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개발하는 단계를 관리하는 마일스톤

하나의 차는 수많은 검증의 문을 통과한 노력의 결정체다.

by 이정원

자동차를 만드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2만 여개의 부품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 장치이며, 개발에만 최소 수천억 원에서 조 단위의 비용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디자인, 설계, 구매, 생산기술, 품질 등 수많은 부서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개발 기간만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5년 이상 소요된다. 이 긴 호흡의 레이스에서 한 군데라도 제 몫을 제 때 하지 못하면 막대한 금전적 손실은 물론 회사의 존망을 위협하는 품질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자동차 회사는 신차 개발이라는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수하기 위해 단계 단계마다 마일스톤이라는 이정표를 세우고, 각 단계의 목표가 완벽히 달성되었는지를 검증하는 엄격한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을 가동한다.


image.png 프로젝트의 관리는 결국 목표를 정하고, 실행 계획을 세우고 단계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이러한 관리 체계의 핵심은 게이트 방식 관리다. 마치 관문을 통과하듯, 각 개발 단계마다 반드시 달성해야 할 결과물을 정의하고, 이를 모두 충족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는 개발 초기의 작은 오류가 양산 단계에서 걷잡을 수 없는 품질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 서로 얽혀 있는 업무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제대로 된 콘셉트를 확정 짓지 못한 상태로 금형이 제작된 후에 설계를 변경한다면 그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나의 부품이라도 협력 업체가 충분한 수량을 만들 준비가 되지 않으면 양산에 들어갈 수 없다. 품질에 문제가 있는 상태로 소비자들에게 차를 전했다가는 매출은 곤두박질 칠 것이다. 그렇기에 자동차 회사는 각 단계의 문을 걸어 잠그고, 완벽한 검증 없이는 절대 열어주지 않는 보수적이면서도 치밀한 전략을 구사한다.


image.png 자동차 개발하는 주요 마일스톤 5가지


일반적으로 자동차 개발의 마일스톤은 크게 5가지 핵심 단계로 나뉜다. 차량의 기본 뼈대와 상품성을 결정하여 개발의 방향을 고정하는 콘셉트 확정(Concept Freeze), 함께 부품을 개발할 협력사를 선정하고 가격과 사양 및 들어가야 하는 비용을 합의하는 계약(Contract), 수백억 원짜리 금형 제작을 승인하여 사실상 디자인과 설계를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확정 짓는 금형 발주(TGA, Tooling Go Ahead), 실제 공장 라인에서 차가 제대로 만들어지는지 시험하는 공장 시험 생산(Plant Trial), 그리고 모든 검증을 마치고 마침내 고객에게 인도될 차량의 생산을 허가하는 양산 승인(Mass Production Approval)이 그것이다. 이 5단계는 순차적으로 약 3개월에서 반년 정도의 간격을 가지고 진행하면서 신차라는 결과물을 향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image.png 본격적인 양산 이전에 프로토 차량을 만들어 검증한다.


이 모든 과정을 감시하고 판정하는 심판관의 역할은 주로 품질 본부가 맡는다. 재정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기획, 차를 만들고 싶어 하는 연구소나 빨리 팔고 싶어 하는 영업 부서와 달리 품질 본부는 냉철한 제 삼자의 눈으로 프로젝트를 바라본다. 그들은 각 단계의 게이트 앞에서 이미 합의된 목표 리스트를 두고 이 차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다.


설계 도면은 완벽한지, 부품 업체의 공정은 준비되었는지, 법규 만족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꼼꼼히 따진다. 만약 기준에 미달하면 아무리 일정이 급해도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거나, 언제까지 해결책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전제로 조건부 승인이라는 무거운 꼬리표를 달아 개발팀을 압박한다. 품질 본부의 승인 없이는 수천억 원이 집행되는 다음 버튼을 누를 수 없다.


심판관이 내리는 판정의 기준은 명확하다. 바로 기능(Quality), 납기(Delivery), 예산(Cost)이다. 목표한 성능과 내구성을 만족하는 기능적 완성도는 검증을 통해 확인하고 약속된 출시 일정을 맞출 수 있는 납기는 수시로 확인한다. 수익률을 확보하기 위해 목표 원가 내에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예산은 매 단계마다 다시 검토되고, 샘플로 검증된 품질과 단가는 하루에도 수백 대씩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image.png 단품뿐 아니라 양산 수요에 대해서도 QCD를 만족시켜야 통과할 수 있다.


QCD라고 불리는 세 가지 요소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야말로 프로젝트 관리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번 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5가지의 주요 마일스톤을 하나씩 뜯어보며, 각 단계에서 자동차 회사들이 어떤 치열한 고민과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과정을 살펴보고 나면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가 단순한 쇳덩어리가 아니라 수많은 검증의 문을 통과한 노력의 결정체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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