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회사들의 생산기지로서의 한국의 매력

위기를 기회로 살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by 이정원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모든 공산품을 싸게 만들어 내면서 성장해 왔다. “중국산 없이 살아보기”라는 예능이 있었을 정도로 값싼 인건비와 저렴한 원자재값으로 많은 공산품들이 중국에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 12억을 넘는 내수 시장까지 감안하면 생산기지로서 중국은 확실히 매력적인 국가였다.


이런 장점을 활용하기로 한 건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막 개방 경제를 시작한 2000년대부터 잠재적인 소비자를 놓치기 싫었던 자동차 회사들은 너도 나도 중국 진출에 나섰다. 중국 정부의 제재로 무조건 국내 기업과 5:5로 합작 Joint Venture를 구성해야 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중국 시장은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의 각축장이 되었고 그와 동시에 중국 내 자동차 판매 대수와 산업의 성숙도도 급격히 성장했다.


중국 내수 시장 경쟁.jpg 중국 시장에서 외국 기업들의 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 머니 투데이 자료 참조


이런 추세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전기차가 득세하기 시작한 2020년대부터다. 201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여전히 서구 자동차 회사들의 부품을 카피한 저가형 부품으로 흉내내기에 급급했던 수준에 머물렀던 중국 자동차 회사들은 팬데믹을 겪으며 국가가 봉쇄되고 국내에 들어온 외국계 기업들의 활동이 위축되는 시기를 틈타 빠르게 기술 격차를 따라잡았다. 최근에 나오는 중국산 고급 차량들은 전통적인 서구 자동차 회사들의 차와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품질을 자랑한다.


이런 중국 자동차의 저력은 전기차 시대로 가면서 더욱 강력해졌다. 기존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반도체, 인공지능, 태양광과 더불어 전기차를 중점적으로 키우기로 마음먹은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저렴한 배터리를 기반으로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 전기차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2024년에 전 세계에 판매된 1600만 대의 전기차 중 1000만 대가 중국에서 팔렸다. 전체 물량의 3분의 2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시장에서 해외 기업들은 맥을 추지 못했고, 토종 기업인 BYD는 400만 대를 넘게 차를 만들어 파는 전 세계 1위의 전기차 기업으로 발전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던가. 그렇게 질주하던 중국 전기차가 위협적이 될수록 다른 국가들의 견제도 더욱 강화되었다. 중국 자동차가 찍는 영상 데이터가 국가 보안에 문제가 된다고 운영 자체를 금지하기도 하고, 환경 친화적이라는 유럽에서는 먼 거리를 올 수밖에 없는 한계를 핑계 삼아 탄소세를 매기기도 한다. 주력인 LFP 배터리의 낮은 에너지 밀도를 문제 삼아 보조금 기준을 강화하거나 아예 중국산을 제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인천 청라지구 화재 이후에 배터리 정보를 진단 장치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증 조항을 추가하면서 BYD의 진출을 늦춘 바 있다.


대중규제.jpg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장벽은 뭐니 뭐니 해도 관세다. 중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해 미국과 캐나다는 100%의 관세를 부과하며 수입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자국 회사인 Tesla가 상하이 공장에서 만드는 저가 버전 Model 3는 더 이상 미국에서는 판매되지 않는다. 인도도 70%의 관세로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고 있고, 유럽은 기존에는 10% 였지만 중국 정부의 비 정상적인 지원이 지나친 가격 하락을 가져왔다는 명목으로 반덤핑 관세로 회사에 따라 27~45%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했다. 압도적인 가성비를 보이는 중국 전기차를 견제함과 동시에 그렇게 팔고 싶으면 자국 내로 직접 진출하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렇게 수출길이 막혀 성장세가 주춤하는 중국 전기차 회사들은 중국 외부에서 생산하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전기차 생산에는 배터리의 안정적인 공급도 반드시 필요하다. 안정적인 자동차 생산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배터리도 근거리에서 바로 받을 수 있는 국가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그런 조건 때문에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Geely-Volvo 그룹 산하의 Polestar는 최신 Polestar 4 생산 기지로 부산에 있는 르노코리아를 선택했다.


부산공장_폴스타4.jpg 부산공장에서 시범 생산 중인 폴스타 4


결정 당시에는 FTA 덕분에 유럽과 미국 모두에게서 관세 면제도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트럼프 관세로 인해 미국에서는 25% 관세가 붙은 상황이다. 그러나 100%에 달하는 중국산 전기차에 붙는 관세를 감안하면 상대적으로는 여전히 경제성이 충분하다. 생산 시작인 올해 말까지 새로운 배터리를 적용한 차량을 개발할 일정이 빠듯하다 보니 초기 물량은 중국 광저우에서 생산되는 버전과 동일하게 CATL에서 생산하는 NCM 배터리를 공급받기로 했지만, 배터리를 국산화하기에도 한국은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SK온과 Geely 자동차가 각형 LFP 배터리 개발 협의를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만드는 배터리는 한국에서 만드는 자동차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Polestar 4가 성공적으로 한국산 배터리로 한국에서 생산하는 형태가 만들어지면 같은 SEA 플랫폼을 공유하는 Geely의 다른 브랜드들, 특히 한국 진출을 선언한 Zeekr의 전기차 생산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이미 각형 LFP 배터리로 구성된 플랫폼이 존재하는 만큼 큰 변화 없이 개발비를 아끼면서 부산 공장 버전이 생산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지커_7X.jpg 한국에 딜러 계약을 마치고 곧 출시 예정인 지커의 7X 모델


이런 사업은 관련된 모든 회사들에게 모두 이득이다. 갈수록 Renault 본사의 물량이 줄어들고 있고 내수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모델이 없어서 위축되고 있는 르노코리아로서는 생산 기지로서의 입지라도 확보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아예 신차부터는 Geely 플랫폼을 베이스로 Geely 그룹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것이 유럽 지역에만 국한되고 모델도 한국 시장과 동떨어진 Renault보다는 여러 모로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


최대 고객인 현대차의 전기차가 미국 현지 생산으로 물량이 몰리면서 국내 전기차 생산량이 떨어지는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한국 배터리 회사로서는 국내 생산 설비의 가동률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거기에 중국에서 통용되는 각형 LFP 배터리 개발에 성공하면 다른 브랜드와도 비슷한 협업이 가능해진다.


LGES 오창 LFP배터리.jpg LGES도 LFP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출길이 막혀 내수 시장만으로 버텨야 했던 중국 전기차 회사로서는 유럽과 미국, 동남아와 남미 등을 모두 공략할 수 있는 생산기지를 확보할 수 있다. 마치 반도체 개발 기술은 떨어지지만 높은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TSMC를 축으로 반도체 강국이 된 대만처럼 한국도 기술력이 우위에 있는 중국 전기차들의 국외 생산기지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내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한국 전기차 기술력을 향상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이 외국계 기업들의 생산기지 역할을 통해 자신들의 경쟁력을 재고하던 시절이 바로 10년 전이다. 흑묘든 백묘든 우리에게 먹거리가 되고 우리보다 나은 기술력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기차 생산기지로서 한국의 매력이 유지되는 기간도 영원할 수 없다. 전 세계가 서로를 견제하는 시기에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싸움판에서 불어오는 파도를 타고 우리만의 길을 찾는 지혜를 기대해 본다.




자동차 산업 동향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우리나라도 더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제조업이 해외로 나간 적이 있었죠. 글로벌 관세 전쟁 속에서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것이 유리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나라 차든 우리 땅에서 만들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익이 나누어집니다. 편견보다는 응원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https://autowein.com/2694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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