면 1000km를 가는 배터리 개발에도 성공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나트륨을 양극재로 이용하는 배터리도 2025년 말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거기에 충전에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불편함도 개선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 공개한 초고속 충전 배터리는 5분 충전으로 500km 이상을 갈 수 있는 기능도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1000V에 달하는 높은 전압을 공급해 주는 초급속 충전기를 통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회사들이 15분 정도도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3배나 빠르게 충전이 가능한 시스템을 개발한 것은 CATL이 얼마나 배터리에서 발생하는 열을 잘 관리하고 셀 내부에서 에너지를 저장하는 시스템이 견고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임은 분명하다.


Superfast charging battery.jpg 2025년 테크 데이에 공개된 5분 - 500km 초급속 충전 배터리


이런 압도적인 기술력과 규모를 바탕으로 CATL은 단순한 배터리 회사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샤오미에서 출시하는 새로운 전기차에는 50% 지분으로 참여하면서 전기차 회사에 직접 투자하기도 한다. 그리고 전기차를 만드는데 기술력은 부족한 회사들을 위해 아예 배터리 - 모터 - 새시를 포함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 자체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스케이트 보드 형식의 CIIC 플랫폼은 전기차를 구도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능들이 다 갖추어져 있어 별도의 투자 없이도 쉽게 전기차를 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부품 공급 업체를 뛰어넘어 준자동차 회사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CATL CIIC platform2.jpg CATL이 공개한 CIIC 스케이드 보드 전기차 플랫폼. 위에 차체와 내 외장을 얹으면 누구나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


이런 CATL의 급성장에 위협을 느낀 전통적인 자동차 강국들은 부랴부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에 나섰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방지법으로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을 제한하더니 트럼프 대통령 출범 이후에는 높은 관세 폭탄을 부과하고 아예 미국 내 생산도 불가능하도록 진출을 막고 있다. 유럽도 중국산 전기차들에 대해 정부의 부당한 지원을 핑계 삼아 징벌적 관세를 부과했다. 또 탄소세를 신설해서 중국에서 넘어온 배터리가 운송하는 가운데 유발하는 이산화탄소량을 기준으로 유럽산보다 더 비싼 세금을 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산 배터리의 위세가 높다는 반증이다.


이런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압박은 우리나라 배터리 회사들에게는 호재다. 미국과 유럽이 세운 울타리 안에서 CATL 및 중국 회사들과의 기술 격차를 줄일 시간을 번 셈이다. GM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으로 세운 Ultimium Cell이라는 회사는 미국에 LFP 전기차 배터리를 2027년까지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중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만큼 전기차 배터리를 제대로 만드는 나라도 별로 없다.


CATL FORD F-150 Lightening.jpg 포드 자동차의 대표적인 전기차 F-150 픽업트럭. 2027년부터는 CATL 기술이 적용된 LFP 배터리가 장착될 것이다.


그러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싸고 좋은 물건이 있다면 어디서 생산하든 찾는 회사가 있기 마련이다. 2000년대 이후 쇠락해 가고 있는 경제를 살려야 하는 유럽은 중국산 배터리에 대해서는 경계하면서도 유럽 내 직접 진출은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CATL도 헝가리, 독일 등에 직접 배터리 공장을 세우고 현지화, 글로벌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이라면 반대만 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도 포드 자동차가 CATL 기술라이선스로 짓고 있는 미시간 배터리 공장을 전기차 보조금을 없애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슬쩍 끼워서 허락해 줬다.


경제적 이익 앞에서는 영원한 동료도 적도 없다. CATL은 과거 중국산이라면 복제품에 품질도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에 이미 도달해 있다. 카피만 해오며 저가형 제품을 시장에 겨우 진입했던 우리나라도 기술 개발로 스마트폰 반도체의 강국이 되었듯, 중국도 전기차 배터리 부분에서 우리를 앞지른 지 이미 오래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하면서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아야 한다. 정치적 상황이 마련해 준 기회를 놓치지 말고 결국 시장에서 통하는 것은 기술력과 생산 능력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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