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합의 이후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비하자.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되지 않으려면 냉정한 전략이 필요하다.

by 이정원

올해 7월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 이후 자동차 관세 15% 합의와 3500억 달러 투자 사이에서 미국과 지속되었던 줄다리기가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팩트시트가 나오고 자동차 관세는 25%에서 15%로 낮춰졌지만 앞으로 한국이 짊어져야 하는 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이 합의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한 논의로 여전히 여기저기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간단하다. 우리에게 미국은 북한을 억제하는 국방력과 안보를 제공해 주는 동맹국이자 우리의 상품을 사주는 최대 시장이다. 반대로 미국에 우리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군대를 주둔시킬 수 있는 전진 기지이고 IT부터 콘텐츠 사업까지 다양한 비즈니스를 함께 하는 파트너다. 서로에게 주고받을 것이 확실한 우리와 미국 사이에는 사실 얼마나 투자를 이끌어 내고 다른 동맹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관세를 감해 주느냐가 쟁점이었지 서로 각을 세울 필요는 없었다.


교역 순위.jpg 우리나라 교역량의 1등이 중국 그 다음이 미국입니다.


그러나 이번 APEC 정상회담에서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미국과 중국은 사정이 다르다. 두 강대국에서 각각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시진핑과 도널드 트럼프의 만남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치열한 물밑 작업 끝에 1년간 유예하는 것을 골자로 관세 협상이 이루어졌다. 얼핏 보면 원만한 합의 같아 보이지만 이면에는 다른 면들이 숨어 있다.


그동안 미국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이인자를 그냥 두지 않았다. 1980년대 일본은 급격한 수출 확대와 제조업 경쟁력으로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되며 미국의 지위를 크게 압박했다. 대일 무역적자가 심해지자 미국은 독일 등과 함께 1985년 플라자 합의를 체결해 달러 가치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고 엔화 가치를 급등시켰다. 그 결과 일본 수출 경쟁력은 약화되었고, 급격한 엔고 대응을 위해 일본 내부에서는 대규모 유동성이 풀리며 부동산·주식 버블이 폭발적으로 형성되었다. 1990년 버블이 붕괴하자 금융기관 부실, 투자 위축, 장기 저성장이 이어졌고 이것이 흔히 말하는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이 되었다.


미국에서 팔고 싶으면 미국에서 만들어라.jpg 플라자 합의 당시 미국 노조의 항의 시위 - 미국에서 팔고 싶으면 미국에서 만들어라며 도요타 차를 부수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경제 성장을 통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트럼프 1기 시기에 관세와 안보 규제라는 카드를 빼 들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미국에 판매하면서 성장해 온 중국의 수출을 억제해서 성장을 억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징벌적 과세를 메기고, 자율주행 차량이나 중국산 부품이 들어간 첨단 장비의 수입을 제한하는 정책은 바이든 정부에서도 지속되었다. 그리고 트럼프가 다시 재집권하면서 65%, 100%라는 말도 안 되는 숫자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이 들고 나오는 관세라는 무기에 익숙해진 중국 정부는 그동안 트럼프의 도발에 대해 차분히 대응책을 마련해 왔다.


먼저 일단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서 미국이라는 시장이 사라져도 생산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14억의 내수 시장이 1기 트럼프 시기보다 크게 성장하기도 했지만,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남미,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등 다양한 지역으로의 수출 판로를 늘려 놓았다. 그 결과 중국의 전체 GDP 중 미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5%가 조금 넘고, 베트남이나 멕시코는 25%에 달한다.)

Tariffs-Risk_US_Exports.jpeg 캐나다와 멕시코가 관세 직격탄을 맞는 이유 - 상대적으로 중국은 이미 미국 비중을 줄였습니다.

미국에 의존했던 반도체 기기나 최고급 GPU, 인공지능 같은 기술력도 키워서 미국의 지원이 끊겨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다. 예전에는 미국이 장비를 팔지 않으면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 내에서 얼마든지 소화가 가능하다. 여전히 Open AI나 NVIDIA 등 1등 기술 기업은 미국에서 나오고 있지만, DeepSeek와 같은 중국 자체 기술들도 만만치 않은 성능을 자랑한다. 정부의 기술 굴기 정책에 기업들이 연대 및 제휴로 서로 시너지를 만들면서 가성비로 따지면 오히려 미국을 추월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들어오는 농산물 수입량도 늘려서 미국에서 갑작스러운 수출 규제가 오면 맞대응을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 튀김 요리가 많아 콩기름이 많이 필요한 중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미국산 대두의 수입량을 늘려왔다. 그러다가 이번에 관세 공격을 받자 아예 미국산 대두 수입을 금지시키고 아르헨티나 등 다른 지역으로 공급망을 옮겨 버렸다. 갑자기 팔 곳이 없어진 미국 농부들이 백악관에 압박을 가하는 모습은 뉴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유되었다.


Soybean export to china.jpg 트럼프 등장이후 급감한 미국 대두의 중국 수출량 - 오히려 미국이 더 의존적입니다.


거기에 중국은 희토류 같은 희귀 자원을 추출하고 정제하는 데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라면 환경 규제에 막힌 문제도 그냥 밀어붙이고, 정상적인 절차라면 가능할 수 없는 최소 투자와 최소 인건비로 경쟁사들을 압살 하며 전 세계 희토류 시장의 90%를 독점하고 있다. 그런 중국이 국가 안보를 내세워 자국산 희토류를 사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제를 만들자 미국 산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반도체와 영구자석 등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부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자원을 통제할 수 있음을 직접 보여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원뿐 아니라 기본 부품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은 예전보다 커졌다. 자동차 회사들을 비롯한 모든 회사들은 수익을 증대하기 위해 원가저감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같은 기능을 가졌다면 더 싼 부품을 이용하는 편이 유리해지면서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중국에 진출해 있는 자사의 공장에 납품하는 회사들의 부품으로 전 세계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nexperia_china.jpg 중국 기업인 윙테크가 소유한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NEXPERIA - 최근 네덜란드 정부가 경영에 관여하자 중국에서 생산을 중지해 버렸습니다.


중국산 비중이 높아질수록 상대적으로 도태된 로컬 부품들을 만드는 회사들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기업들을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인수하면서 공장은 전 세계에 있어도 대주주는 중국에 영향을 받는 상황이 늘어났다. 최근에 중국과 네덜란드 사이에 경영권 독립 문제로 이슈가 되면서 부품 공급난이 있었던 Nexperia 사태에서도 이런 중국의 부품 공급망 지배력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준비가 있기에 APEC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를 대하는 시진핑의 태도는 무덤덤했다. 중국은 희토류 등 핵심 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를 완화하고, 미국산 대두 및 곡물 등의 수입을 다시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답례로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일부 관세를 인하하고 상호 제재 혹은 특정 상품에 대한 보복 관세의 집행을 1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양국이 결론을 낸 것이 아니라 휴전을 했다는 것 자체가 중국이 얼마나 1위인 미국을 제대로 압박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두 나라의 싸움에서 누가 더 유리할지도 명확하다. 중국은 자원과 핵심 부품을 통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생산 자체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반면 미국이 가진 카드는 막대한 소비 시장과 군사력이 전부다. "우리가 너희 제품을 사주지 않으면 누가 사주겠느냐"는 식으로 각국을 압박하고 있고 한국 역시 이런 압박에 15% 관세를 받아들이고 추가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지만, 사실 세상은 넓고 물건을 사줄 나라는 많다. 아예 제품을 생산할 수도 없게 공급망을 쥐고 있는 쪽이 더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575088176_848968520843500_1335594690417674290_n.jpg 트럼프 관세는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미국 트럼프 정부의 무모한 관세 정책이 연방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 중국과의 관세가 1년 유예되는 사이에 당장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중간 선거를 치러야 한다. 각종 경제 지표가 부정적인 상황에서 과연 트럼프가 계속 신임을 받으며 지금의 정책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중국도 부동산에 쏠린 자산 구조와 부채의 늪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이번 APEC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미국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이런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우리나라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는 준비가 필요하다.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음을 명심하고 일단 생산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공급망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현지 공장을 늘리고 시장도 적극적으로 개척하면서 미국과 중국 두 나라에 의존하고 있는 수출 비중도 낮출 필요가 있다. 두 강대국 모두에 적당한 투자를 통해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를 늘려 놓을수록 좋다. 혐중이니 반미 같은 구호로 한쪽을 적대시하기보다는 실익이 되는 냉정한 시선과 신중한 전략을 가져야 한다.




자동차 산업 동향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협상을 하다 보면 급한 쪽이 을이 되곤 하는데 지금은 중국 보다 미국이 좀더 급해 보입니다. 미국은 중국의 거센 도전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재편되는 국제 질서속에서 균형 잡힌 전략이 필요합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ttps://autowein.com/2764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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