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작년 1월 새해를 여는 CES 2025에서 NVIDIA는 AI Agent의 청사진을 전면에 내세웠다. 설계, 공장, 검증 시험, 시뮬레이션, 고객 지원 등 산업 전반의 영역에서 사람의 지시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시대를 예고했다. 뒤이어 나온 디지털 트윈에서 시뮬레이션하면서 강화 학습하고 그렇게 업그레이드된 기능들을 다시 공유하는 프로세스들이 한 덩어리로 묶이면서 자동차 관련 기술 개발 속도 자체는 다른 차원으로 옮겨졌고 그 순간부터 자동차는 이동하는 기계에서 업데이트되는 서비스로 더 빨리 변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비용이 많이 들면 확장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던 인공지능 영역에 대한 경계심은 뒤이어 나온 DeepSeek 같은 저비용 모델들로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정부의 지원과 압박을 동시에 받는 중국 자동차 기업들은 자율주행부터 스마트 콕핏까지 차 안에서 실시간으로 추론하고 답하는 AI를 서둘러 차량에 붙이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이나 차량 내 음성 비서도 단순 안내를 넘어 주변 상황과 기록을 참조해서 다음 행동을 제안한다. 이전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의 인공지능 덕분에 운전자는 결정만 하면 되었고 그렇게 AI의 대중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런 기술 경쟁의 흔적은 전기차 시장에도 다가왔다. 지난 3월 BYD 왕촨푸 회장이 전기차 후반전은 자율주행 경쟁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그림이다. 배터리와 모터가 상향 평준화될수록 차별화는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결국 누가 더 빠르게 데이터를 모아 더 안전하게 주행결정을 내리느냐가 경쟁력이 된다. 그는 자율주행 전기차가 2~3년 안에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보면서 L2+ 보조주행을 넘어, 로보택시에 해당하는 L4까지 누가 먼저 시장의 신뢰를 얻느냐가 앞으로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차는 제품이면서 동시에 플랫폼이 되고, 플랫폼은 새로운 생태계를 부르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로보택시는 어느새 미래에서 일상으로 내려왔다. 2024년 10월에 ‘We Robot’ 행사를 통해 의지를 밝혔던 Tesla는 6월 미국 오스틴에서 로보택시 서비스를 제한적으로 시작했다. 한국에도 얼마 전 FSD를 공식 오픈하면서 내년 중순에 로보택시를 상용화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전통적인 미국의 자율주행 회사인 Waymo와 Amazon의 Zoox도 미국 여러 도시로 확장 계획을 잇달아 내놓으며 일반인 대상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중국 자율주행 기업들은 이제 중국을 넘어 중동에서 WeRide가 Uber와 손잡고 완전 무인 로보택시 운영을 시작했고 연말에는 Uber와 Baidu가 영국 시험을 예고했다. 자율주행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 서비스 지도가 대륙 단위로 넓어졌다.
이런 기술의 확산은 정치적인 이슈로 과정이 더욱 거칠어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2025년 3월 자동차·부품에 대한 관세 조치를 내놓았고, 이제 어디서 생산하느냐만이 아니라 무엇을 자립하느냐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Nexperia 사태로 반도체 공급망 이슈들이 발생하면서 배터리보다 소프트웨어와 반도체가 국가 간에 더 민감한 사안이 되었다. OS, 칩, 클라우드, 지도, 결제까지 공급망이 곧 안보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자 각 국가들은 공장 유치보다 더 예민하게 기술 독립에 혈안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전통 자동차 산업 강자들의 자리도 흔들리고 있다. 예전엔 부품을 가장 싸고 정확하게 납품하는 회사가 갑이었지만, SDV 시대에는 센서와 작동 시스템 그리고 데이터를 통합해 업데이트하는 회사가 더 중심에 선다. 공급사들도 하드웨어 단품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포함 패키지를 요구받으면서 더 깊은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추지 못한 부품사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변속기 및 하드웨어 공급 업체로 유명한 ZF는 2025년 내내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연말에는 결국 ADAS 사업을 Harman에 매각하기로 했다.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전동화를 미처 준비하지 못해 경쟁력 있는 플랫폼을 확보하지 못한 Nissan, Honda 같은 일본 업체들은 혹독한 구조조정의 시기를 겪고 있다. 이미 늦었다고 판단한 미국의 빅 3들은 미국 정부의 보호 관세라는 우산 속에서 포트폴리오의 옥석 가리기에 들어갔지만, 앞으로 다가올 기술 경쟁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게 늘어난 빈자리에는 경계 밖에서 들어오는 도전자도 늘었다. Foxconn은 자신들이 잘하던 OEM 전략을 전기차에도 적용해서 플랫폼과 모듈의 수직계열화를 앞세우며 자동차를 전자제품처럼 빠르게 개발하고 양산하겠다는 구상을 내비쳤다. 최근에는 결국 대만의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고 자체 전기차를 양산하기도 했다. 전 세계 배터리 1위 업체인 CATL도 스케이트보드 새시와 배터리 스왑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완성차를 직접 팔지는 않지만 자동차가 만들어지게 하는 표준 부품을 공급하는 지위를 노리고 있다.
이런 모든 변화 속에서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운명도 함께 격변하고 있다. 지난 10월에 GM은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한 설계 및 CAD 인력을 포함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여러 대의 프로토 차량을 만들어 시험해 보고 조정해 본 전통적인 개발 방식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차를 만드는 주기와 새로운 시도의 방향성 모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아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업계 곳곳에서도 반복 업무는 AI가 맡고 사람은 안전, 규제, 경험 설계 같은 고부가 영역으로 업무가 재배치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각자의 위치에서 배워가고 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AI를 도구로 생산성을 키우는 쪽이 유리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인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다.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구로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겠지만 변화가 빠를수록 가벼운 조직이 유리한 법이다. 스스로의 경쟁력 향상에 무게 중심을 잡고 미국 중심의 메인 AI 기술 트렌드는 쫓아가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배터리와 제조 부문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모빌리티 데이터와 반도체 같은 독자 영역을 개척해 나아가길 기원해 본다. 지난 한 해 어려운 시기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치열하게 살아준 모두에게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