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새 제품을 제때 선보이려면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배짱이 필요하다.
어떤 자동차를 만들 건지 계획의 출발점은 기술이 아니라 시장과 소비자다. 자동차 회사는 3~5년 뒤 주 구매층의 연령, 소득 수준,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먼저 그려야 한다. 전기차·내연기관·하이브리드 중 어떤 파워트레인이 현실적인 선택이 될지,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선호 차급과 가격대가 어떻게 갈릴지도 결정이 필요하다. 이때의 방향 설정이 어긋나면, 4년 뒤에는 아무리 완성도가 높은 차라도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래를 위한 준비는 항상 먼저 시작해야 한다. 특히 차세대 엔진 개발이나 새로운 플랫폼 준비는 3~4년의 시간이 걸린다. Time to Market. 시장이 필요하는 기능을 제때 선보이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미래에도 뚝심으로 밀고 가는 배짱이 필요하다. 2021년 새롭게 선보였던 현대차의 전기차 모델 E-GMP도 2018년부터 개발에 착수했다. 그 덕분에 뒤늦게 전동화에 나선 다른 회사들보다 더 일찍 더 많은 주행 거리를 가고 더 높은 전압으로 빠르게 충전이 가능한 전기차를 선보일 수 있었다.
하루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IT 기술도 예외는 아니다. 차량 전체를 구성하는 플랫폼만큼은 아니지만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자제품과 전자 아키텍처들도 설계 초기에 결정된다. 그래서 출시 초기에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최근에는 O/S를 스마트폰처럼 만들어 OTA, Over the Air를 통해 무선으로 기능을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어디서 어떻게 생산할지를 정하는 전략도 중요하다. 어떤 차종을 어느 지역에서 만들 것인지, 배터리와 반도체 같은 핵심 부품을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지에 따라 규제 대응과 가격 경쟁력이 갈린다. 기존 공장을 최대한 활용하고 시장의 반응에 따라 모델별 생산량을 조정하려면 그만큼 유연한 공급망 관리가 필수다. 단순한 효율 문제가 아니라 시장 접근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다.
결국 잘 팔리는 차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과 포기의 결과물이다. 디자인과 브랜드 포지셔닝에서 누구를 잡고 누구를 포기할지, 친환경 이미지를 앞세울지 합리적 가격을 무기로 할지 명확해야 한다. 차량 가격 역시 예상 매출과 조합해 개발 및 양산에 필요한 예산 수립에 기초가 되기에 초기부터 결정이 필요하다. 자동차 회사의 3년 뒤의 판매 성적표는 그때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려진 기획 판단으로부터 이미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