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지원을 받아야 내연기관차와 경쟁이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10월 들어 그동안 제공되던 전기차에 대한 세금 면제가 사라졌다. 그리고 곧 미국 전기차 시장에 빙하기가 찾아올 거라는 예측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내연기관 차보다 비싼 전기차는 보조금에 민감한 사실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번쯤 타 보고 싶지만 비싼 가격 때문인지 보조금이 없이 내연기관 차와 경쟁하게 그대로 두면 판매량이 정체되기 일쑤다.
실제로 중국에서 2023년 초에, 독일에서 2024년 초에 예산 부족과 형평성의 문제로 보조금 제도를 폐지하자 소비가 급격히 감소했던 적이 있다. 저가형 배터리로 이미 가격이 역전된 중국 소형 전기차 시장에서는 오히려 전기차가 더 많이 팔리는 것을 보면 전기차 판매에 있어 가격이 가장 큰 장애물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세액공제든 구매 보조금이든 트럼프처럼 애초에 전기차에 원수 짓는 듯한 감정적인 싸움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주도하는 전기차 구매 보조 제도에는 한계가 있다. 예산은 한정적인데 해가 갈수록 판매 대수는 늘어난다. 보조금 수준을 유지하자니 재정에 부담이고, 그렇다고 지원 규모를 줄이자니 전기차 판매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금융 위기와 팬데믹 시절 돈을 너무 풀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정부의 부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바로 실익이 보이는 것도 아닌 전기차 보급에 막대한 예산을 할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 배터리 가격이 더 낮아져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가격대가 되어 성능 대 성능으로 보조금 없이도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가성비를 찾기 전까지 누가 그 빈 곳을 채워야 할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처럼 만약 전기차를 팔아서 이득을 가장 많이 보는 주체가 있다면 그 이익의 일부를 전기차가 늘어나는데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낮추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주체는 물론 자동차 회사다. 일단 차를 팔아 이득을 보기도 하지만 회사 평균 연비를 제한하는 CAFE 규제를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판매가 필수다. 아이오닉 한 대를 팔아야 그랜저 여섯 대를 팔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 벌금을 내느니 차라리 할인 판매를 해서 재고를 처리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Tesla처럼 전기차만 만드는 회사들은 크레디트 장사로 번 수익만큼 할인도 가능하다. 앞으로 평균 CO2 규제가 점점 강화될수록 차 자체를 싸게 만들려는 노력과 함께 벌금을 내느니 할인에 나서는 회사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2023년 말 독일에서 보조금이 없어졌을 때 Tesla는 제품 가격을 일시적으로 낮추었고 Ford는 세액공제가 없어지자 딜러를 통해 보조금을 회사에서 부담하자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취소한 적도 있다. 지금은 이구환신이라는 보조금으로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도 조만간 보조금이 폐지되면 Xiaomi 같은 업체는 예약 고객들을 대상으로 회사가 차이를 보전해 주는 제도를 계획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싸지면 떠나는 고객들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가 움직이는 전력 회사들도 전기차와 공생관계다. 낮에는 주행하고 밤에는 충전하는 전기차의 충전 패턴은 심야전기 수요를 채워야 하는 전력 회사에게는 반가운 손님이다. 전기를 소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양방향 충전기로 전기가 쌀 때는 충전해 두었다가 피크 수요 시간대에는 오히려 충전기와 연결되어 있는 전기차에서 꺼내 쓰면 움직이는 ESS로 활용도 가능하다. Volvo가 스웨덴 전력 회사와 함께 무료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이런 장점을 극대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차량 공유 및 택시 같은 운송업도 전기차가 유리한 면이 많다. 일단 경제적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주행 거리는 짧지만 같은 거리를 가는 비용은 훨씬 저렴하다. 특히 운행을 하지 않을 때 완속 충전을 활용하면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다. 정차와 저속 주행이 빈번한 도시 주행 조건에서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 효율이 더 유리하고 거기에 정비 등 소모품 비용도 덜 드니 운송업에 있어서 비싼 차량 가격을 제외하면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여러 대의 택시를 운영하는 회사나 Uber와 같은 플랫폼 업자들에게는 전기차로 운영할수록 이득이 된다.
그러다 보니 Uber는 예전부터 전기차로 차량 공유 서비스를 하는 운전자에게 우선 배정을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예 전기차로 전환하려는 운전자에게 4000달러 정도를 직접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정부가 손을 놓은 빈자리를 플랫폼 사업자가 채우는 것이다. 그렇게 채워야 산업이 성장세를 놓치지 않는다.예산이 부족하고 정치적으로 분쟁이 있고 서로 다른 입장에 놓인 유권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부 정책은 오락가락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전기차의 성장을 바란다면 일관된 정책도 중요하지만, 자체적으로 추가 수익을 창출하고 그 수익을 기반으로 보조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전기차와 관련된 자동차 회사, 충전 회사, 전력 회사, 플랫폼 회사들이 모여서 방법을 찾으면 시너지를 찾을 수 있다. 차만 팔아서 얻는 이익보다 차와 관련된 서비스가 더 큰 수익을 창출한다. 중국과 나머지 시장으로 이원화된 후 급격히 경직되고 있는 전기차 시장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파트너를 모으고 판을 키우는 이런 전략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자동차 산업 동향 전문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1997년 처음 도요타 하이브리드가 소개될 때도 두 배 가까운 차값의 4분의 1은 미국 정부가 보조금으로, 남은 4분의 1은 도요타가 감당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판을 키운 덕분에 가장 하이브리드 시장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회사가 도요타죠. 전기차도 보편화되려면 이득을 많이 보는 사람이 부담을 조금 더 지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