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깐부는 없다.

핵심 기술을 외부에 의존하면 미래 결정권을 잃어버린다.

by 이정원
깐부 회동1.jpg 격의 없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APEC 2025에서 가장 크게 주목받은 장면은 젠슨 황 NVIDIA 회장과 삼성 이재용 회장, 현대차 정의선 회장의 깐부 회동이었다. 세 CEO가 모여 격의 없이 어울리고 시민들과도 소통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후 한국이 NVIDIA로부터 대규모 GPU 공급을 확보한 것은 단순한 장비 확보를 넘어 국가 AI 경쟁력 강화의 시발점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와 네이버는 대규모 언어모델(LLM), 멀티모달 모델, 생성형 AI 서비스 고도화에 이 GPU를 우선 활용할 방침이다. 삼성은 반도체, 모바일, 가전 등 전 사업군에서 AI 기반 사용자 경험을 강화하고, 데이터센터 AI를 통해 차세대 반도체 설계에도 활용할 수 있다. 네이버는 하이퍼크로버 X 계열 모델을 더욱 확장해 앞으로 금융, 유통, 공공 부문에 적용 범위를 넓힐 것으로 보인다.


NVIDIA GPU_사용계획.jpg 없어서 못 구하는 GPU를 확보한 것은 분명 희소식이다.


자동차 분야에서 현대차에게도 이번 GPU 확보는 기회다. 최근에 밝힌 장기 투자 계획의 주요 아이템인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 제조 AI에서의 데이터 학습을 강화하기 위해 GPU 활용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특히 로보틱스, SDV, 신차 품질 예측 모델 등 방대한 데이터를 계산하는 분야에서 대형 GPU 클러스터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 역시 공공 데이터 허브 구축, 의료·교육·행정 분야의 공공 AI 인프라 확산에 GPU를 투입해 국가 전체의 디지털 전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이번 GPU 공급은 민간과 공공 부문 모두에서 한국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NVIDIA가 제공하는 GPU는 그 유명세만큼이나 고사양이다. 대규모 모델 연구 ·클라우드 서비스에서는 필수적이지만, 차량·로봇·스마트기기 같은 에지 환경에서는 과도한 전력 소모, 높은 가격, 과한 스펙이라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자동차에서 구현되는 자율주행, ADAS 같은 기능들은 전력 효율성과 발열 관리가 중요하고 안정적이면서도 단가를 낮춰야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데 범용 GPU로 커버하기에는 부담이 된다.


image.png 엔비디아의 GPU는 CUDA 생태계에서 작동한다.


거기에 NVIDIA의 GPU를 활용하게 되면 그들이 만들어 놓은 CUDA 생태계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성능의 문제가 아니라 규칙을 누가 정하는가의 문제에서 플랫폼 홀더가 가격 기능 업데이트, 소프트웨어 배포를 주도하는 순간 OEM과 제조사는 원가 절감이나 시스템 최적화 여지가 줄어들며 장기적으로 기술적 자율성을 잃을 수도 있다.


단적인 예를 우리는 2000년대 중반 Nokia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세계 1위 휴대폰 기업이었던 Nokia는 이동통신 핵심 칩과 특허를 쥔 Qualcomm에 대한 높은 의존도 때문에 CDMA 분야에서는 로열티 부담과 칩 공급 조건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북미 시장 경쟁력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출시된 아이폰이 가져온 스마트폰 시대의 기술 전환기에 자체 플랫폼과 핵심 부품을 확보하지 못한 Nokia는 외부 기술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렇듯 핵심 기술이 외부에 종속되어 버린 기업은 미래를 위한 전략적 결정을 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NIO NEWCHIP for ai.jpg 새로운 자체 칩을 발표하고 있는 NIO의 CEO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전기차 회사인 NIO의 행보는 독보적이다. NIO는 2021년부터 자체적으로 스마트 드라이빙에 필요한 칩셋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Shenji NX9031 칩은 중국의 파운드리를 통해 양산을 거쳐 실차에서 빠르게 NVIDIA의 Orin 칩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성능은 당연히 NVIDIA의 제품보다 떨어지지만 자율주행 제어에 특화된 기능 설계를 통해 L2+ 정도의 주행을 수행하는데 충분하다. 그러면서도 절반 이상 저렴한 가격에 적용이 가능하고 공급 또한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GPU를 운영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NIO만의 OS를 통한 AI 모델 구성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제는 외부 업체에도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한다고 하니 벌써 상용화 단계를 넘어섰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 기업으로서 NVIDIA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칩-소프트웨어-센서-자율주행 스택을 통합해 원가 경쟁력과 기술 로드맵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있다. 앞으로 확장의 주도권을 스스로 쥐는 셈이다.


image.png 현대차는 이미 작년 초에 엔비디아와 협업을 계약한 바 있다.


연 40만 대를 판매하는 NIO가 했다면 700만 대를 만들어 파는 현대차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 어디에도 영원한 깐부는 없다. 중국만큼이나 우리나라 역시 이미 세계적 수준의 파운드리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NVIDIA로부터 확보한 26만 장 GPU는 빅데이터 분석이 필요한 영역에 집중하고 대신에 자율주행, 로봇, SDV 같은 영역에서는 최적화 설계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반도체와 자동차, 국가 경제를 지탱해 주고 있는 두 분야 모두에서 장기적으로 기술 주도권과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는 길이 될 것이다. 핵심 기술을 외부에 의존하면 미래 결정권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명심하자.




자동차 산업 동향 전문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작년 11월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판을 이끄는 회사와의 협업은 분명 기회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26만 장 확보의 성과를 기반으로 우리도 우리만의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https://autowein.com/277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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